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중장기발전계획〉 보고서 발간돼

지난달 〈서울대학교 중장기발전계획 보고서〉(보고서)가 발간됐다. 서울대의 장기적 발전 계획을 제시하는 보고서가 발간된 것은 2007년 이후 15년 만이다. 보고서는 △비전 △교육 △연구 △학생 지원 및 복지 △국제화 및 사회 공헌 △멀티캠퍼스 △재정 △대학 운영 체제의 총 8개 분과를 다루며, 교원·학생·직원·외부 전문가 등 총 85명의 위원이 중장기발전계획 수립에 참여했다.

◇15년만의 (중)장기발전계획, 무엇이 달라졌나=서울대의 미래를 그린 발전 계획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에도 『2007~2025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장기발전계획)이 발간됐다. 두 보고서는 서울대의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목적을 공통으로 하고 있으나 그 형식이나 세부 목표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장기발전계획위원회 노정혜 공동위원장(생명과학부)은 “장기발전계획은 국제화와 법인화를 주된 지향점으로 잡고 여러 정량적 지표를 목표로 제시했다”라며 “이번 보고서는 법인화 10년 이후 급변하는 세계에서 서울대가 세계적 일류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체질 변화를 거쳐야 하는지를 정성적으로 제시했다”라고 그 차이점을 밝혔다. 또한 기획과 주용석 주무관은 “이번 보고서는 서울대의 현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발전 계획에 관한 구성원의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했다”라며 “계획의 실효성과 추진력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 차별점”이라고 전했다.

◇새로운 시대에 발맞춘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보고서에서는 주요 교육 혁신 방안으로 ‘전공·학과·단과대 간 장벽 없애기’를 제안했다. 이신형 위원(조선해양공학과)은 “학과와 전공을 동일시하면 안 되고 전문성을 위해 끊임없는 재교육이 제공돼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단기적으로 2025년까지는 현행 다전공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이, 중장기적으로 2040년까지는 무(無)전공 제도의 도입이 제시됐다. 이신형 위원은 “비교적 적은 학점을 듣고 취득할 수 있는 학위인 마이크로디그리(micro degree)와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면 현재와 같은 엄격한 규제의 다전공 제도 없이도 전문성 제고와 재교육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신혜경 위원(미학과)은 “현재의 학과 단위는 자본주의 분업 논리의 반영인 측면도 있고 이전의 학문 체계가 고수돼 있는 것도 많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다른 학과와 공유점이 많은 공동 연구를 통해 새로운 학문적 성과를 낼 여지가 많아지고 있다”라며 “기존 체제에서 이런 연구를 하는 분들은 특정 학과에 소속되거나 임용되기 어려울 수 있다”라고 기존 분과 체제의 개편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편 이런 방안의 현실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광역 모집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 2002년부터 단과대별 광역모집이 시행됐으나 특정 학과에 학생이 몰려 전공의 균형적인 발전을 저해하고 학문의 다양성을 깨뜨리는 결과를 낳아 15년 만에 폐지됐다. (『대학신문』 2015년 5월 11일 자) 이에 대해 신혜경 위원은 “학생이 인기 학과에만 몰린다면, 학생이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든 학교 교육과 사회의 책임을 돌이켜 봐야 하고 그렇기에 그런 학교 교육과 사회 자체를 바꾸려 노력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동시에 그는 “전통적인 학문의 토대를 유지하며 유연하게 분과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이야기”라며 “보호 학문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지금보다 획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기존 전공 체계의 타파에 앞서 △아카데믹 어드바이저 △관악 기숙형 대학(RC) △교양 혁신 및 교양 대학 설립 등의 여러 선행 과제를 제시한다.

이 중 RC의 경우, 2023년 시범 사업을 거쳐 그 결과를 바탕으로 실제 도입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현실성 부족이나 학내 구성원 간 이해 충돌 등의 우려가 존재한다. 이에 관해 신혜경 위원은 “교육 분과 참여 위원이 전체적으로 RC 도입에 찬성하긴 했으나 이견이 많은 사안”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신형 위원은 “뚜렷한 철학과 구체적인 운영안 없이는 RC 도입에 반대한다”라며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공감대를 형성한 다음에 추진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참여 의지가 없는 학생에게까지 무언가를 강제로 시키는 건 잘못된 집단적 문화의 잔재”라며 RC의 조속한 도입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서울대 국제 경쟁력 강화는 어떻게?=보고서는 국제화 목표의 핵심을 질적 국제화로 설정했다. 서울대 구성원이 국제적 가치를 함양하고 대학 시스템을 국제적 기준에 맞춰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화 및 사회 공헌 분과 위원장을 맡은 박철희 교수(국제대학원)는 “지금까지는 인바운드* 중심의 양적인 국제화에 주안점을 뒀다”라며 “이제는 해외 유수 대학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는 등 국제화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서울대 시스템 전체를 국제화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인재 학부의 신설은 국제화 분과의 핵심 과제다. 글로벌 인재 학부는 글로벌 인재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조직으로 △글로벌 자유전공학부 방식의 트랙 △국제학부 방식의 트랙 △글로벌 한국학 트랙의 멀티트랙형 프로그램 등이 제안됐다. 이에 관해 박철희 위원장은 “외국인 교육·연구 전담 기관이 생기면 학교 전체의 국제화에도 굉장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고서에 기존의 양적 국제화에 대한 집중 역시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민교 교수(행정대학원)는 “국제화를 위한 임계 질량이 확보돼야 질적인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라며 “서울대는 아직 여러 양적 지표에서 임계 질량에 못 미치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외국인 학생 수 자체가 적다 보니 영어 진행 과목 증설의 필요성이나 행정적 지원이 미비한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구 교수는 “방향과 거리, 즉 질적 국제화와 양적 국제화 모두가 중요하다는 복합적인 인식이 필요하다”라고 평했다.

◇거버넌스, 여전히 미결 과제=불신이 팽배한 거버넌스의 구조 개혁은 보고서의 중점 혁신 과제로 꼽힌다. 보고서는 아직까지 자율성 확보라는 법인화의 목적이 제대로 달성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특히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상 총장 선출은 이사회의 권한이지만 점차 직선제적 요소가 가미되며 총장 선출에 관한 이사회의 권한이 제한됐다. 안도경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총장 선출 시 정책평가단의 평가 결과를 이사회가 뒤집기 힘들다”라며 “실질적으로 이사회의 권한이 적어 이사진의 책임감도 크지 않다”라고 평했다.

보고서에는 이사회 중심의 총장 선출이 이뤄져야 한다는 제언도 담겼다. 보고서는 △이사회가 전권을 갖고 총장을 임명하는 방안 △외부 인사를 포함해 이사회가 추천한 인물에 대해 구성원이 임명 동의 투표를 하는 방안 △현행 4년의 임기를 연장하거나 연임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 △총장에 대한 중간 평가나 탄핵을 도입하는 방안이 논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복잡하고 불확실한 선출 과정은 총장 선출의 정당성을 결여시키는 요인이다. 안도경 교수는 “최종 후보 4명을 선정하는 방식, 정책 평가 방식 및 반영 비율 등이 선거 때마다 달라진다”라며 “이런 변화를 학내 구성원이 잘 알지 못해 상향적 직선제 측면의 정당성이 훼손된다”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정책평가단 선정 방식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학생은 사전 신청한 전원이 정책 평가에 참여 가능하나 교직원의 경우 단과대 규모에 비례해 당일 오전에 무작위 선출된다. 보고서는 이런 방식이 원표본 유지가 곤란할 뿐 아니라 숨겨진 참여 의향에 민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정묵 위원(농생명공학부)은 “교수들도 전원 투표를 해 비율로 합산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보고서가 총장 선출의 문제점을 자세히 제시한 데 비해 구체적 해결책이 부족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안도경 교수는 “보고서가 작은 해결책을 지엽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쳤다”라고 지적했다. 임정묵 위원도 “총장의 권한 범위 설정과 같은 본질적 문제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라며 “연임 등은 그 뒤에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보고서는 학내 기관 간 관계가 명확히 설정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임정묵 위원은 “규정상 이사회가 모든 결정의 최고 기관이 되며 평의원회와의 업무 분담이 매끄럽지 못하다”라고 밝혔다. 그는 “학사 업무에 전문성을 가진 평의원회가 아니라 이사회가 학사 의결권을 가지고 있다”라며 “이는 기관 사이 의결 기능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중장기발전계획은 혁신을 위한 밑그림에 불과하다. 그림의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지만, 보고서가 제시한 의제 중에는 아직 구체화해야 할 부분이 많다. 앞으로의 지속적인 논의와 학내 구성원의 의지로 서울대의 발전을 위한 청사진이 그려지기를 기대한다.

*인바운드: 외국인 구성원을 받아들여 국제화를 꾀하는 전략.

 

김민석 취재부 차장 kimmin4200@snu.ac.kr

김창희 취재부 차장 edawm@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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