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이들에게 | 졸업생에 전하는 응원과 격려

오순희 교수(독어독문학과)
오순희 교수(독어독문학과)

'졸업생 전체에게 해당할 만한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아 보자.’ 처음에는 이런 생각으로 이 글을 시작했지요. 코로나19를 염두에 두다 보니 서울대 졸업생 전체가 어떤 특별한 공통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코호트처럼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서울대 졸업생 전체’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물론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서울대 졸업식의 풍경을 본 적은 있죠. 하지만 그런 풍경이 서울대 졸업생 전체가 어떤 존재인지를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서울대 교수로서 20여 년 동안 제가 만나고 이야기한 학생들은 늘 개인들이었고, 그들은 늘 서로 달랐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서울대 졸업생 전체가 아니라 몇몇 학생에게만 필요한 것일 수도 있는 제안을 두 가지만 해 보고자 합니다. 

1.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기

유명한 속담이나 격언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서 자신의 삶을 위한 모토처럼 중시하게 되는 시절이 있습니다. “남에게는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하라”라는 공자님 말씀이 저에게는 그런 모토 중 하나였어요. 학생 때는 일기장에 적어 둔 적도 있고 교수가 된 후에는 학생들에게 이야기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위의 격언은 제 수준에 맞는 것이 아니었어요. 말로는 이해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하기는커녕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적이 훨씬 많았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제가 이 사실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게 된 것도 최근에 와서입니다. 

제가 만약 타임머신 같은 것을 타고 학생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번에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격언으로 제 모토를 대치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죠. “너 자신에게 관대하라, 그리고 그만큼 남에게도 관대하라.” 

2. 소소한 가치판단을 위한 매뉴얼을 스스로 만들어 보기

새로운 생활로 들어설 때마다 늘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좋은 매뉴얼’입니다. 대학교에 진학하려고 하는 수험생에게 입시 요강은 필독서라고 할 수 있지요. 대규모로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대피 매뉴얼을 모르면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고요. 발전한 사회일수록 이런 매뉴얼도 잘 갖춰져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사회가 발전해도 늘 부족한 매뉴얼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코앞으로 다가온 중간고사 때문에 정신없이 바쁜 대학생 언니는 친구하고 싸웠다는 초등학교 동생의 하소연을 어느 정도로 들어주는 것이 맞는지 알려주는 매뉴얼은 없습니다. 부모님이 구두로 정해 주는 매뉴얼은 있을 수도 있지만 이런 매뉴얼은 대개 부모님 세대에나 해당하는 것이기가 쉽고, 친구들의 매뉴얼도 다 다릅니다. 

사적인 문제일수록 그리고 주관적인 감정과 관련된 문제일수록 더더욱, 적절한 해법을 알려주는 매뉴얼은 없거나 불충분하기 마련입니다. 현실적인 방법은 그때마다 매번 스스로 최선이라 생각하는 매뉴얼을 만들어보는 것이겠죠.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도 나처럼 고심하며 자신만의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서 위로와 연대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릅니다. 나만의 매뉴얼에서 그 고유한 가치를 확인해 본 사람일수록 남의 매뉴얼에 대해서도 그 고유한 가치를 인정해줄 줄 아는 법이거든요.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타적이기 위해서는 이기적일 수 있어야 합니다.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세우는 것이 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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