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영 사회문화부장
오소영 사회문화부장

코흘리개 초등학생 시절, 6시에 일어나 9시에 자는 생활 패턴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던 나는 다른 친구들도 전부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어림도 없는 소리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다크서클을 눈 밑에 항상 드리우고 있었던 친구 한 명은 전날 밤 고농축 카페인 음료를 먹으며 학원 숙제를 끝마치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고 호소하고는 했다. 친구가 늦게 잤다는 사실보다 취침 시간을 본인이 자유자재로 선택했다는 것에 꽂혀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밤을 새워 할 일을 끝낸다는 행위에서 느껴지는 강한 성취 의지가 괜히 멋있어 보인 것도 있었다. 내게 ‘열심’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에너지를 철철 쏟아내 주어진 과업을 행하는 것.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열심히 하고 있다는 말만큼 자기 학대를 포장하고 정당화하기 쉬운 것도 없는 것 같다. 특히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성공하기 위해 자기 관리하는 나’의 모습을 트로피처럼 내세우며 열심히 살라는 메시지를 시청자에게 던진다. 얼마 전 한 유명 연예인이 안 좋은 몸 상태로 무리해서 공연 준비를 하다가 결국 링거를 맞고 본무대에 올랐다는 기사를 봤다. 갈비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마른 몸과 파리한 얼굴을 화장과 분장으로 애써 가린 듯한 그의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무대에 오르는 게 본인의 일이니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인터뷰와 ‘프로 의식이 강해서 좋다’, ‘멋지다’고 말하는 수많은 댓글을 보며 기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의 정의는 개개인별로 다르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열심의 기준치는 한없이 높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노력하면 모두가 인정하는 열심의 반열에 오른다는 생각이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학대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런 채찍질은 비단 연예인의 사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식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서울대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밤새 공부에 시달리며 밥보다는 카페인에 의존하다 주요 장기 곳곳에 염증이 생겨도, 그들의 병환은 스스로가 성취를 위해 선택한 결과로 포장된다. 지나가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어쩌면 성과주의 사회가 이들을 자기 학대로 내모는 것 같기도 하다. 한 몸 불살라 성과를 내고야 말겠다는 ‘사람’이 문제라기보다, 그의 몸을 불사르지 않으면 정상적인 사회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문제 아닐까. 남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무리한 노력으로 본인을 학대하는 것이 당연한 풍토로 자리 잡으면 안 된다. 원론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뻔한 만큼 근본적이므로 거듭 강조해도 부족하다.

물론 성공을 위해 일정 정도 이상의 노력과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혹자는 이 글을 읽으며 철없고 배부른 소리라고 비웃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성공이 어찌 사람보다 앞설 수 있는가? 열심히 살지 말라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한다는 말 뒤에 가려진 탄내 나는 몸뚱아리를 한번쯤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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