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관악캠퍼스도 폭우를 비껴갈 수는 없었기에 상당한 피해가 있었다. 어찌나 심했던지 아직 피해를 집계 중인 곳도 많으며, 복구 작업은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불어난 빗물은 관악캠퍼스뿐만 아니라 서울시를 집어삼켰고, 나아가 사람들의 목숨까지 집어삼켰다. 특히 취약 계층의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극심했다. 그들은 자연재해에 집과 목숨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관악구 신림동에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일가족이 참변을 당했다. 주민들이 그들을 구하기 위해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단단한 방범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목숨을 빼앗겼다. 신림동은 과거부터 대학생과 고시생으로 꽉 찼던 동네였기에 구옥(舊屋)이 많다. 이는 곧 취약한 주거 시설도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참사는 예견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서울시는 즉각 대책을 발표했다. 서울시에 반지하 주거 시설을 신축할 수 없도록 규정을 마련하고, 기존에 주거 시설로 사용되던 반지하 시설은 용도 변경을 유도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하루아침에 반지하 주택을 다 없애면 사는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갑니까.” 원 장관의 지적에 서울시가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하기는 했으나, 시장과 장관 사이의 불협화음은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는 자연스럽게 거물급 정치인들의 알력 다툼, 면피성 공약 다툼으로 비춰지며 빈축을 샀다.

쪽방촌, 반지하, 낡은 고시원 등 취약한 주거 시설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사라지거나 개선돼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사회적 타의’에 의해 그곳까지 밀려난 많은 사람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반지하가 싫으면 없애면 그만’이라는,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라는 식의 대처는 취약 계층에 또 다른 상처만을 안겨줄 뿐이다.

용산구와 종로구 일대에 대규모로 위치한 쪽방촌에는 30평 정도 되는 공간에 한 평 남짓한 공간 20여 개가 나오도록 무수히 많은 가벽을 설치한 무허가 건물이 즐비하다. 이곳 월세는 25만 원 수준. 거주민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이들이 월세를 내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은 거의 없다. 수천 원도 되지 않는 돈으로 하루를 나야 한다.

신림동 일대 구옥의 반지하,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은 기본이고, 상태가 좋은 곳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까지도 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푼돈처럼 느껴질지 모르나, 취약 계층에게 이 정도 보증금과 월세는 부담이다. 반지하 참사로 목숨을 빼앗긴 일가족 역시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고시원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고시텔 등 고급 고시원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창문도 없는 낡은 고시원 방 안에서 꿈의 크기를 줄여 가는 청년과 삶의 끝자락을 준비하는 노인이 많다.

취약한 주거 시설에서의 삶마저 영위할 수 없을 때, 그들은 거리로 나서게 된다. 도심에서 뿜어져 나오는 네온사인의 불빛이 닿지 않는 곳, 그곳에 몸을 뉘는 노숙인의 소원은 하나다. ‘쪽방이라도 좋으니 방 좀 주세요.’ 누군가 대책 없이 쪽방촌, 반지하 주택과 고시원을 없애려 들 때, 누군가는 그곳에서의 삶을 간절히 소망한다. 그들에게 취약한 주거 시설은 눈 딱 감고 잡아 보는 ‘썩은 동아줄’이다. 썩은 동아줄을 새 동아줄로 바꿀 책임이 있는 이들은 썩은 동아줄을 숨기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비난을 면하기 위한 면피성 공약을 던져대는 지도층은 참사 현장을 배경으로 찍은 대통령의 사진이 들어간 참 멋진 카드 뉴스를 남기고 떠났다. 그들은 약자들이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으려 했던 이유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며, 썩은 동아줄을 대신할 새 동아줄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명심해야 한다. 전래 동화 <해님 달님> 속 해와 달이 된 오누이도 썩은 동아줄을 잡았다면 죽었다. 면피성 공약들로 썩은 동아줄을 감추려 드는 것, 취약 계층이 그 동아줄을 잡는 순간 그것은 참사가 아니다. ‘살인’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