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컴퓨터공학부·18)
김형준(컴퓨터공학부·18)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코딩이라는 유령이. 대학가 역시 예외는 아니다. 당장 지난 학기 수강한 컴퓨터공학부 전공과목들만 보더라도 주전공생보다 복·부전생의 수가 월등히 많았던 기억이 있다. 몇몇 전공의 경우 서울대 간판을 달고도 취업이 요원한 반면, 컴퓨터공학 전공자는 비싼 값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탓이다. 이와 같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인해 심화된 편중 현상은 소프트웨어 분야의 인력난 해결에 기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는데, 적잖은 수의 사람들이 ‘코딩을 위한 코딩’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뒤처질 수 없다는 불안은 평생 뒤처진 적 없이 살아온 명문대생의 영혼을 어렵지 않게 잠식한다.

이런 불안감은 코딩을 공부하는 주변인과 언론에 의해 촉발되기도 하나, 무엇보다도 코딩 학원에 의해 확대·재생산된다. 분명 코딩 교육 시장은 성장 일로를 걷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래야 마땅한 분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대광고로 무장한 대다수 학원의 작태를 보고 있자면 헛웃음이 나온다. 이들은 소위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에 입사한 수강생들을 전시하며 평균 연봉을 과시적으로 내세운다. 소수의 고액 연봉자들로 인해 부풀려진 수치는 대다수의 수강생이 만족스럽지 않은 연봉을 수령하고 있음을 애써 숨긴다.

한술 더 떠 ‘90일 속성 머신 러닝’, ‘6개월 AI 전문가 코스’ 등의 허무맹랑한 카피를 보고 있자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누군가는 코딩 학원이 단언한 기간 내에 전공생 이상의 실력을 갖출 것이다. 대학생 때 본격적으로 농구에 입문해 이후 NBA MVP를 수상한 선수가 있는 것 혹은 고졸 출신으로 사법고시 수석을 차지한 사람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드문 일이기에 우리는 그들을 ‘아웃라이어’라 일컫는다. 실상 학부 4년은커녕 석박사 과정까지 끝마쳐도 이들이 홍보하는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는 역부족이다. 가령 ‘변호사 3개월 완성’ 내지는 ‘180일 외과 의사 코스’였다면 반응이 같았을 리 없다. 그러니 작금의 열풍은 다소간 개발 직군에 대한 무시 내지는 무지에 기반하는 듯 보일 따름이다. 아웃라이어가 아닌 이상 고작 수개월을 투자하는 것만으로 업계가 요구하는 고급 개발자가 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쯤에서 이 글이 당연하게도 비전공자의 코딩에 대한 관심을 억누르기 위해 쓰이지 않았음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정확히 말하면 모두가 코딩을 할 필요는 없지만 모두가 코딩을 알 필요는 있다. (다른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물론 소프트웨어 분야는 극소수의 천재가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야다. 예컨대 (모두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마크 저커버그, 세르게이 브린, 래리 페이지, 리드 헤이스팅스는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코딩을, 컴퓨터공학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추상화를 위시한 논리적 사고를 훈련하기에 최적의 방법일 뿐만 아니라 개발자와의 협업에서 큰 이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학문을 공부하든 코딩은 해당 분야와 세상을 잇는 가교로 기능한다. 다행히도 세상은 이에 발맞춰 변화하고 있다. 말하자면 컴퓨터공학은 제2의 수학이 돼가는 중이고, 이는 비단 대한민국만의 유행이 아니며 전 세계적인 추세에 해당한다. 따라서 초중고에서 교양으로서의 코딩을 교육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텐데 이런 맥락에서 지금의 20대는 저주 받았다고 볼 수 있겠다. 응당 코딩을 알아야 하는 세상에 너무 일찍 도착했으니 말이다.

관련 학과의 정원을 확대하고 비전공자에게도 학습의 기회를 주는 편이 최선이겠으나 현실적인 어려움이 산재해 있다. 그러니 교양으로서의 코딩을 학습한 이들이 대거 사회에 진출할 때까지는 대학 외부의 교육에 얼마간 빚질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상술한 코딩 학원들의 행태가 대폭 개선되거나 문제의식을 지닌 양심적인 사업자의 진입을 기대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일말의 희망. 나는 이 자그마한 희망에 억지로라도 기대를 걸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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