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박재아 수습기자 0204jaea@snu.ac.kr
삽화: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최근 온라인에서는 “누가 칼 들고 협박했나?”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줄여서 ‘누칼협’이라고 하는데 어떤 사안에 대해 누군가 불만을 표출할 때 “누가 칼 들고 하라고 협박하지 않았고 본인이 선택한 일이니 본인이 책임져라”라고 대응하는 것이다. 이 표현은 본인의 행동에는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사안에 관해 깊이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사안 자체를 없애서 회피하려는 매듭 자르기의 오류를 범하고 있어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라는 오래된 표현이 있다. 어떻게 보면 재미로 쓰는 표현이지만 누칼협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회 현상과 관련이 있다. 

사례 1: 8월 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기조에 관해 이야기할 때 “연말 이후로는 금리를 올리지 않을 거라고 예상한 투자자가 있으면 자기 책임하에 손실을 보시든지 이익을 보셔야 할 것 같고요”라고 했다. 투자에 대한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시기 정부는 시장에 많은 돈을 풀며 경기를 끌어올리는 데 심혈을 기울였지만,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에 인플레이션이라는 고지서로 돌아왔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정부와 중앙은행은 재정지출을 줄이고 금리를 인상하는 등 긴축적 기조를 이어가고 있지만, 그동안 대출을 통해 부동산을 구입하고 주식투자를 한 젊은 ‘영끌족’에게는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다.

사례 2: 바이든 정부에서 최근 논의되는 미국의 학자금 대출 탕감과 한국의 자영업자 부채 탕감 제도인 새출발기금이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개인의 부채 문제를 정부가 나서 해결한다는 명분이지만, 한편으로 교육과 자영업은 개인의 선택이고 부채는 그 선택의 결과인데 왜 세금으로 지원해 줘야 하느냐는 비판이 있다. 더군다나 이런 정책은 민간에 다시 돈을 풀며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어 인플레이션 억제를 목표로 하는 기조와 일관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사례 3: 2023년 공무원 임금 상승이 1.7%로 결정되자 일부 공무원이 시위에 나섰다. 올해 7월 전년동월대비 소비자 물가지수가 6.3% 상승했기 때문에 올해와 내년 공무원의 실질 임금은 감소하게 된다. 이에 일부 사람들은 공무원은 고용과 미래 소득 흐름이 안정적이라 대다수 사람보다 형편이 낫고, 공무원이 된 것은 본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싫으면 공직을 떠나야 한다며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아직 일부 사람들만이 쓰는 용어이지만, 누칼협이라는 표현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만약 누칼협이 우연히 만들어져 쓰였다면 다행이지만, 일반적으로 한 시대의 언어는 그 시대의 모습을 반영하기에 우연보다는 피곤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원은 한정돼 있기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서로 간의 불만 표출과 이해관계 조정 과정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조차도 회피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반영하는 듯하다. 혐오의 시대에 사는 피로감, 코로나19와 관계의 단절, 경기 침체,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지쳐 새로운 문제에 귀를 기울이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상실되며 등장한 반응이 아닐까. 어떤 정책을 도입할 때 기계적인 해결책을 내놓기 전에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