정년교수 인터뷰 | 화학부 박충모 교수

지난달 19일 자연대(503동)에서 식물분자생화학 분야의 권위자인 박충모 교수(화학부)를 만났다. 기자를 위해 직접 종이와 펜을 가져와 화학의 기초부터 설명하는 모습에서 학문과 교육에 대한 그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박 교수는 “과학에서 새로운 ‘What’과 ‘How’를 찾아내기란 쉽지만 감춰진 ‘Why’를 밝혀내기는 어렵다”라며 “내 연구의 최종 목표는 식물의 생존 작용에 관한 Why를 서술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Q. 정년을 맞은 소감은?

A. 쉬운 길로 직행하기보다 늘 돌아가는 길을 선택해 왔다. 대학 졸업 후 6년여 동안 직장 생활을 했고 3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진학했다. 뒤늦은 유학길에 언어 장벽과 같은 숱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에는 기업체 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4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서울대에서 연구와 강의를 시작했다. 학문을 일찍 시작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원하는 일에 열정적으로 임할 기회를 얻고 해당 분야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위안으로 정년을 맞이하고 있다.

 

Q. 연구 분야인 식물분자생화학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A. 식물의 생명 현상 연구에 분자생물학적·생화학적 접근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다. 식물은 자연계에서 가장 진보되고 정교한 화학자다. 동물들은 외부 환경 자극에 몸 형태 및 구조 변형과 운동을 통해 자신을 보호한다. 반면 식물은 이동성이 없기에 2차대사화합물*이라는 새로운 화학물질을 합성해 환경 변화에 대응한다. 즉 식물은 화학적 과정을 통해 자연계에서 적절한 생장과 적응 활성을 유지하는데, 이런 작용 기제를 분자 단위에서 연구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 성과는?
A. 식물 내에서 막결합 전사인자를 발견하고 이들의 활성화 원리를 다룬 연구가 기억에 남는다. 생물체의 유전자 발현은 DNA의 특정 부위에 결합하는 전사인자(transcription factor)라는 단백질로 정교하게 조절된다. 기존에는 이런 전사인자 단백질들이 세포핵 내부에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연구 결과 전사인자와 비슷한 단백질 구조를 가짐에도 핵이 아닌 세포 내의 막구조와 결합된 새로운 단백질을 발견했다. 이 막결합 전사인자들은 식물이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으면 단백질분해효소(protease)에 의해 막으로부터 분리돼 핵으로 이동하며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 이를 통해 식물은 이상기후와 같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서 스스로 생존 확률을 높인다. 이 원리는 동식물의 유전자 발현 조절 연구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Q. 재직하면서 교수자로서 얻은 기쁨이 있는가?

A. 자연대 화학부에서 식물생화학을 연구하는 일이 아주 흔하지는 않다. 그러나 본교에서 연구하며 생각보다 많은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식물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놀라기도 했다. 다만 내 분자신호전달연구실에 입학한 대부분의 대학원 신입생들은 실질적으로 식물연구나 분자생물학 연구 경험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이 학생들이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점차 식물학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특했다. 특히 교수자로서 필요한 연구 경험을 대학원생에게 제공할 수 있었다는 점에 큰 보람을 느낀다.

 

Q. 학생들에게 당부의 말이 있다면?

A. 인생의 명분을 깊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나의 명분은 학문적 자존심이다. 사실 이것이 당장 이윤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배가 고파도 행복할 수 있고 배가 불러도 슬플 수 있다. 그러므로 어렵고 오래 걸리더라도 진정 자기가 원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신중하게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고, 일단 시작하면 굳은 자세로 변함없이 목표에 정진해야 한다. 이때 타인이 최단 도로로 빠르게 직진하는 것을 보고 조급함을 느낄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KTX를 타고 편하게 갈지라도 나는 한번 걸어가 보겠다는 도전 정신이 더 큰 가치가 있다. 학문에는 끝이라는 것이 없는 만큼 가시적인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하기를 바란다.

 

박 교수는 “학생들이 똑같은 경로나 쉬운 방법만 선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정년퇴직 이후 성과에 연연했던 생활에서 벗어나, 욕심을 버리고 등한시했던 자신의 일을 차분하게 찾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천천히, 그러나 최선을 다해 본인의 길을 향해 우직하게 나아간 박충모 교수의 새 출발을 응원한다.

 

*2차대사화합물: 생명 유지에 직접적으로 필요하지는 않지만 환경 적응에 도움이 되는 화학물질.

 

사진: 카와하라 사쿠라 기자 sakusakukki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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