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원(조소과·22)
이명원(조소과·22)

우리는 끊임없이 본다. 인간은 80% 이상의 정보를 시각을 통해 얻고 이 정보들은 생각과 사고관을 형성하기에 본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잘’ 보고 있을까? 제한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아닐까?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적 사고, 특정 시선만 강조하는 사회적 통념과 상식은 우리의 시선과 인식을 하나의 방향, 하나의 시선으로만 더욱 좁히고 시선이 닿지 않는 주변을 사각지대로 만든다. 하지만 시선을 달리해 새롭게 세상을 보면 놓쳐 왔던 사각지대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나의 좁은 시야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미술은 우리가 놓친 세상의 이면을 살피게 돕는 ‘렌즈’ 역할을 한다. 예술가는 작품이라는 자신만의 렌즈로 낯선 시선을 체험시켜 준다. 어떤 작품은 안경 렌즈처럼 초점이 맞지 않는 것을, 어떤 작품은 현미경 렌즈처럼 미시적인 것을, 어떤 작품은 망원경 렌즈처럼 우리와 멀리 떨어진 것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이로써 우리는 소외된 일상, 개인의 이야기, 먼 미래 사회의 문제와 같은 사각지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획득하며 시각과 사고의 폭을 확장시킨다.

어떤 작품은 시선 자체에 시선을 보내는 메타적 시선을 담고 있다. 이런 작품은 시각 생산물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보느라 바쁜 우리에게 본다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우리의 시각을 성찰해 보도록 요청한다. 우리는 질문에 답해 보며 시각의 출발점에 다시 서게 된다. 이 같은 질문을 묻는 작품이 올해 대한민국에서 전시됐는데 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우리는 각자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그 눈에는 개인의 사고방식과 속한 국가, 종의 특성 등이 투영돼 있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굉장한 이질감이 든다. 아르코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땅속 그물 이야기〉에 전시된 이영주 작가의 <환영>이라는 작품도 이와 관련 있다. 작품은 VR헤드셋 앞부분이 멸종 위기 종 사향 노루의 형태로 동물 가면처럼 돼 있다. 이를 가면처럼 얼굴에 쓰면 노루 시점의 VR 애니메이션이 나오면서 관람자는 사향 노루의 시각을 경험하게 된다. 노루의 눈을 통해 멸종 위기 동물의 절박한 현실이라는 낯선 세상의 이면을 보니 그저 아는 것을 넘어 그들의 시선으로 아픔을 경험하고 공감하며 더욱 실감 나게 사각지대를 느낄 수 있다. 

시선은 권력이다. A만이 B에게 시선을 둘 수 있는 상황은 위계를 만들고 시선에 우위를 둔 A는 권력을 얻는다. 이를 응용한 판옵티콘에서는 중앙의 감시자는 스스로를 감추고, 수감자들은 보이지 않는 감시자를 의식하면서 서로를 감시한다. 이는 오늘날 디지털 판옵티콘으로 발전해 CCTV와 빅데이터 정보 수집 등의 첨단 정보 기술로 평범한 사람을 감시한다. 과연 우리는 디지털 판옵티콘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담은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 전시에서 소개됐다. 슈타이얼 작가는 〈안 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MOV 파일〉이라는 작품에서 디지털 세상에서 본인의 해상도를 낮추는 방법, 몸에 크로마키 칠을 하고 화면에서 CG 처리해 사라지는 방법 등 디지털 판옵티콘 사회에서 감시를 피하는 참신한 방법을 소개한다. 이는 감시를 피하는 신선한 방법을 알려주면서도 우리가 얼마나 많은 감시에 노출되고 있는지 고발한다. 전시를 같이 관람한 동기는 작품에서처럼 감시와 시선에서 해방된다면 ‘눈치’를 보지 않아 비로소 자유로워지고 실존적 삶에 가까워질 것 같으면서도 시선을 피해 숨는 것은 범죄의 사각지대로도 이어질 수 있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는데, 이는 시선에 관한 문제가 결코 단순하지 않고 굉장히 복합적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시선은 눈이 가는 길이라고 한다. 미술은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았던 사각지대와 우리 사이에 길을 만들어 연결해 준다. 또한, 미술은 항상 무언가를 보고 있는 우리에게 보는 것 자체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우리의 시선과 인식을 돌아보게 만든다. 다음에 전시에 가게 된다면 작품이 어떤 시선을 갖고 있는지 시선을 보내 보며 시각과 사고의 도약을 모색해보는 것은ᅠ어떨까?

이명원

조소과·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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