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 〈책 빌려주는 교수님〉 이장섭 교수님 편, 『우주선 지구호 사용설명서』

우주선 지구호 사용설명서

벅민스터 풀러

이나경 옮김

144쪽

열화당

2018년 9월 10일

 

 

『우주선 지구호 사용설명서』는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독특한 관점으로 제시한 고전이다. 저자 벅민스터 풀러는 지구를 한정된 자원을 가진 우주선에 비유한다. 그는 유한한 자원을 최소한으로 소비하기 위해 모두가 협력해야만 지속 가능한 미래를 그릴 수 있다고 말한다. 우주선 지구호는 ‘인류의 행복한 삶’이라는 목적지에 착륙할 수 있을까? 26일(월) ‘대학신문’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되는 <책 빌려주는 교수님> 제9편, 이장섭 교수(디자인학부)의 추천 책인 『우주선 지구호 사용설명서』를 미리 만나보자.

 

지구라는 우주선이 처한 위기

벅민스터 풀러는 지구의 현 상황이 방금 알을 깨고 나온 새와 같다고 말한다. 어미 새로부터 자양분을 받아먹 듯 지구로부터 필요한 자원을 얻었던 인류는 이제 자원 고갈이라는 현실을 맞닥뜨리게 됐다. 저자는 지구에 저장된 연료가 유한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자연을 착취하고 무한 생산과 무한 소비를 추구하는 시대상을 비판한다. 또한 무리한 생산과 소비의 굴레가 반복되지만 한편으로는 인류의 절반 이상이 비참한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꼬집는다. 

풀러는 자원 고갈과 빈부 격차 등의 문제는 모두 인간이 전 지구적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사고하지 못한 탓에 생긴 문제라고 주장하며, 이를 부추기는 원인으로 전문화를 짚는다. 우리 사회에는 전문직에 종사하면 미래가 보장된다는 기대가 팽배하다. 사람들은 전문직에 종사하기 위해 좁은 범위만을 파고들며, 학교 교육도 아이들의 즉흥적인 호기심보다는 전문화에 초점을 맞춰 이뤄진다. 풀러는 이렇게 탄생한 전문화 현상이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를 억제한다고 주장한다. 전문화된 인간은 부분을 통해 전체를 움직이는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개인의 성공을 위해 협력과 조화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저자는 전문화가 이른바 ‘고급 노예 제도’를 야기한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는 오직 전문화된 일부 영역만 소유하고, 나머지 능력은 권력자가 독점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일한 해결 방법, 총체적 사고

풀러는 우주선 지구호의 사용설명서는 사실상 없다고 주장한다. 대신 인류의 타고난 지성과 정신력을 발휘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본다. 저자는 인간을 ‘환경 적응력이 가장 뛰어나고 통찰력과 탐구력, 실행 능력까지 갖춘 존재’라고 묘사하며, 자연이 부여한 지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바람직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풀러에 따르면 우리의 지성은 궁극적으로 ‘총체적 사고’를 지향해야 한다. 총체적 사고란 한 가지의 전문 분야에만 매몰되지 않고 전체를 아우르는 사고를 의미한다. 여러 분야를 통합해 인식하는 인간의 총체적 능력은 한정된 자원의 불균등한 분배와 이에서 비롯된 사회적 불균형이라는 현 시대의 문제를 극복하는 힘을 지닌다. 폭넓은 사고를 통해 인류라는 집단을 이해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함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시작점이다. 풀러는 동료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인간은 한정된 자원의 불균등한 분배가 문제임을 자각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렇듯 인류 공동의 미래를 지향한다면 그 과정에서 사회적 불균형은 점차 해소될 수 있다. 요컨대 저자는 인류가 지닌 총체성의 회복만이 지구호의 지속 가능한 항로라고 주장하며, 이를 통해 인류가 우주선 지구호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우주선 지구호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저자는 더 구체적으로 환경–인간, 기계–인간 사이의 시너지와 총체적 사고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풀러는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이유는 태양·달·부(wealth)가 시너지를 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태양은 에너지를 공급하고 달의 중력은 조수 현상을 일으켜 인류를 생존하게 한다면, 부는 인류가 풍족한 미래를 살게 한다. 특히 풀러는 독특한 방식으로 부를 재정의하며 불평등의 해소 방안을 제시한다. 그는 에너지는 ‘물리적 부’, 지식은 ‘관념적 부’이며, 전자는 총량이 보존되는 반면 후자는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인류가 지식이라는 자원에 투자한다면 공동의 부를 키워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풀러에 따르면 모두의 지식 자원을 합치면 부의 총량이 증대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부는 특정 자본가의 전유물이 아닌 인류 공동의 자원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현재 마주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지구호를 끊임없이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자원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며 생긴 구조적 실업 또한 인류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풀러에 따르면 기계에 밀려 직장을 잃은 이들에게는 연구개발직과 같이 사고하는 주체로서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제공해야 한다. 반복 노동에 대한 기계의 가치를 인정하고 인류는 총체적 사고와 시너지를 바탕으로 지구호를 수리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풀러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을 거듭 강조한다. 그 출발점은 인류가 서로를 돕고 의지하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전제하고 협력하는 데 있다. 결국 우주선 지구호 사용설명서는 인류가 차차 만들어 가야 한다. 모두의 지성을 발휘해 그때그때 마주하는 심각한 위기에 관한 설명서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

 

*시너지: 저자는 “시스템 내의 개별 부분이나 그 부분을 어떻게든 조합한 것들을 따로 관찰해서는 예측하지 못하는 전체 시스템의 행동”이라고 재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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