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일가족 사망 사건 속 아동의 생명 결정권은 어디에

지난 6월 교외 체험학습을 신청한 뒤 한 달 넘게 실종됐던 어린이가 완도 앞바다에서 가족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고, 지난 7월 의정부 일가족 사망 사건에서도 6살 아동이 부모에 의해 숨졌다. 과연 아이들도 죽음을 원했을까.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이 드러내는 한국 사회의 가족 관념과, 아동의 생명 결정권을 보호할 수 있는 예방책을 짚어 봤다. 

 

동반 자살 아닌 자녀 살해 후 자살

우선 부모의 자살에서 자녀가 함께 사망하는 경우를 지칭할 때 주로 사용해 왔던 ‘가족 동반 자살’이라는 표현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동반 자살은 ‘합의에 의한 집단 자살’(collective suicide)과 동반 자살을 결심한 개인이 동의하지 않은 상대방을 살해한 뒤 이어 자살하는 ‘살해 후 자살’(murder followed suicide)의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그런데 동반 자살로 보도된 일가족 사망 사건에서 아동이 부모의 선택에 합의해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이유로 일가족 사망 사건은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김정진 교수(나사렛대 사회복지대학원)는 “자녀 살해는 그 동기가 무엇이든 엄연한 범죄”라며 “명확하게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이수정 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역시 “아이가 결정한 적이 없는데 동반 자살이라는 표현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어휘의 선택에서 강조되듯 자녀 살해 후 자살이 아동의 생명권을 침해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의 “당사국은 모든 아동이 생명에 관한 고유의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와 “당사국은 아동의 생존과 발달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라는 조항에서 아동의 생명권을 명시하고 있다. 정재훈 교수(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은 아동의 생명 결정권을 극단적으로 침해한 사례이며, 아동을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가부장적 사고와 인권 의식의 부재가 만나 나타난 결과”라고 분석했다.

 

자녀 살해 후 자살 이면의 관습적 배경

한국 사회에서의 자녀 살해 후 자살은 정신적 질환으로 발생한 경우를 제외하면 가족의 경제적 빈곤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완도와 의정부 일가족 사건 모두 빚으로 인한 생활고가 극단적 선택의 이유로 지목됐다. 그러나 생활고 외에도, 부모가 자신의 결정을 자녀에게 강요할 수 있었던 더 근본적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가족 관념을 살펴봐야 한다.

아직 사회에 남아 있는 가부장적 가족 관념은 극단적 선택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정재훈 교수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은 가부장적 가족 관계가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된 것”이라며 “가족 구성원의 생사를 가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사고가 전제돼 있다”라고 정리했다. 김정진 교수는 “자녀 살해 후 자살에 대해 ‘오죽하면 저런 선택을 했을까’라며 동조하고 연민을 보이는 여론의 분위기도 가부장적 사고와 무관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을 가족 내부의 문제로만 여긴다는 것이다.

또한 자녀 살해 후 자살에는 자녀를 부모와 한 몸처럼 여기는 유교적 사고방식이 내포돼 있기도 하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백광열 선임연구원은 “부모와 자식이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보는 유교적 가치관이 자식을 독립적 개체로 보기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비교가족론의 관점에서 볼 때, 일반적으로 서구 사회의 가족 문화는 부부 관계 중심인 반면, 동아시아 사회의 경우 부모와 자식 간 관계가 중시된다”라며 “동아시아권에는 부모가 마땅히 자식을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가족 내 문제에 타인이 개입하는 것을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핵가족을 점점 고립되게끔 만들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지적된다. 한국의 전통 사회에서는 먼 친족까지도 가족의 범위에 포함됐으나 산업화와 근대화를 거치며 이런 혈연적 유대 관계는 점점 약화됐다. 백 연구원은 “한국인의 혈연 중심적 문화에서 친족 간 연결망은 약해지고 유교 사회 조직 원리의 마지노선으로서 부모와 자식 간 관계만 남았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고립된 가족과 사회를 잇는 중요한 통로였던 친족 간 연결망의 사회적 자본이 사라지면서, 국가만이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남았다”라고 말했다.

 

자녀 살해 후 자살, 막을 수는 없을까

아동이 부모에 의한 살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을 줄이려면 부모 없이도 사회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가정 위탁 제도나 공동 생활이 가능한 아동 복지 시설이 확충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가정 위탁 제도는 보호 대상 아동을 위탁 가정에서 보호하는 제도로 원 가정과 가장 유사한 가정형 보호를 제공한다. 아동권리보장원 이지연 과장은 “아동이 시설 보호보다는 가정 위탁이나 입양과 같은 가정형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낫다”라고 말했다. 장정은 강사(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역시 “시설 보호는 정형화된 집단생활이라 이를 통해 부자관계·형제자매 관계와 같은 가족 관계를 배우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지연 과장은 “보호 대상 아동 중 가정 위탁된 것으로 조사된 아동의 비율은 2020년에 25.9%, 2021년에 35%였다”라며 “시설 보호 비율에 비해서는 낮지만 점차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이야기했다. 

자살 위기 상황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보건복지부의 긴급복지지원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정진 교수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의 대부분이 가족 경제 위기에서 비롯되므로 이런 상황에서 이용할 수 있는 긴급지원복지에 대한 안내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극단적 선택 위험을 느낀다면 신용 회복이나 긴급복지지원제도 활용을 위해 행정복지센터에 방문하거나 보건복지상담센터에 전화해 상담 받아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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