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정(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석사과정)
강민정(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석사과정)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에서 첫 학기를 보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과연 이곳에서 나는 존재할 수 있을까, 존재할 자격이라도 되나 하며 죄인 같은 마음으로 수업을 듣고는 했다. 학부 시절 심리학, 미디어학을 전공으로 하고, 철학, 역사, 사상, 언어학, 논리학 등을 자유롭게 탐구하며 스스로 문과(文科)의 피가 흐른다고 자부하며 살았던 약 30여 년의 세월이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름 매 순간 최선을 다했던 것 같은 시간이 쓸모없게 생각될 만큼 이공계로 전과하는 시기는 참 힘겨웠다.

‘데이터사이언스를 위한 컴퓨팅의 기초’ 수업의 ‘File I/O’(In/Out) 부분 강의에서 파일 위치 경로조차 제대로 읽어 낼 줄 모르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수업을 아무리 집중해서 들어도 마치 학부에서 양자역학 교양 수업을 들었을 때의 ‘이해는 한 것 같지만 뭔지 여전히 알 수 없는’ 느낌을 안고 살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공부 그 자체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참 잘하는 것 같은데 오직 나만 뒤처진 느낌, 나름 인정받았던 문과 시절이 처절히 부정 당하며 자존심이 붕괴되는 과정이 참 힘들었다. 누군가에게 쉽사리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성격적인 요인과 센 자존심이 가세해, 누군가에게 물어보면 금방 풀릴 문제도 혼자서 꾸역꾸역 눈물의 밤을 지새우며 풀고는 했다. 아침이 밝아 올 즈음에는 주피터 노트북(파이썬 코드를 작성하고 실행하는 프로그램)의 셀은 실행한 횟수를 뜻하는 2000을 가리키기 일쑤였다.

한 학기가 지난 지금, 갈피를 못 잡던 학교 생활은 어느 정도 안정돼 있다. 정확히 말하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불안감에서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법을 배운 것이다. 누구나 인생을 살며 자신이 처한 인생의 어떤 단계에서 특정한 가치를 배울 기회가 있다고 한다면, 현재 대학원 시절의 나에게 주어진 훈련 목표는 ‘인내’인 것 같다. 문과 소속이던 시절에는 조금만 노력하면 이해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쉽게 목표로 한 것을 달성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부족한 실력의 내 모습을 보는 것을 일단은 견뎌야 하고 그 모습을 인정해야 한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겸허한 자세를 가지는 것에서부터 인내의 여정이 시작된다. 그러고 나면 어려운 내용을 교수님, 유튜브 강의, 구글링, 교과서, 인터넷 자료 등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번 배워야 하는, 그 학습하는 시간을 반드시 견뎌야 한다. 그뿐 아니라 최적의 공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무절제하고 나태해지지 않도록 절제하는 생활 습관도 지녀야 하는 것 같다.

훗날 돌이켜 보면 나의 대학원 시절은 나의 부족함을 인내하는 시절이라고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내가 밑바닥임을 인정하면서부터,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모르는 것을 배워가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고 회상할 것이다. 학기 후반부쯤이 돼 딥러닝 수업의 알고리즘 밑바닥부터 구현하는 과제에서 비록 만점은 아니었지만, 그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하나씩 하나씩 알고리즘의 틀을 짜내고 돌아갔을 때의 그 뿌듯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또한 ‘무식하면 오히려 용감하지 않은가?’라고 담대히 덤볐던 몇몇 과제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좋은 성과를 거뒀던 경험은 모르는 영역에 담대할 수 있는 용기의 원천이 돼 줬다. 부족함에 움츠러들거나 부족함을 어떻게든 감추기 위해 완벽주의의 늪에 갇힌 모습이 아닌, 부족함을 인정하고 인내하는 나의 석사 시절을 돌이켜봤을 때 아름답고 값진 시절이었다고 회상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영화에서 오드리 헵번이 부른 노래 〈Moon River〉의 “moon river, wider than a mile, I am crossing you in style someday”라는 가사처럼, 언젠가는 데이터사이언스의 광대한 강을 멋있게 건너볼 수 있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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