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희 취재부 차장
김창희 취재부 차장

호기롭게 〈서울대학교 중장기발전계획〉 취재를 맡았다. 200쪽이 넘는 보고서를 뒤적이다 문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대 총장은 서울대와 병원을 포함해 자산 10조 원, 연 예산 4조 1,000억 원의 조직을 총괄하는 CEO이기도 하다”. CEO란 무릇 기업의 수장을 이르는 말이 아닌가. 문득 ‘재무관리’ 수업에서 배운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문제가 떠올랐다. 

조직의 존재 이유에서 ‘그 조직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기업의 목적은 기업 가치를 제고하는 것이고, 따라서 기업의 주인은 주주다. 기업 활동의 남은 몫을 가져가는 잔여청구권자라는 점에서 이 사실은 명백하다. 그렇지만 기업과 달리 대학의 주인이 누구인지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의 존재 이유를 곰곰이 고민해 봤다. 연구를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생산하고, 교육을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연구와 교육이라는 대학의 존재 이유를 고려한다면 대학의 주인은 교수와 학생이다. 그러나 이들을 보조하는 직원은 주인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일까? 재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상황이 더 복잡하다. 서울대 재정의 57.2%는 정부 출연금으로 충당된다. 즉, 국가로부터 지원받는 돈이다. 등록금으로 충당되는 예산은 전체의 19.2%에 불과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교수, 학생, 직원과 더불어 서울대의 주인은 국가와 국민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재정적으로 서울대를 지원하는 우리 사회의 신뢰는 이사회로 위임된다. 따라서 이사회는 △총장 선임 △재정 △조직 운영 등을 심의하고 의결할 법적 권한을 갖는다. 

주인들의 권한이 이사회로 위임됐다면, 대표인 총장을 이사회에서 선출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서울대의 총장 선출 방식은 교내 구성원이 정책평가단을 구성해 최종 후보자를 추리고, 이사회가 최종 후보자 중 총장을 선출한다는 점에서 직선제적 요소와 간선제적 요소가 혼재돼 있다. 법인화의 취지와 직선제적 성격이 강했던 기존 선출 제도의 역사적 맥락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총장을 선출하는 것인데, 선거를 거듭할수록 직선제적 요소가 강화되고 있다. 최종 후보자를 가리는 정책 평가 단계에서 학내 구성원으로 이뤄진 정책평가단의 반영 비율이 점차 증가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직선제 요구가 강화되는 흐름의 중심에는 이사회에 대한 불신이 있다. 이사회가 유능한 수장을 선택할 것이란 믿음을 구성원에게 주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의 투표 반영 비율을 높이자’나 ‘1인 1표를 행사해야 한다’와 같은 주장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직선제적 요소가 강화될수록 서울대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국가, 국민과 내부 구성원 사이에서 대리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장기적 비전을 가진 후보보다는 환심성 공약을 내세우는 후보가 많은 표를 받을 것이다. ‘어떻게 대표할 것인가’에 대한 숙의가 필요하다.

제법 큰 질문을 던졌지만 만족할 만한 답을 내지 못했다. 거버넌스 문제는 근본적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문제’라는 중장기발전계획 보고서의 문구가 이해된다. 4년 만에 총장 선거가 돌아왔다. 이번 선거가 거버넌스 문제에 대해 구성원이 함께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