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디지털 상속의 개념과 전망

싸이월드는 지난 6월부터 약관 개정을 통해 ‘회원의 상속인에 대한 게시글 제공 서비스’(디지털 유산 상속 서비스)를 통해 고인이 된 이용자의 계정 정보를 유가족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싸이월드의 정책이 사생활 침해의 여지가 있다며 반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학신문』은 그동안 디지털 유산 상속이 논란이 됐던 지점을 짚어보고, 법률을 비롯한 디지털 상속 제도의 방향성을 검토하고자 한다.

디지털 상속의 의미와 사생활 침해 논란

디지털 상속은 포털사이트와 SNS 등 여러 인터넷 공간에서 고인이 사용하던 계정이나 계정에 담긴 정보가 상속인에게 상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 상속은 2004년 미국에서 이라크전 참전 용사의 유가족이 포털사이트 야후를 상대로 고인의 이메일 계정을 두고 소송을 벌이며 처음 화두로 떠올랐다. 재판부는 유가족의 손을 들어줬고 야후는 CD에 고인의 정보를 저장해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한국에서도 디지털 상속은 반복적으로 거론된 주제였다. 故 최진실 씨 사망 이후 그의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관리를 위해 상속의 대상이 돼야 하는지가 이슈로 떠오른 바 있으며,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에도 희생자들의 디지털 유산 처리가 문제로 거론된 적 있다.

최근 디지털 상속은 싸이월드의 서비스 때문에 다시 화제가 됐다. 싸이월드는 고인의 계정을 상속과 동일한 절차로 유가족에게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은 약관을 신설했다. 우리나라 대다수 기업의 기존 디지털 상속이 계정을 삭제하거나 계정 데이터의 일부만 이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던 것과 달리, 싸이월드의 서비스는 고인의 계정 정보를 최소한의 절차를 통해 상속인에게 상속하는 방향을 택했다. 싸이월드 운영사 싸이월드제트의 전우상 경영전략팀장은 “아직 고인의 디지털 유산에 관한 전 세계적이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에서 유족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디지털 유산 상속 서비스를 개발했다”라고 서비스 취지를 밝혔다. 

그 취지대로 디지털 유산 상속 서비스가 제 기능을 한 사례가 탄생했다. 2010년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 중 34명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접근 권한을 유가족이 요청했지만, 싸이월드 측에서 관련 규정의 부재를 이유로 거절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싸이월드는 34명 중 비공개 계정을 제외한 25명의 미니홈피 자료를 12년 만에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지난 6월 시작한 디지털 유산 상속 서비스 덕분이다. 

하지만 충분한 의견 수렴이 이뤄지지 못한 채 만들어진 싸이월드의 디지털 유산 상속 서비스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다. 서비스의 방향성에 관한 논쟁조차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 디지털 상속이 논란이 된 원인은 피상속인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보가 상속인에게 이전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싸이월드의 디지털 상속은 계정 자체를 상속재산으로 간주하고 민법상 상속과 동일한 절차로 진행한다. 즉 고인이 살아있을 때 계정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면 사후에 상속인에게 계정이 상속된다. 가족에게 공개하기 꺼려지는 정보가 있더라도 해당 정보가 그들에게 공개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싸이월드제트 측은 “전체 공개 게시물만 디지털 유산 보호 서비스의 대상”이라며 우려를 일축했다.

하지만 이는 고인이 생전에 전체 공개로 사진이나 글을 게시했더라도 가족에게까지 알려질 것을 예상치 못했거나, 생각이 바뀌어 게시물을 비공개할 수 있는 여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김승주 교수(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는 “고인이 본인의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나 가족이 이를 임의로 처리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여지가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디지털 상속이 법적인 사생활 침해로 인정받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최경진 교수(가천대 법학과)는 “디지털 상속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의 주체는 상속인이지만, 이에 관한 구제는 고인이 아닌 상속인이 해야 한다”라며 “침해와 구제의 주체가 일치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최 교수는 “사생활 침해라고 주장하는 사회적 시선이 남아있더라도 법률적으로는 사생활 침해라고 볼 수 없을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동진 교수(법학과) 역시 사망한 사람의 사생활은 살아 있는 사람의 사생활처럼 법적으로 보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교수는 “개인정보는 살아 있는 사람의 것만 보호하도록 법률로 규정돼 있는데, 고인의 개인정보는 그렇지 않으므로 사생활 침해와 관련해서는 법률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이성엽 교수(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는 “디지털 유산은 망자의 개인정보에 해당하기에 이를 프라이버시 차원에서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과 디지털 유산도 상속 제도의 원칙상 상속이 가능하다는 의견 대립이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한국의 디지털 상속과 법률 문제

디지털 유산이 상속재산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는 민법 제1005조의 ‘일신전속’이다. 일신전속은 타인에게 양도 불가능하고 특정 주체에게만 귀속되는 속성이다. 만약 디지털 유산이 일신전속권을 가진다면, 인터넷상 계정과 정보가 계정 주인 본인에게만 귀속돼 타인에게 상속될 수 없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디지털 상속 서비스가 정말 일신전속권을 가지고 있는지 확정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최경진 교수는 “인터넷상의 계정은 일신전속인지 확답하기 어렵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싸이월드제트와 함께 디지털 상속 법제화를 준비하고 있는 법무법인 바른의 백설화 변호사는 “계정과 이에 속한 정보는 부동산이나 채권 같은 일반적 재산과 다른 성격을 갖고 있는데 상속에 관한 특별법이 부재한다”라며 “게시물은 재산권적 성격을 띤다는 데에 견해가 다소 일치하지만 계정 접속권은 인터넷 사용 서비스 사용 계약에 따른 재산권인지 인격권*인지 논란이 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백 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서는 디지털 상속에 관한 법률과 판례가 모두 부족해 이와 관련된 법적 문제를 판단할 해석의 근거가 빈약하다”라며 “이 때문에 기업에서 디지털 상속 정책을 시행하기를 주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디지털 상속을 법제화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시도가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과거 국회에서 여러 차례 디지털 상속을 다루는 법률 개정안이 발의된 적이 있다. 제18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박대해 전 의원(현 국민의힘) 등 11인이 고인이 생전 미리 지정한 사람에게 미니홈피 혹은 블로그 관리 권한을 부여하는 일명 ‘디지털 유산법’을 발의했지만 임기만료 폐기됐다. 제19대 국회에서도 새누리당 김장실 전 의원(현 국민의힘) 등 11인 또한 유사한 취지의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마찬가지로 임기만료 폐기됐다. 디지털 상속을 제도화하려는 노력이 별다른 결과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디지털 상속, 손놓고 있을 수 없다

기업별 디지털 상속 정책 사례
기업별 디지털 상속 정책 사례

다른 국가의 경우는 어떨까. 독일은 2018년 연방대법원 판결을 통해 디지털 상속을 인정하는 방향을 택했고, 미국 또한 일부 주에서 디지털 상속을 법제화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명확한 규정을 통해 인터넷상 계정과 정보의 상속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아직 미진하다. 현재 상황을 두고 이성엽 교수는 “한국은 아직 인터넷 플랫폼 정책의 방향성이나 법원의 입장이 분명하지 않으며 법제화 방향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며 “우리나라도 디지털 유산 승계에 관한 정책을 마련하되, 망자의 생전 의사를 존중해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관련 판례나 사회적 합의가 부재한 현 상태에서 성급한 법제화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선 현재 제도에 맞춰 관련 문제를 타개할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특히 국회에서 포괄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기업은 고인의 계정 정보를 어떻게 다룰지 생전에 해당 계정주의 의견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명주 교수(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는 “기업이 이용자 사후 정보 처리 방안을 약관을 통해 전부 명시하면 된다”라며 임시방편을 내놨다. 김 교수는 “결국은 국회에서 디지털 유산이 개인정보인지, 디지털 자산인지, 역사적 기록물인지 여부를 결정해야 해결되는 문제”라며 “최소한의 경계선을 법으로 만들고 그를 바탕으로 약관을 변경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최경진 교수는 “현행법으로 디지털 상속 문제가 해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계정 내 정보들에 각각 다른 권리가 적용된다”라며 “이를 일일이 규율할 수는 있지만 너무 복잡하거나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라고 밝혔다. 최 교수는 “계정 정보를 유산으로 다루는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디지털 상속 관련 규정 신설이 가져올 파장을 고려해 신중을 기하는 것이다. 김승주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상속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우리나라 국민의 생각을 조사하는 등 다양한 사안을 모두 고려해 정책 방향성을 결정해야 한다”라며 “지금은 공론화해 의견을 들어야 하는 단계지, 결정해야 하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동진 교수는 법률 제정만으로 가져올 수 있는 효과는 크지 않다며 “세부적인 사항을 기업 약관으로 규율하면 현행 법률을 해석하는 것만으로 법률 제정과 비슷한 결론을 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어 “약관으로 규율하면서 차차 발전시키는 것이 복잡한 현실 상황을 대처하는 데에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디지털 상속은 단순한 논란거리에 그쳤을 뿐, 법적 분석과 해결책을 찾으려는 시도는 부족했다. 상속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은 분명 많은 논의가 필요한 일이기에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신중하게 제도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상속을 단순히 스쳐 가는 이슈로 보며 소모적인 논쟁을 반복하지 않는 미래를 기대한다.

*인격권: 권리의 주체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사람으로서의 품격과 관련된 이익을 내용으로 하는 권리.

삽화·인포그래픽: 신윤서 기자 oo00ol@snu.ac.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