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다정 코디네이터(국제한국학센터)
연다정 코디네이터(국제한국학센터)

인류는 과거부터 여러 이유로 흔적을 남겨 왔다. 기억의 한계라는 거스를 수 없는 자명한 사실을 극복하기 위해 무언가에 기록을 남긴 것이다. 중국 은나라에서는 소뼈와 거북이 등껍질에 문자를 새겼고, 고대 이집트인은 돌에 사물의 모습을 본떠 만든 그림을 그렸으며, 수메르인은 진흙에 그림 문자를 새겼다. 동물 뼈나 껍질 또는 돌에 새기면 이동할 때 불편했고, 진흙에 기록하면 유실될 가능성이 높아 이를 보완하는 매체로 종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조선 시대에는 학문에 매진하고자 했던 양반이 대나무를 잘라서 그 위에 기록했고, 석판과 종이에도 많은 기록물을 남겼다. 이는 당시 모습이 어땠는지 추적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중요한 기록 문화로 볼 수 있다. 

동물의 뼈나 껍질, 그 외 돌과 나무에 기록을 했던 과거와 달리 현대에 와서는 디지털 매체의 발전에 따라 고문서를 포함한 국가 기록 유산이 디지털화돼서 저장된다. 정부는 데이터베이스(DB)화를 위해 디지털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추진 중이다. 보존의 측면에서 유실되기 쉬운 점을 보완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기록물을 영속적으로 보존해 관리할 수 있도록 디지털로 변환해 남기는 것이다. 이는 또한 온라인 정보 제공을 확대해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만들고자 하는 취지를 갖고 있다. 

최근〈한산〉이라는 영화를 보고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깊이 빠져들었다. 영화〈한산〉은 충무(忠武) 이순신 장군이 1592년(선조 25) 8월 14일(양력) 한산대첩을 펼쳤던 한산도 앞바다에서 일본군을 무찌른 역사적 장면을 담았다. 조선을 통해 명나라에 진출하려는 일본의 야욕을 간파하고 전쟁의 수를 가늠하려고 한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생생했다. 지난달 통영을 여행하던 중 이순신공원에서 ‘장군의 눈물’이라는 주제로 한산대첩을 재현한 퍼포먼스를 봤는데 그 광경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모였다. 하늘에 쏘아 올린 폭죽과 고조되는 풍물 소리가 긴장감을 더했고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의 생생한 전투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산대첩에 관한 내용은 국보로 등재된 전투 보고서인 장계에 나와 있는데, 이런 역사적 사건을 디지털 실감 기술로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자 국보로 등재된 이순신의『난중일기』 역시 인간의 오감 인식을 기반으로 접할 수 있다면 보다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난중일기』는 한문으로 쓰여 있어 일반인이 읽기가 다소 어렵다. 번역서는 많이 나와 있으나 400년도 더 된 과거의 사건과 풍습을 독자가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기록물을 현재 세대가 오롯이 음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록물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흥미를 더할 수 있는 현대 기술의 활용이 필요하다. 글이나 영상뿐 아니라 정보에 관한 맥락과 환경, 오감의 느낌까지 구현하면 역사물을 직접 생동감 있게 체험하고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 가치를 높일 수 있고 흥미도 고취할 수 있을 것이다. 『난중일기』에서는 백의종군(白衣從軍)의 상황에서도 나라를 걱정하고 지키려고 했던 이순신의 꿋꿋함과 애국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과거 세대가 남긴 이런 역사적인 기록문화유산을 매체의 다양화를 통해 현 세대가 그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하고 후대에도 그 의미를 잘 전달해야 한다. 디지털 매체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창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기록문화유산의 내용과 의미를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당대의 역사적 사건과 내용을 온전히 살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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