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블론드〉

마릴린 먼로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먼로는 20세기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인물로 지금까지도 먼로를 모티브로 한 창작물이 제작된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먼로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영화 〈블론드〉는 ‘노마 진’이 ‘마릴린 먼로’로 살아가며 겪는 고통을 적나라하게 그리며 새로운 시각에서 먼로를 조명한다. 동명의 창작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된 〈블론드〉는 지난달 넷플릭스에 공개된 후 큰 관심을 받는 동시에 자극적인 연출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블론드〉 속 마릴린 먼로와 노마 진의 모습. (사진 제공: 넷플릭스)
〈블론드〉 속 마릴린 먼로와 노마 진의 모습. (사진 제공: 넷플릭스)

영화는 어린 노마 진이 마릴린 먼로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이후 그가 노마 진과 마릴린 먼로라는 두 자아의 간극에 고통 받는 모습을 조명한다. 관능미의 상징 마릴린 먼로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자 했던 노마 진은 같은 사람이지만 서로 다른 주체다. 어린 노마 진은 아버지의 부재와 그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어머니의 원망을 고스란히 견디며 새로운 삶을 꿈꿨다. “아버지를 모르는 건 자유라는 뜻이야. 너를 만들어 낼 수 있잖아”라는 첫 연인의 말대로 노마 진은 마릴린 먼로의 인생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마릴린 먼로로서의 삶은 노마 진이 기대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가장 불행한 순간까지 뒤쫓는 파파라치와 대중에 이골이 난 그는 ‘배우’ 마릴린 먼로가 아닌 ‘사람’ 노마 진으로 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현실은 불행한 장면에서 ‘컷’을 외치고 정해진 서사에 따라 행복한 결말로 흘러가는 영화가 아니었다. 영화는 여러 번의 이혼을 겪고 현실을 회피하고자 손댄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된 먼로가 쓸쓸히 침대에 누워 죽음을 맞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러나 스타의 빛과 어둠을 조명하려던 〈블론드〉는 지나치게 어둠을 확대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는 아버지의 존재에 집착하는 그의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영화 속 먼로가 연인을 부르는 호칭은 모두 ‘아빠’(Daddy)이며 “모든 아가에게는 아빠가 필요하다”라는 대사를 뱉기도 한다. 이는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결핍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낙태처럼 실제 먼로가 겪지 않은 불행도 강조한다. 허구에 기초한 에피소드이지만 연인이었던 채플린과의 관계에서 생긴 아이를 포기한 먼로의 자책과 슬픔은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다. 또한 영화 속 먼로는 자신을 학대한 어머니보다 낙태를 선택한 자신을 훨씬 추악한 존재로 여긴다. 낙태의 트라우마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며 자신의 성공과 행복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모습으로 먼로를 묘사한 연출은 아쉬움을 남긴다.

물론 〈블론드〉는 주목되지 않았던 먼로의 지적 면모를 다루기도 한다. 그가 오디션 현장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글을 인상 깊게 읽었다고 말하는 장면이나 극작가 아서 밀러에게 『세 자매』를 감상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모습 뒤에는 어김없이 먼로의 ‘백치미’가 이어진다. 생활력 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그녀의 면면을 보여주는 것이 그 예다. 배우로서 먼로가 거둔 성공 역시 조명되지 않는다. 작품이 개봉돼 기립 박수를 받는 순간에도 〈블론드〉 속 먼로는 “고작 이것 때문에 아이를 죽였어”라며 눈물을 흘린다. 이렇듯 개인적인 아픔만을 보여주는 서사는 마릴린 먼로라는 캐릭터를 학대하며 그의 삶을 마치 한 편의 불행 포르노처럼 보이게 한다.

카메라의 시선도 ‘불행하고 불쌍한’ 먼로를 그리는 데 일조한다. 시선의 대상인 먼로는 혼자 놓여 있고 그를 내려다보는 시선은 집단에 속한 것처럼 연출됐다. 이 구도는 먼로가 제작자에게 강간당하거나 파파라치에게 고통받을 때와 같이 고통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주로 사용된다. 노출 장면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점도 문제다. 영화 속 먼로는 계속해서 성적 대상으로만 묘사되는 것에 괴로워한다. 그런데도 〈블론드〉는 약물 중독과 불안 증세에 시달리며 집에서 혼자 떨고 있는 먼로를 나체로 등장시키는 등, 노출로 인해 먼로가 느낀 고통을 보듬기보다는 자극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데 급급하다. 노마 진, 혹은 마릴린 먼로라는 인간이 겪은 고통을 단순히 소재로만 소비하는 영화의 시선은 지극히 폭력적이며 나아가 고인에 대한 비윤리적 재현으로 느껴진다.

여러 비판점에도 불구하고 〈블론드〉가 시각 요소를 잘 활용한 작품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작품에는 참신한 연출이 다수 등장한다. 네 모서리에 검고 굵은 공간을 남겨둔 화면 구성은 당시의 텔레비전이나 극장 스크린으로 먼로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또한 노마 진의 모습과 마릴린 먼로의 모습이 중첩되는 화면 전환은 두 자아의 구분을 어렵게 함으로써 결국 그들이 한 사람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더불어 2시간 45분간 유지되는 저화질 영상은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처럼 느끼게 만든다. 이와 같은 연출은 생동감을 주지만, 이 작품이 자칫 먼로의 실제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여기게 해 또 다른 편견을 만들까 우려된다. 무비판적 수용보다는 날카로운 시각으로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와 인간 노마 진 사이에서 표류하던 그의 고뇌에 집중한다면 〈블론드〉는 관객에게 인간 삶의 방향을 고민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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