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우 기자(사회문화부)
정연우 기자(사회문화부)

나는 ‘4호선 통학러’다. 지난 학기, 9시 반에 시작하는 기말고사를 앞두고 좀처럼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 4호선 열차 안에 서서 발을 동동 굴렀다. 52일 만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시위가 재개된 날이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교수님께 양해를 부탁드리는 문자를 구구절절 써 보낸 다음, 택시라도 타야 하나 싶어 콜택시 앱을 켰다. 택시를 타도 최소 40분 지각임을 확인하는 순간, 눈물이 뚝 떨어졌다. 그 순간 내 머리를 스쳐 간 수많은 생각 중에는 분명 ‘왜 하필 출근길에 시위를…’이라는 원망도 있었다.

늦는 바람에 시험을 망치고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이전까지는 시위를 한다고 하니 이유가 있겠거니 하며 시위를 응원하는 입장이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볼모라느니 비문명이라느니 하는 발언과 이동권 보장을 약속한 서울시장이 누구인지를 따지는 정치적 접근에 질린 마음으로 괜스레 시위를 더 지지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시험에 늦었다는 이유로 잠시 품었던 불만에 대한 부끄러움과, 무엇을 위해 시위를 하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옹호해 왔던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섞여 씁쓸해졌다.

이런 혼란 속에서 시작된 장애인 이동권 취재는 하면 할수록 미궁으로 빠져 들었다. 한국에서 만난 장애 당사자와 전문가 취재원은 대체로 비슷한 의견을 내보였다. 불편하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장애 당사자인 정혜인 씨와 함께한 취재에서도, 기사에서 본 만큼 극단적인 불편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이쯤 되니 시위의 정당성을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만난 취재원들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내놓았다. 나아지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한국 취재를 마친 후 우리나라 정도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 내 안도감이 산산이 부서졌다. 세계 어딘가에서는 휠체어 이용자가 헤매지 않아도 엘리베이터를 찾을 수 있었고, 기다리지 않아도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기말고사 날 지하철이 멈춰 내가 택시를 잡았듯, 휠체어 이용자도 길이 막히면 지하철을 타고 시간이 없으면 택시를 탈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지하철에 나와 온몸으로 기어가며 투쟁하지 않아도 정부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전장연 시위 도중 할머니 임종을 지키러 가야 한다고 울부짖었던 한 시민에게 이형숙 대표는 “버스 타고 가세요”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그 말 뒤에 자신도 이동 수단이 없어 새벽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며 울먹였다. 그녀의 버스 타고 가라는 말에는, 버스도 타고 갈 수 없었던 본인의 현실이 담겨 있다. 이동하고 싶다는 외침은 세상에 나와 눈을 맞추고 살을 맞대고 싶다는 간절한 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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