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교수 인터뷰 | 서양화과 김정희 교수

지난달 22일 예술계복합연구동(74동)의 303호 연구실에서 김정희 교수(서양화과)를 만났다. 다양한 분야의 서적으로 가득한 그의 연구실은 2017년 서울대 학술연구상을 받게 해 준 그의 열정을 보여주는 듯 했다. 김 교수는 미술사 외에도 건축과 영화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연구 영역에 한계를 두지 않았다. 그는 미술사를 공부하던 당시를 회상하며 말문을 열었다.

 

 

Q. 미술에서 미술사로 전공을 바꿨다. 그 계기는 무엇이고 퇴임하면서 그 결정에 대해 드는 생각은? 

A. 졸업 전시 심사 때 내 작품이 사회 비판적이고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전시를 불허당해 일부 작품만 전시해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내 작품을 설명하고자 미술사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석사 논문 심사 때 또한 작가의 사회 비판 의식의 피상성이 주제였음에도 그림이 사회 비판적이라며 심사위원들이 심사장에 오지 않아서 결국 새 주제로 논문을 써야 했다. 졸업 후 미술사학이 태어난 독일에서 유학하며 본격적으로 미술사를 공부했다. 배울 것도 많고 학문의 자유도 있는 곳에서 교수님의 격려와 지도하에 공부하니 몸은 힘들어도 행복했다. 귀국해서는 내가 배우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강의를 매번 길게 진행했던 것 같다.

 

Q. 「6월 민주항쟁과 그 후의 한국 미술」에서 “미술 작품은 사회적 유기체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어떤 의미인지?

A. 일차적으로 작가도 사람인 만큼 외부와 완벽히 차단될 수 없으므로 작품에 그가 사회에 반응하는 양상이 반영된다는 의미다. 그다음으로 작품은 미술가의 작업실에서 나온 후부터는 같은 것이라도 놓이는 장소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그래서 미술 작품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미술 작품과 사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므로 작가는 작품에서 본인과 본인이 속한 사회에 관심을 갖고 이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Q. 미술사 연구에서 필요한 자질이나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A. 미술사 연구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독서와 여러 개의 외국어를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 연구에 들어가면 자료 조사를 위해 자연과학자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작품을 세밀히 관찰하고 그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정보를 담은 1차 자료는 물론 작가의 삶과 인간관계도 파악해야 한다. 작품을 분석할 때는 작품이 제작된 시대와 장소는 물론 그것을 연구한 시대와 장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와도 작품을 연결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의미를 볼 수 있는 직관이 중요하다.

 

Q. 현재 한국 미술사학계를 진단해 달라.

A. 미술사학이 대학에서 잘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큐레이터가 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은 많은 반면 미술사를 학문으로 오래 공부하려는 사람은 적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국내 미술사학의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또한 서양 미술의 역사에서 유럽 미술사가 중요한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국내에는 미국에서 서양 미술사를 공부한 사람이 많다. 아울러 대부분의 학생이 미국인이 영어로 쓴 글이나 영어로 번역된 글, 이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글을 통해 유럽 미술을 공부한다. 미국의 시각으로 유럽 미술사를 보게 되면 유럽 미술과 문화의 의미가 왜곡될 우려가 있다. 

 

Q. 학생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A. 첫째, 다양한 분야의 친구를 사귀어라. 삶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지식과 상식의 폭도 넓어진다. 둘째, 장기적인 목표를 너무 구체적으로 두지 않으면 좋겠다. 어떤 지위가 목표가 되면 이를 위해 반칙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단, 삶의 목적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셋째, 예술을 폭넓게 접해라. 미술 작품을 보고, 음악회도 가고, 좋은 고전 영화도 보면 좋겠다. 나 역시 미술사 외의 분야를 접하며 그 분야를 미술과 연결해 연구할 수 있었다. 넷째, 사람들을 배려하고 그들에게 감사하며 고마움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 넉넉한 형편이 아님에도 중앙도서관에 부모님 이름으로 기부해 관정관 4층에 스터디룸이 생기게 한 것은 내 방식의 감사 표시다.

 

Q. 정년 퇴임 후 계획이 어떻게 되나?

A. 생각은 많다. 내가 번역한 박사 논문과 출판됐던 논문 중 일부를 골라 수정해 개정판처럼 준비한 논문집이 곧 출판된다. 박사 논문은 오토 딕스의 여자 그림에 관한 연구로 중산층 지식인 남성의 여성에 대한 이중적 잣대가 표현된 양상을 살펴보면서 부(父)권 중심적인 제도 및 관습의 생산과 구축 방식을 규명했다. 쓰인지 30년이나 된 논문이지만 여성주의가 와전된 국내 현상도 번역 계기가 됐다.

아울러 학문적이지만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글을 쓰고 싶다. 몇 년 전부터 ‘갤러리시선’과 ‘아트 인 그랑서울’에서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쓰고 있는데, 이 또한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이 일을 통해 젊은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주면서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미술사적 맥락에서 되돌아보고 작업을 발전적으로 지속할 수 있게 돕고 싶다. 

 

김정희 교수는 인터뷰 마지막까지 “항상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김정희 교수가 지난 시간 동안 보여 준 학문의 발자취처럼 은퇴 후에도 다채롭게 펼쳐질 그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

 

사진: 정연솔 기자 jysn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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