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묵 교수(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 교수(지구환경과학부)

요즘 사회의 큰 화두라고 하면 융합과 빅데이터인 것 같다. 서구에서도 잘 안 쓰는 융합이라는 단어가 한때 거의 모든 정부 사업에 키워드였던 적이 있다. 또 데이터는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분야라는 이유에서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과학의 핵심은 그 다양성에 있다. 한마디로 ‘convergence’가 아니라 ‘divergence’란 말이다. 융합은 다양한 학문 분야가 제대로 각각 잘 크고 성장해야 가능한 것이다. 

최근 많은 양의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들이 새롭게 제시되면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해당 학문 분야(소위 ‘도메인’)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분석 결과가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컴퓨터는 맞든 틀리든 늘 답을 내기 때문이다. 만약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그 답이 틀렸는지 맞는지도 판가름할 수 없다.

컴퓨터 계산은 크게 기업형 계산과 과학적 계산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사회 활동을 통해 양산된 다양하고 엄청나게 많은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해 숨겨진 패턴을 찾는 것이 목표다. 때로는 매우 강력하지만,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영역이나 새로운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런 새로운 관측 자료는 처음부터 우리의 분석 데이터 군집에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상을 벗어난 새로운 현상 등에 대해서 현재의 기계학습과 딥러닝이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나는 빅데이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스몰 데이터*라고 한다.

데이터 양만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것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봐야 한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미국 속담이 있다. 너무나 인공지능을 강조하다 보면 모든 것을 같은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과오를 범할 수 있다.

2006년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기 전까지 나는 대양을 탐사하는 해양학자였다. 지구 나이가 대략 45.6억 년인데 그 가운데 최근 2억 년에 대한 기록이 바다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지난 2억 년 동안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이해함으로써 나머지 43억 년 동안 지구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추정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이를 위해 매년 수개월을 대양에서 지내면서 새로운 발견이 주는 기쁨을 만끽했다.

내가 계산과학 분야에 눈을 돌린 것은 사고 이후 더 이상 직접 바다를 나갈 수 없게 됐을 때다. 사고 전에도 늘 관측 자료를 분석했기에 컴퓨터에 대해 비교적 잘 알았지만,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2010년 계산과학 연합전공이라는 과정을 만든 이후다. 얼마 전부터는 계산과학 협동과정도 맡고 있다. 컴퓨터와 전기공학이 컴퓨터 자체의 발전에 기여한다면 계산과학은 다양한 분야에서의 컴퓨터 활용 능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런 계산과학은 나에게 교육과 연구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고 당시 나는 소위 임사 체험을 했다. 사람들이 가끔 그때 이야기를 물어보면 나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어보라고 한다. 스크루지가 자기의 죽은 모습을 통해 새로운 사람이 되듯이 나도 그러했던 것 같다. 또 사고 전에는 한 우물을 파며 학문적인 기여를 최고의 덕목으로 간주했다면 사고 이후 나는 이 우주 속에서의 우리의 존재와 삶의 의미 같은 더 큰 문제를 바라보려 노력하고 있다. 비록 우리가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문제 해결이 직업인 과학자에게 피해서는 안 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 유학을 갔던 80년대 중반 미국에서도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가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인간 지능과 같은 전문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여겼는데 최근 뇌과학을 비롯한 많은 연구를 보면 우리 인간 자체가 이런 기계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뇌와 신경의 정보 전달 과정이 컴퓨터적 논리와 너무 흡사하기 때문이다. 차이라면 오랜 진화를 통해 실리콘이 아닌 유기물로 완성된 시스템뿐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인정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인간성의 핵심 요체인 자유 의지는 환상이란 말인가? 이런 철학적 질문들을 던지며 나에게 계산과학은 그동안 몰랐던 나 자신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스몰 데이터: 어떤 문제를 인식하고 확인하고 해결하는 데 필요한 최소량의 데이터. 작지만 현상을 밝히는 데 꼭 필요한 데이터라는 뜻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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