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끊이지 않는 산업 재해, 산업 안전은 어디에

지난달 15일, 식품 전문 업체 SPC 계열사인 SPL의 평택 빵 공장에서 청년 노동자가 배합기 끼임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에 대학가에서도 SPC 그룹을 규탄하는 대자보가 붙는 등 불매의 물결이 확산되고 있다.

 

‘피 묻은 빵 사지 말자’ 대자보 붙은 이유는

SPC 노동자 사망 사건 이후, △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성공회대 △이화여대 등의 대학 캠퍼스에 SPC 계열 브랜드 불매를 촉구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서울대에 대자보를 붙인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비서공) 이은세 대표(동양사학과·20)는 “SPC 허영인 회장의 서울대 발전공로상 수상이나 SPC와의 학내 수익 사업 진행 등, SPC와 서울대는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만큼 이와 관련해 비서공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SPC 농생명과학연구동 앞에 SPC의 노동 환경을 비판하는 비서공의 대자보가 붙어 있다.
SPC 농생명과학연구동 앞에 SPC의 노동 환경을 비판하는 비서공의 대자보가 붙어 있다.
고려대 안암캠퍼스의 한 게시판에 SPC 불매 운동을 촉구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고려대 안암캠퍼스의 한 게시판에 SPC 불매 운동을 촉구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게시판에 SPC의 노동 환경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게시판에 SPC의 노동 환경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서강대 인권 소모임 '노고지리'에서 붙인 SPC 규탄 대자보.
서강대 인권 소모임 '노고지리'에서 붙인 SPC 규탄 대자보.

서강대에서는 인권 소모임 ‘노고지리’가 SPC 노동자의 투쟁을 응원하고 불매에 동참하자는 취지의 대자보를 작성했다. 노고지리 소속 최예송 씨(서강대 심리학과·20)는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공론화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아는 사람만 아는 정도였다”라며 “SPC의 노동 문제를 널리 알리기 위해 대자보를 붙이게 됐다”라고 말했다. 김희주 씨(서강대 영어영문학과·19)는 “노동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취약한 상태의 노동권을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불매를 결심한 대학생도 있다. 김가연 씨(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21)는 “전국화학섬유식품노동조합 파리바게뜨지회의 단식 투쟁이 시작됐던 지난 3월 말부터 불매를 시작했다”라며 “선행을 실천하는 가게는 장사가 잘 되도록 홍보하듯이 노동자 인권을 탄압하는 기업에 소비자는 불매로 답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김민재 씨(불어불문학과·21)는 “불매가 기업 구조의 변화를 촉구하는 가장 쉬운 의견 표출”이라면서도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불매를 실천하지 못할 수도 있고, SPC 계열사 제품을 전부 구매하지 않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참여하는 데 의미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사고에 취약한 노동 환경

SPC 노동자 사망 사고는 소스 혼합기에 자동방호장치(인터록)가 설치돼 있지 않았던 점과 2인 1조 근무 수칙을 준수하지 않은 점이 직접적 원인으로 지적됐다. 사고 위험 요소에 대한 소홀한 관리가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권오용 씨(선문대 산업공학과 박사과정)는 “인터록이 있어야 해당 설비가 안전 기준을 통과할 수 있으므로 처음부터 인터록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작업 속도 지연 등의 이유로 해지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짚었다. 그는 “근로자들이 근로 환경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1년 6개월간 근무한 대학생 A씨는 “평균 생산량을 과도하게 잡는 경우가 많아 관리감독자는 작업량을 맞추기 위해 근로자를 채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 과정에서 안전 규칙 안내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 않는 공장 비정규직의 특성상 해고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업무가 과하더라도 항의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장시간 높은 강도로 일해야 하는 노동 환경 자체가 근로자를 사고 위험에 노출시키는 주된 요인이기도 하다.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박승희 씨(원광대 복지보건학부·19)는 “택배 상자를 레일 위로 옮기는 작업은 5~20kg에 달하는 덤벨을 들었다가 놓는 것을 8시간 동안 반복하는 것과 같다”라며 “택배를 상하차하는 속도가 매우 빨라 택배물에 손가락이 끼이는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빠르게 돌아가는 레일에서 분류 작업을 하다 옷이나 손이 빨려 들어가거나 높이 쌓인 택배물이 근로자를 덮치는 등의 사고도 일어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산업 안전 문화가 정착되려면

산업 안전 제고를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작업장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작업중지권 행사의 측면에서 노조의 역할이 강조된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 선임연구위원은 “2인 1조로 작업을 해야 하는데 사용자 측이 혼자 하라고 지시하거나 위험 설비를 가동 중인 상황에서 설비를 수리하라고 하는 등 위험한 작업을 지시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이런 경우 현행법상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노조의 보호 없이 노동자 개인이 사용자에게 작업을 멈춰 달라고 하거나 위험한 기계를 바꿔 달라고 하기 힘들다”라고 짚었다. 조성재 연구위원은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 노조의 경우 컨베이어 벨트 속도를 함부로 바꿀 수 없을 정도로 노조의 규제력이 세지만 SPC는 사용자 측이 매우 강성이다”라며 “택배업 같은 서비스업에서 과로 실태가 심각한 것도 노조 조직률이 낮은 탓이 크다”라고 말했다.

또한 조성재 연구위원은 “생산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관리감독자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안전관리자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라며 “최고경영자가 관리감독자로 하여금 생산성과 안전 확보의 두 가지 업무를 균형 있게 추구하도록 경영 방침을 강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권오용 씨도 “안전을 지키면 생산량과 품질을 잃는다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라며 안전 문화가 기업에 정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제언을 덧붙였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