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직 교수(경제학부)
김세직 교수(경제학부)

경제학에는 ‘악화(bad money)가 양화(good money)를 몰아낸다’라는 유명한 법칙이 있다. 이를 발견한 16세기 영국 금융가 토머스 그레셤의 이름을 따서 ‘그레셤의 법칙’이라고 불린다. 이 법칙은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 귀퉁이가 훼손되거나 은 함량이 낮은 은화로만 값을 지불하고 좋은 은화는 자기 금고에 보관해 시중에는 결국 나쁜 은화만 유통되는 것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이 법칙은 화폐에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인재나 지도자를 선출하는 경우에도 종종 성립한다. 자리만 탐하는 인사들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의 특질을 가진 인재를 몰아내는 ‘인재 그레셤의 법칙’이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어떤 사회 또는 조직에서는 현실의 지도자 중 후자의 지도자는 거의 없고 전자의 지도자만 넘쳐나는 일이 벌어진다. 이런 인재 그레셤의 법칙을 막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에 대해 사회 구성원이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총장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창조성’이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역사의 연구』에서 지구상에 명멸했던 수많은 문명의 흥망성쇠를 연구한 후 중요한 결론을 도출했다. 그 결론은 한 사회가 위기와 도전에 처했을 때 이에 성공적으로 응전해 번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해법을 제시하는 창조적 지도자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도 저서『경제발전론』에서 경제가 성장하고 번영하려면 혁신적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지도자로서의 기업가가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혁신하지 않는 지도자는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그저 관리자(manager)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필자가 2016년 논문에서 제시한 ‘5년 1% 하락의 법칙’에 따라 1990년대 이후 장기성장률이 5년마다 1%p씩 30년간이나 추락해 이제 경제성장이 멈추고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한때 역사상 유례가 없던 고속 경제성장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대한민국이 지금 심각한 위기와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런 위기와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하기 위해서는 관리자형 지도자가 아니라 위기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새로운 해법을 과감하게 실행하는 창조형 지도자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 된 큰 원인은 개인이건 기업이건 창의적 아이디어를 남들보다 먼저 만들어내야 살아남는 ‘아이디어 무한 경쟁 시대’에 벌써 진입했음에도 우리 교육은 남이 만든 지식을 외워 익히는 과거의 모방형 교육을 아직도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라의 위기에 서울대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이제라도 나라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울대부터 앞장서서 나라를 살릴 아이디어를 만들 창의적 인재를 키워내는 교육으로 180도 전환해야 한다. 시대적 요구인 이런 한국 교육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이끌고 교수님들의 창의적 연구를 지원할 획기적인 연구 환경을 조성해야 하기에 서울대 총장은 말로만 창의와 혁신을 외치는 후보가 아니라 뼛속부터 창조성이 체화된 누구보다도 혁신적인 지도자여야 한다. 

그런데도 만에 하나 창의성보다는 평소 학연과 지연 같은 사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에 능한 ‘마당발’형 정치 지향적 후보가 창조적 후보를 몰아내는 인재 그레셤의 법칙이 작동하지 않을까 하는 기우를 갖게 된다. 

혹시라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이번 선거에는 대학 구성원이 눈을 부릅뜨고 모니터링해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창조적 능력과 비전을 총장 선출의 제1 기준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이 기준에 적합한지 검증하기 위해 일생에 걸쳐 각 후보가 실제로 얼마나 많은 창의적 아이디어들을 만들고 실현해 왔는지 ‘창조적 성과 이력’을 제출하고 발표하게 하면 어떨까? 이를 후보들 간 비교 평가해 말로만이 아니라 진짜로 가장 혁신적인 후보를 총장으로 선출해야 위기와 도전에 직면한 나라가 살고 서울대가 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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