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공영방송이 우리의 목소리가 되기 위해서는

KBS(한국방송공사)나 EBS(한국교육방송공사)와 같은 공영방송은 본래 국민을 위하는 국가 대표 방송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으며, 최근에는 넷플릭스나 왓챠와 같은 OTT 서비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공영방송이 위기를 맞았다는 의견이 대두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KBS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KBS, EBS, MBC…공영방송의 범위는?

공영방송은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와 양질의 프로그램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영조물*이다. 국내 공영방송으로는 KBS와 EBS가 있으며 때에 따라 MBC(문화방송)도 공영방송으로 취급받고 있다. 이에 이준웅 교수(언론정보학과)는 “공적 책임 실현 여부를 감독받는 MBC도 사실상 공영방송으로 간주한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MBC는 공직선거법에서도 공영방송사로 규정돼 공적 책무를 요구받는다. KBS는 중앙정부가 출자해 만든 공기업인 반면, MBC는 최다출자자*가 방송문화진흥회인 주식회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서는 방송의 공공성이 적다는 이유로 MBC를 방송통신발전기금* 징수 감면 대상에서 제외한 바 있다. 

이런 혼란은 국내 공영방송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심영섭 교수(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는 “우리나라 공영방송은 법률적 제도보다는 관습적 제도에 가깝다”라며 “방송법에는 공영방송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고 KBS나 EBS 관련 제도만 존재한다”라고 언급했다. 심 교수는 “우선 공영방송의 정의가 제도적으로 마련돼야 공영방송사의 역할과 사회적 책무가 정해지는데, 현 상황에서는 KBS와 EBS가 하는 일이 곧 관습적으로 공영방송의 일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KBS의 한계는 어디서 오나

현재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어떤 책무를 수행하고 있을까. KBS는 신뢰할 수 있는 보도를 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실제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1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KBS는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 언론사·매체사’와 ‘가장 신뢰하는 한국 언론사·매체사’의 항목에서 1위를 차지했다. 또한 KBS는 ‘방송통신발전 기본법’에 따라 대한민국의 재난 주관 방송사로 기능하고 있다. KBS 공영미디어연구소 유건식 소장은 “KBS는 재난 대응 방송, 재난 예방 캠페인 및 관련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그중 코로나19 통합뉴스룸은 현재 2년 반 동안 운영 중”이라고 언급했다. 더불어 KBS는 한국 문화와 한국어 계승 발전 사업을 담당해 해외 교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KBS한국어능력시험을 시행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장애인을 위한 자막 및 수화 방송 편성 △KBS 교향악단과 국악관현악단 운영 지원 △시청자 권익 보호·참여 제도 운용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KBS가 공적 책무를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우선 정세에 따라 보도 방향이 달라져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KBS는 방송법 제50조 제2항에 따라 이사회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사장을 임명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이에 한규섭 교수(언론정보학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친정부 인사 등용을 위한 대대적 인사 교체가 반복되며 보도의 편향성에 관한 논란이 지속됐고, 공영방송이 공적 책무를 다하고 있는지 국민이 의문을 품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준웅 교수 역시 “공정성 시비가 계속해서 제기되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공영방송이 공정성에 있어 시민의 신뢰를 받을 수만 있다면 운용할 가치가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공공미디어연구소 김동준 소장도 “KBS 신뢰도는 정권에 따라 변동 폭이 크기에 이용자의 신뢰를 받고 있다고 확신하기 어렵다”라며 “세월호 관련 보도를 비롯해 KBS 뉴스에 정권 개입이 있었다는 폭로와 각종 오보로 인해 KBS가 전달하는 정보의 신뢰도가 높다고 단언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KBS 제작 콘텐츠의 질적 저하도 문제가 됐다. 김동준 소장은 “다양한 전문 채널이 등장하면서 다른 상업 방송과의 비교에서 KBS 콘텐츠가 차별성을 갖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서 혁신적이거나 실험적인 면모를 찾아보기도 어렵다”라고 언급했다. 특히 OTT 서비스 이용률이 증가하면서 KBS의 위기가 심화됐다. 유건식 소장은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공급하지 않으면 제작사에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으므로 KBS가 좋은 기획안을 제공받기 어렵다”라며 “KBS도 2019년부터 1년에 1~2개의 콘텐츠를 넷플릭스에 공급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재난 방송의 미흡함도 지적됐다. 유홍식 교수(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는 “KBS를 비롯한 국내 재난 방송은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전문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감염자 수와 백신 접종률 등 사후적인 결과를 중심으로 보도하는 문제가 있다”라고 밝혔다.

전문가는 이런 문제가 결국 KBS의 재정 악화와 관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도 KBS가 재정을 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건식 소장은 “KBS만의 강점인 대하드라마 등의 콘텐츠도 제작비 부족으로 간헐적으로 제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재난 방송도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다. 유홍식 교수는 “현재 지원되는 예산은 인력 운용에도 이바지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재난 방송의 품질 향상을 위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KBS는 재정 악화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약 40년 동안이나 2,500원으로 동결 상태인 수신료의 인상을 오랫동안 추진해 왔다. 이에 김동준 소장은 “수신료 동결로 인해 공영방송이 광고 수입 등 사적 재원에 의존하게 돼 시청률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라며 “이는 공영방송의 정체성과 정당성을 흔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결된 수신료조차도 환불을 요구하는 가구가 늘어나는 등 수신료 인상에 대한 여론은 긍정적이지 않다. 한편 이준웅 교수는 “KBS 수신료가 너무 적은 것은 문제지만 수신료를 단순 인상하는 것만으로는 개선을 이룰 수 없다”라며 “수신료 제도를 포함해, 공적 영역에서 매체가 지녀야 하는 의무·책임과 이에 대한 지원책을 근본적으로 검토하고 개선해야 한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공영방송 협약 제도: ‘수신료의 제값’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공영방송의 공공성을 되살리고 신뢰를 회복하려면 공영방송 구조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김동준 소장은 “국내 미디어 정책에서 이용자 복지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공영방송 및 지상파 방송에 대한 정책이 후순위로 밀리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했다”라며 “향후 수립할 미디어 정책은 공영방송을 포함한 미디어의 공적 역할을 공고히 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영국 BBC를 모델로 한 공영방송 협약 제도의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5월 방통위는 공영방송 협약 제도 내용을 담은 방송법 개정안을 이른 시일 내에 마련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정준희 교수(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는 “우리나라에는 공영방송 특수성에 맞는 별도의 책무 규정이 없어 공영방송에 대한 평가가 중구난방인 측면이 있다”라고 밝혔다. 지상파 방송사를 평가하기 위한 현행 재허가 제도는 정부가 일정 기간마다 방송의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는 민영방송과 공영방송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평가할 뿐만 아니라 KBS와 같은 공영방송사는 재허가 대상에서 탈락시키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이에 제안된 공영방송 협약 제도는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KBS가 제출한 사업 제안서를 바탕으로 일정 기간마다 이행 실적을 평가해 그 결과를 수신료와 직원 연봉 산정 등에 활용하는 제도다.

공영방송 협약 제도를 국내 상황에 맞게 변형할 필요도 있다. 이준웅 교수는 “사업자 규제 형태의 현 방송법과 달리, 시청각 매체 산업을 전반적으로 진흥해 공영방송의 의무를 명시하고 이를 뒷받침할 재원을 보장해 공영방송의 책임 수행을 독려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심영섭 교수 또한 “국내 현실에 걸맞은 공적 책무를 정의해야 한다”라며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영국에서는 BBC를 통해 문화 정체성이 뚜렷한 방송을 내보내는 것을 의무로 여기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도 분단국가라는 특성을 바탕으로 남북의 긍정적 관계 형성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나 우리 문화의 경쟁력을 증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등 나름의 공적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치적 독립성을 제고하고 명확한 책임 분배 기준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심영섭 교수는 “공적 책무 협약의 평가 과정이 정치적 입장과 연결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이행을 점검하고 이행되지 않았을 때의 제재 방법을 확정해야 한다”라며 “공적 책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누가,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를 제도에 포함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덧붙여 심 교수는 “협약의 평가 기간과 국회 및 정부 임기가 엇갈리게 설계해 평가자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준희 교수 역시 “공적 책무 협약에 정부의 간섭을 예방하기 위한 장치를 필수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라며 “이사와 사장의 임기를 보장하고, 전문가와 시민에 의한 이사 추천과 선출이 가능한 구조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OTT 서비스의 시대에 공영방송은 여러 위기에 봉착하며 존재 가치에 대한 물음을 마주하고 있다. 유건식 소장은 “공영방송은 시민들의 계층·지역·성별·학력에 차별을 두지 않고 모든 사람을 위한 콘텐츠를 만든다”라며 “대체로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상업 콘텐츠 사이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공영방송의 필요성은 오히려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공영방송 관계자는 항상 국민에게서 오는 수신료의 가치와 공영방송의 공공성을 유념하며 시대의 변화에 맞춰 다양한 노력을 하겠다는 목소리를 전하기도 했다. 미디어의 홍수 속 공영방송의 재도약에 주목해보는 것은 어떨까. 

*영조물: 행정 주체가 공적 목적으로 세운 인적·물적 종합시설.

*최다출자자: 해당 기업의 주식 등을 가장 많이 소유한 법인 또는 자연인.

*방송통신발전기금: 방송통신의 공공성 보장과 진흥을 위해 지상파·종편·보도 채널이 매년 방통위에 내는 기금.

인포그래픽: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