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리뷰

사진 제공: 넷플릭스
사진 제공: 넷플릭스

전쟁에서 전사한 군인은 숫자로 집계되고 기억된다. 전시 작전 결과를 정리해 상부에 보고하는 전투 상보에는 몇 명이 어디에서 전사했는지, 아군과 적군의 병력 손실은 어떤지 빼곡히 적혀 있다. 대개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장군들은 숫자를 보고 작전 명령을 하달한다. 그런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2차 세계대전은 7,000만 명의 사상자를 내 문명사 최악의 전쟁으로 꼽힌다. 1차 세계대전은 당대 유래 없는 규모인 4,000만 명의 사상자를 내 ‘대전쟁’(Great War)이라고 불렸다. 

독일의 소설가 에리히 레마르크의 반전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1929)는 죽음을 숫자로 기억하기를 거부한다. 대신, 멋모르고 1차 세계대전의 전장에 내던져진 동급생 20여 명이 차례로 죽어가는 모습을 통해 숫자에 가려진 전쟁의 모순을 드러낸다. 주인공 ‘파울 보이머’는 허황된 애국심에 들뜬 담임 선생으로부터 입대를 종용받고 동급생과 함께 입대한다. 시험 준비를 한다며 교과서를 들고 다니거나, 장교 시설의 이성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던 이들의 모습은 전선에 배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하루에도 수차례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전선에서 인간성이 설 자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레마르크는 이 과정을 절제된 문체를 사용해 무미건조하게 표현했다.

레마르크 소설의 3번째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가 지난달 28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개봉했다. 영화는 원작 소설의 에피소드를 부분적으로 차용하며 과감한 각색을 가미했다. 시간적 배경을 조정했고, 많은 인물을 생략했으며,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연대 지휘관의 시점과 강화 협상에 임하는 독일 측 대표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의 시점을 더했다. 

◇인간성의 딜레마=영화는 각색을 통해 소설의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영화와 소설 모두 참호와 후방, 고향을 오가며 전개된다. 최전선의 참호는 인간성이 사라지는 공간, 후방의 보충대와 병원은 인간성이 희미하게 되살아나는 공간, 고향은 입대 전의 과거 그리고 종전 후의 미래와 마주하며 인간성을 회복하는 공간이다. 여기에 더해 제4의 공간이 등장한다. 독일군과 프랑스군 참호 사이의 무인지대. 후퇴 도중 낙오된 보이머는 몸을 피한 포탄 구덩이 속에서 무방비 상태의 프랑스 병사와 마주한다. 보이머는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대검으로 프랑스 병사를 찔러 치명상을 입혔지만, 이내 프랑스 병사 역시 자신과 똑같은 인간임을 자각한다. 큰 충격을 받은 그는 뒤늦게 프랑스 병사를 살리려 애를 쓰지만 끝내 죽음을 마주하고 만다. 적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무도 건너려 하지 않아 형성된 무인지대, 극한의 공간인 이곳에서 주인공의 ‘인간다움’은 극적으로 표출된다. 

이 무인지대 에피소드는 소설에서는 중후반부, 영화에서는 중반부에 삽입돼 있다. 소설과 달리 영화는 보이머의 전사 장면을 최후반부에 직접 묘사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병사 역시 인간이라는 깨달음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휴전되기 불과 몇 분전, 지휘관은 어처구니 없는 돌격 명령을 내린다. 보이머는 격투를 벌이던 프랑스 병사 한 명과 함께 참호 속 땅굴로 굴러 떨어진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상대를 공격하기를 주저한다. 종전을 목전에 둔 시간, 인간성을 되찾기 직전의 시간, 아마도 두 병사는 상대도 자신과 똑같은 평범한 사람임을 깨닫고 망설였으리라.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시커먼 땅굴 저편에서 튀어나온 프랑스 병사 한 명이 보이머를 대검으로 찌르며 결국 그는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죽여야만 하는, 살아남기 위해 인간임을 포기해야 하는 전쟁의 잔혹함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그들만의 전쟁=원작은 젊은 병사와 기성세대 사이의 미묘한 세대 갈등을 묘사한다. 학생들에게 입대를 강권한 담임 선생 ‘칸토레크’와 훈련소에서 그들을 괴롭히는 부사관 ‘힘멜슈토프’는 군국주의에 경도된 기성세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전쟁과 애국심을 찬미하는 이들은 정작 전선에서는 겁에 질린 채 무능한 모습을 보인다. 영화는 연대 지휘관 ‘프리드리히 장군’의 시점을 추가해 이런 갈등 구도를 더 선명히 드러낸다. 장군은 전선과 괴리된 채 저택에 차린 사령부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명령을 내리는 인물이다. 그에게 전선에서 죽어나가는 병사는 보고서 속 숫자에 불과하다. 그가 내리는 무의미한 돌격 명령으로 병사들은 앞도 보이지 않는 적진을 향해 달리다 죽는 허무한 죽음을 반복한다. 장군은 독일 제국의 위대함에 대해 떠들어 대지만, 온몸으로 전쟁과 부딪히는 일선의 병사들에게는 그저 허황된 말일 뿐이다. 

요컨대 장군이 치르는 전쟁과 병사들이 치르는 전쟁은 완전히 다른 전쟁인 것이다. 그 차이는 영화 최후반부에서 극에 달한다. 어려운 강화 협상 끝에 독일과 프랑스는 1918년 11월 11일 오전 11시 부로 모든 공격을 중지하기로 결정한다. 그 소식이 일선까지 전달되고 병사들이 안심하고 있을 때, 혼자만의 전쟁을 치르던 장군은 영웅이 돼 고향으로 돌아가자며 돌격 명령을 내린다. 명령에 저항하는 병사들은 총살당하고, 전쟁의 마지막 순간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공격을 가하던 보이머는 휴전 시각인 11시에 전사하고 만다. 

‘서부전선 이상없다’에는 그 어떠한 영웅적 서사도 들어 있지 않다. 대신 전선의 일상적인 죽음을 통해 전사상자 통계가 가리는 병사 개인과 전쟁의 참모습을 드러낸다. 원작 소설은 “보이머가 전사하던 날 사령부 보고서에는 ‘서부 전선 이상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라는 내용으로 끝맺음하며 개인을 지워버리는 전쟁의 폭력성을 강조한다. 영화는 종전을 불과 수 분 앞둔 시간에 “군인과 영웅으로 환대받고 싶은가, 아니면 겁쟁이가 되고 싶은가?”라며 돌격 명령을 내리는 장군의 대사를 통해 전쟁의 숭고한 당위에 대해 말하는 프로파간다가 허구임을 폭로한다. 

근래 매일같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사상자 통계가 쏟아지고 있다. 십, 백, 천을 넘나드는 숫자에 전쟁이 낳은 비극에 대한 감각마저 무뎌지는 듯하다. 그런 시점에 개봉한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전쟁의 목적과, 전쟁이 지워버리는 개별적인 삶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 영화화 이후 43년만에 독일인의 손으로 제작된 영화와 함께, 영화에는 생략된 ‘병사들의 이야기’가 자세히 서술된 원작 소설을 같이 읽어보기를 권한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홍성광 옮김

246쪽

열린책들

2009년 11월 30일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에트바르트 베르거 감독

147분

넷플릭스 배급

2022년 10월 2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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