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민 기자(사회문화부)
한재민 기자(사회문화부)

“이게 만약 현실이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해고되면 우리 전부가 살 수 있다는 말에 누가 동의해 주겠어요?”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더 지니어스〉 시즌2 9화에 출연해 남긴 말이다. 방송에서 진행한 ‘정리해고’라는 게임에 걸맞은 발언이며, 그가 국민의힘에서 ‘정리해고’ 당하기 직전인 현실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이 아닐까.

이준석은 방송과 정치에서 처음부터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그는 〈더 지니어스〉 시즌1 첫 화에서 필승법에 가까운 전략으로 본인의 생존을 노렸다. 그러나 연합원에게 배신 당해 첫 탈락자가 됐다. 정치인 이준석은 만 26세의 나이에 한나라당의 비대위원으로 정계에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그는 보수 정당의 험지인 노원구 병 선거구에 계속 출마해 무려 세 번을 낙선했다.

늦게 두각을 드러냈지만 그의 이후 행보는 범상치 않았다. 그는 〈더 지니어스〉 시즌1을 꼴등으로 마무리했지만 한 회차만으로도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시즌2에서 게스트 출연을 거쳐 왕중왕전인 시즌4에 합류했다. 그의 장점은 본인의 지지층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안다는 것이다. 〈더 지니어스〉에서 그의 지지층은 시청자였다. 그들은 다수 연합의 왕따 전략을 깨부수려는 이준석을 보고 환호했다. 〈더 지니어스〉의 애청자라면 “아니, 나는 너무 꼴 보기 싫어, 다수 연합이!”라는 그의 말을 잊지 못할 것이다. 〈더 지니어스〉에서의 그의 지지층이 시청자라면, 정계에서의 지지층은 청년 남성이었다. 그는 자신의 장점을 정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잠행을 지속하던 그는 지난해 6월 청년 남성이 좋아하는 공정과 상식을 들고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등장했다. 그는 돌풍을 이어가며 당시 제1야당의 최연소 당 대표로 당선됐다.

그러나 이준석에게 인복은 없었다. 그리고 끝내 이것이 발목을 잡았다. 〈더 지니어스〉 시즌4 6화에서 그가 결성한 4인 연합은 상대 연합에 대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연합원 중 두 명은 게임 초반에 상대 연합의 스파이로 포섭됐고, 나머지 한 명마저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그를 배신했다. 연합원 모두에게 버림받은 것이다. 그는 시청자들에게 열렬한 호응을 받았지만 정작 게임에서 실질적인 그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정치인 이준석 또한 그렇다. 그의 열성 지지층은 일부 그를 떠났지만, 그래도 아직 공고하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를 내부 총질하는 당 대표라 칭하며 원내대표에게 ‘체리 따봉’을 보냈다. 그의 곁에는 당내 영향력이 거의 없는 사람만 남았다. 역설적으로, 그의 편은 많지만 거의 없다.

이준석을 오랜 기간 바라본 필자는 그를 한마디로 “참 한결같다”라고 평한다. 물론 방송과 현실을 겹쳐 보면 ‘과몰입’으로 보일 수 있으니, 단순한 재미로만 여기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이준석의 행보는 〈더 지니어스〉에서든 정계에서든 꽤 비슷하다. 예능 프로그램이 정치인의 행보를 보여주는 예고편 역할을 하다니 재밌는 일이다.

〈더 지니어스〉 플레이어 이준석과 정치인 이준석의 가장 큰 공통점은 항상 본인의 소신을 따라 돌진한다는 것이다. 〈더 지니어스〉의 이준석이 많은 사람을 열광시킨 것과 달리, 정치인으로서의 이준석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그의 소신은 공정과 상식에 입각한 것으로도, 갈라치기를 필두로 한 갈등 조장 전략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준석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든 그의 당 대표 당선이 정계에서 최근 보기 어려웠던 파란이었다는 점은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가 〈더 지니어스〉에서처럼 허무하게 사라진다면, 이 같은 파란이 다시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를 둘러싼 의혹이 사실이라면 그가 정계에 돌아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때 청년 정치를 상징하는 인물로 떠올랐던 그가 대혼란의 중심에 서 버린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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