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윤(경제학부 15)
하동윤(경제학부 15)

96,000원. 지난여름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판매된 애플망고빙수(애망빙) 한 그릇의 가격이다. 빙수 한 그릇의 가격이 이렇게 터무니없이 비싼 것도 놀라운 사실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 애망빙을 먹기 위해 두 시간씩이나 기다려야 했다는 사실이다. 물가 상승의 여파로 애망빙의 가격은 41%나 인상됐으나 판매량은 늘어났다. 가격 인상과 물가 상승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우리 2030 세대는 이 ‘럭셔리’ 빙수에 지갑을 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우리 세대의 소비를 ‘스몰럭셔리’와 ‘과시욕’이라는 키워드로 분석한다. 애망빙의 소비를 통해 소비자들은 10만 원이라는 비교적 적은 돈으로 맛있는 디저트를 먹는 것은 물론, 특급 호텔의 서비스를 맛보는 럭셔리한 경험과 SNS에 인증샷으로 과시하는 것을 통해 심리적 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6월 휴먼클라우드 플랫폼 뉴워커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의 63%가 SNS를 하는 목적으로 ‘본인의 트렌디함을 과시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이런 우리 세대의 소비 풍조는 인스타그램만 봐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지난여름, 필자의 인스타그램 홈 화면은 온통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복 입고 있는 사진 내지는 호텔에서 여는 풀 파티에서 찍은 사진, 그리고 LP판만 한 거대한 접시에 과장 좀 보태서 500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로 소심하게 놓여있는 음식 사진들로 넘쳐났다. 남들과는 다른, 조금 특별한 휴가를 보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실로 주체성 상실의 시대임을 절감케 하는 대목이었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쉽게 말하자면, 한 개인이 자신의 욕망이라고 여기는 욕망은 사실 타인의 욕망을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욕망의 모방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부터 비롯했으며, 사회의 가치관을 질문 없이 수용한 결과다. 

라캉의 철학에 대해서는 논쟁이 많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날카로운 통찰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현실을 고발하는 촌철살인의 문장이다. SNS를 누구보다 가까이하는 우리는, 그 누구보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다. 96,000원짜리 빙수를 먹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 기현상은 한국 문화의 ‘원죄’와도 같은 집단주의에서 비롯된 모방 심리와, 말초적 ‘소확행’의 추구, 그리고 철학의 부재로 인한 주체성 상실의 삼위일체라 할 수 있다.

필자의 주장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을 독자도 있을 것이다. ‘아니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데 무슨 상관이냐’,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나도 기분 좋고, 망고를 파는 농가도 살리고 일석이조 아니냐’는 반론을 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분 좋음’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질문하지 않고 그저 사회가 말하는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삼은 개인은 평생을 휘둘리며 살다 허무하게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 나보다 더 좋은 여행지를 가서 더 좋은 호텔에서 묵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더 멋있는 이성 친구를 사귀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다 청춘이 끝나버리는 것이다. 또한 일시적으로 그 욕망이 충족된다 하더라도 이내 ‘더 많이’를 갈망하다 고통 받거나 공허함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

비극은 비단 내면적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잠깐의 ‘행복’이 우리를 사회의 종으로 만든다. 우리의 욕망이 사실은 철저히 유도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를 ‘선도’하는 거대 자본은 우리가 가만히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그 공허한 자존심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먹게끔 유도한다. 그리고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이런 식의 혹세무민은 ‘마케팅’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로 가려져 있다. 이런 시대일수록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진실을 보려 할 때, 우리는 진정한 주체적 개인으로 설 수 있다. 끝으로 필자가 존경하는 함석헌 선생의 말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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