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교수 인터뷰 | 건축학과 최재필 교수

지난달 6일 건축전으로 분주한 대학원교육연구동(39동)에서 최재필 교수(건축학과)를 만날 수 있었다. 24년간 교수로 재직한 최 교수는 “학문을 배우고 가르치며 서로 나누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 복된 삶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함께해 준 학생들에게 감사하다”라며 정년을 맞이하는 소회를 밝혔다. 

 

 

Q. 대한주택공사 주택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했고 아파트와 관련된 연구를 다수 진행했다. 아파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

A. 고등학교 때부터 아파트에 거주하며 서양의 주거 형식인 아파트가 우리나라에서 성공을 거둔 이유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에서 유학하며 이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고 이때의 흥미를 바탕으로 아파트 연구에 열중했다. 또한 현재 우리 사회에서 당장 해결해야 하는 것이 주택 문제인 만큼 이를 위한 많은 시도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건축 분야가 제공할 수 있는 가치가 분명히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연구를 해 왔다.

 

Q. 1998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보람 있었던 일은?

A. 첫 번째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건축공간분석학을 도입한 일이다. 건축공간분석학을 통해 도시나 건축 공간에서 단순히 형태적인 아름다움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어 있는 사회적 논리를 끌어냈다. 공간에 어떤 사회 제도·관습·철학이 녹아들어 있는가를 분석한 것이다. 내가 건축공간분석학을 도입한 이후로 많은 학자들이 이 분야를 공부하게 돼 보람차다. 두 번째는 2002년에 서울대 건축학과 학제를 변경한 일이다. 기존에는 4년제의 학제를 기본으로 하며 건축학과 학생은 건축학과 건축공학을 함께 배웠다. 나는 두 분야를 각각의 심화전공으로 분리해 건축학 전공을 5년제로 변경하고 건축사를 양성하기 위한 전문 학위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우리나라 건축학 교육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 버린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서울대 캠퍼스 마스터플랜’*이다. 1998년부터 2022년까지 다섯 번의 캠퍼스 마스터플랜에 전부 참여했다. 최초의 캠퍼스가 가지고 있던 비전을 최대한 보존하고 난개발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Q. 현재 관악캠퍼스 공간 활용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A. 서울대 내 단과대와 대학원은 느슨한 형태의 연합체기 때문에 서로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더 많은 건물을 지으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캠퍼스 공간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건물들이 중구난방으로 들어섰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20년 동안 현장에서 이를 막으려 노력했지만 잘 이뤄지지 않은 점이 아쉽다. 나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02년부터 계속해서 ‘캠퍼스 건축가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교 외부에서 캠퍼스 건축 전문가를 초빙해 최소 6~10년 동안 캠퍼스 내의 건축을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Q. 건축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A. 건축을 정의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정의하자면 ‘인간의 모든 가치를 종합적으로 녹여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 온 동반자다. 건축은 사람을 보호하기도 했고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했으며 부나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처럼 건축은 인간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또한 건축을 위해서는 △안전한 건물을 짓기 위한 공학적 사고방식 △사람의 삶을 담기 위한 인문사회적 소양 △예술가적 성향이 모두 필요하다. 이처럼 건축은 종합적 분야다.

 

Q. 우리나라 건축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A. 본래 우리나라의 건축은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20세기 초부터 서양 문화가 들어오면서 큰 변화가 생겼다. 서양의 것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경향 때문에 우리나라 건축의 정체성이 흔들리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우리나라 건축의 정체성이 많이 되살아나고 있다. 현재 이른바 ‘K-컬처’(K-Culture)가 유행하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노래, 춤, 연극같은 분야에서부터 고유의 것이 먼저 발현되고 세계화됐다. 이제 그다음 순서는 건축이 아닐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해 본다. 한국의 건축도 다른 한국 문화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최재필 교수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제3세계의 건축 교육과 퇴직자 재교육 등의 분야에서 봉사하며 여태껏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다고 은퇴 후 계획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람을 보면 건축이 보인다”라며 “항상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사람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를 이해해야 한다”라고 조언을 남겼다. 

 

*서울대 캠퍼스 마스터플랜: 서울대 장기발전계획과 하위 계획들을 연계해 서울대 캠퍼스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연구 보고서.

 

사진: 하주영 기자 sisn0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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