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삽화: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9월 말 영국의 전 세계적인 흐름을 거스르는 경제 정책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10%에 가까운 인플레이션 충격에 각국 중앙은행이 양적 긴축으로 돌아서는 가운데 영국 정부는 반대로 확장적 재정 정책을 발표했다.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를 핑계로 부채(채권) 조달을 통해 대규모 감세와 적극적인 재정 지출을 발표했지만 정작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인플레이션과 국가 부채 문제에 관한 우려로 시장에서 국채 가격이 내려감과 동시에 금리가 급격하게 높아졌고, 이를 진화하기 위해 영국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이며 유동성을 공급했다. 영국 정부는 전 세계적인 흐름과 역행하는 정책으로 경제 성장을 우선시하겠다는 기조지만,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더 자극할 가능성만 커졌다.

미국도 이런 비판의 화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적극적인 양적 완화를 하고 있다. 9월 말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은 앞으로도 강한 인플레이션 억제와 고금리 기조를 유지할 것을 밝혔고, 기준 금리를 올해 내로 100~125bp 더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도 한편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라는 이름의 총수요 정책을 통과시켰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라는 이름과 다르게 단기적으로 총수요를 증가시켜 인플레이션을 오히려 자극하며 연준의 양적 긴축 기조와 어긋남을 지적하고 있다. 기업에서 세금을 거둬 신재생 에너지 등에 투자하고 장기적 공급 확대로 인플레이션을 벗어나겠다는 의도지만,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더 크게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미국과 영국에 앞서 중앙은행과 정부의 손발이 맞지 않았던 나라가 있다. 튀르키예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장을 여러 차례 갈아치우며 오히려 금리를 인하했고, 그 결과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 높은 인플레이션에 신음하고 있다.

중앙은행과 정부의 손발이 맞지 않는 근본적 이유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옳지만, 정치인들에게는 단기적으로 손해가 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인플레이션으로 겪는 고통과 더불어 장기적인 저성장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빠르게 억제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급격한 경기 침체라는 커다란 고통을 선사하기 때문에 정치인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된다. 1980년대 미국의 강력한 디인플레이션 정책을 주도했던 폴 볼커는 당시 늘 살해 위협에 시달려 권총 한 자루를 품에 지니고 다닌 것으로 유명하고, 당시 미국의 대통령 카터는 재선에 실패했다. 그러나 결국 디인플레이션 정책은 성공했고 그 이후 미국과 전 세계의 안정적인 경제 성장으로 이어졌다.

정치인으로서, 국가적으로는 옳지만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희생하는 인기 없는 정책을 시행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거시적인 흐름에 역행하려는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더 나아가 재정 만능주의에 빠져 지출을 늘리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듯이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과는 정직하다. 조만간 인플레이션과 사회 혼란이라는 청구서가 도착할 것이다. 조난자에게 갈증을 해소하라고 짠물을 주어서는 안 된다. 전 세계적인 혼란 속에 미국, 영국, 튀르키예와 같은 나라들의 행동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원칙에 맞는 경제 정책이 시행돼야 할 것이다.

심재찬 간사

kokop@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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