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교수 인터뷰 | 의학과 백구현 교수

지난달 11일 서울대병원 연구실에서 백구현 교수(의학과)를 만났다. 의대 진학도 수부외과 부임도 우연한 계기였지만, 돌아보면 의사가 자신의 천직이었다는 백 교수는 한국 정형외과학에서 다방면의 연구 성과를 이룩했다. 기자는 “무엇이든 할 때 후회 없이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백구현 교수의 모습에서 교수 생활에 임했던 그의 뜨거운 사명감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Q. 정형외과를 선택한 계기는?

A.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질환은 증상 없이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 데다 완치가 어렵다. 그런데 정형외과에서 다루는 질병은 일상생활과 밀접한 문제이기에 발견이 빠르고, 수술하면 상태가 금방 좋아진다. 아프던 사람이 다 낫는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이 크고 매력적이었다.

 

Q. 연구 성과가 다양하다. 가장 뜻깊은 연구를 소개하자면?

A. 방아쇠수지증후군에 관한 연구다. 방아쇠수지증후군은 손가락의 중간 관절이나 엄지의 끝 관절을 구부리려고 하면 방아쇠를 당기듯 뚝딱거리며 잘 구부러지거나 펴지지 않는 병을 말한다. 선천적으로 발생하는 이 병은 보통 유아기에 발견돼 수술로 치료한다. 나는 소아 환자를 많이 진료하다 보니 방아쇠수지증후군 환자를 몇몇 접했는데, 이들을 보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병이 선천적으로 발생한다면 세대에 상관 없이 발견 비율이 비슷해야 하는데, 방아쇠수지증후군의 경우 베이비붐 세대보다 현세대에 발견 비율이 압도적으로 증가했다. 이에 과거에는 유아를 데리고 병원에 오는 일이 흔치 않았으니, 병이 발견되지 않은 채로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호전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방아쇠수지증후군은 수술 치료 없이도 대부분 자연스럽게 좋아질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사례 관찰을 통해 검증에 성공했다. 이제 방아쇠수지증후군은 수술을 거의 하지 않는 질환이 됐다. 환자의 치료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고, 이 연구와 관련해 해외 학술 대회와 강연을 다니며 여러 교수와 교류할 수 있어 뜻깊었다.

 

Q. 의료계에 종사하며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

A. 이상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과 수술 후 경과가 좋지 않았던 환자를 주로 치료했다. 선천적 이상을 가진 아이들의 경우, 아이마다 이상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기존 수술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수술 전 면밀한 관찰을 통해 맞춤화된 수술 방식을 고민해야 했고 매번 보호자에게 새로운 수술 방식을 제안할 수밖에 없었다. 낯설었을 텐데도 나를 선뜻 믿고 아이를 맡겨준 보호자들에게 늘 감사했다. 또한 수술 경과가 좋지 않아 재수술해야 하는 환자의 경우 수술 성공률이 낮고 위험도가 높은데, 그럼에도 재수술에 성공했던 순간이 보람찼다.

 

Q. 평창올림픽 당시 강릉 지역 최고 의료 책임자를 맡았다. 현장에서 어려움은 없었는가?

A. 두 번의 큰 위기가 있었다. 하나는 노로바이러스의 창궐이었다. 전염성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선수들은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보통 선수단 전원이 귀국한다. 다행히 종합병원 의료진을 꾸릴 때 감염내과 교수를 스카우트했기에 체계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태풍 상륙이었다. 강릉 지역 특성상 워낙 강풍이 심한데, 바람 때문에 병원 시설이 무너져 빠르게 보수해야 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의료진 동료와 귀중한 인연의 도움으로 극복했던 경험이 기억에 남는다. 

 

Q. 2006년부터 오랜 기간 교단에 섰다. 교수 생활을 돌아본다면?

A. 한국의 의료를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그런 사명감하에 열심히 연구하고 치료했다. 운이 좋게도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고 매 순간 보람찼다. 그러나 돌아보면 가족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것도 의미 있는 삶이지만, 이제는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잘 돌보고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인터뷰를 맺으며 백구현 교수는 “매 순간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내가 진리라고 생각한 것도 시간이 흐르면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니 교수보다는 선생으로 기억되고 싶다”라며 후학을 응원했다. 지금껏 쉴 틈 없이 달려 온 그의 앞길에 여유가 자리하기를 기원한다.

 

사진: 정연솔 기자 jysn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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