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재 | 영국에서 코리빙을 배우다

오늘날 대다수의 청년 1인 가구는 높은 주거비 부담과 열악한 주거 환경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에 몇몇 청년들은 온전한 휴식과 문화생활 등을 누리고자 공유 공간을 찾아나서고 있다. 이를 위한 혁신적인 주거 대안으로 거주 공간과 공유 공간을 혼합한 ‘코리빙’(Co-Living)이 제시된다. 『대학신문』은 그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영국에서의 코리빙을 취재하며 청년 거주 공간의 새로운 의미를 확인해 봤다.

 

한국 청년 주거의 현실은?

◇한국의 청년 주거 실태는=국토연구원 주택·토지연구본부 박미선 센터장은 “청년의 경우 개인주의의 상승 추세에 힘입어 학업 및 직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1인 가구를 구성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라며 “청년들은 부모에게서 독립해 직장을 갖기까지 불안정할 수밖에 없으나, 현재 그 기간이 너무 길어져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센터장은 오늘날 주거 정책에 대해 “주로 가족 단위로 수립됐으나, 점차 1인 가구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특히 청년 1인 가구의 27%가 소득의 30% 이상을 월세로 지출하는 등 주거 부담이 상당히 높으며 거주 환경이 가장 열악하다”라고 설명했다. 많은 청년 1인 가구가 고시원 등 열악한 환경에 거주하고 있거나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코리빙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영국을 통해 보는 코리빙

◇코리빙을 경험하다=기자들은 지난 8월 영국을 방문해 대표적 코리빙 ‘더 콜렉티브 카나리 워프’(The Collective Canary Wharf)에 3일 동안 거주하며 코리빙을 직접 경험해 봤다. 3개월간 워킹홀리데이 목적으로 런던에 머문 윤이나 씨(사업가·35)는 “새로운 시설, 청결한 환경, 편리한 교통 등을 이유로 카나리 워프에 위치한 ‘더 콜렉티브’를 선택했다”라고 밝혔다.

개인 방이 배치된 2~19층을 제외한 층에는 영화관, 오락실, 세탁실, 헬스장, 주방, 사우나 등이 공유 공간으로 마련돼 있었다. 개인 공간은 침대, 주방, 화장실로 구성됐다. 거주민 간 상생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거주민의 사생활 또한 균형 있게 보장될 필요가 있다. 그는 코리빙의 공간적 특징에 대해 “공유 공간이 다양하며, 개인 공간에서는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해 타인과의 불필요한 부딪힘을 줄일 수 있다”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다만 윤이나 씨는 더 콜렉티브에서의 생활이 경제적이냐는 질문에 “기존의 에어비앤비 등과 비교했을 때 인터넷, 수도, 전기, 클리닝 서비스 등이 포함됐기 때문에 가격이 비교적 높다”라고 밝혔다. 

기자들이 주목한 곳은 영화관과 오락실, 세탁실이 위치한 지하 1층의 복도였다. 복도의 벽에는 “HOW TO HOPSCOTCH”, 즉 사방치기(땅따먹기) 놀이법의 설명이 적혀 있었다. 사방치기가 그려진 바닥에는 “MILK” “FILMS” “SMALL TALK”(우유, 영화, 담소) 등의 단어가 사각형 안에 빼곡히 쓰여 있었다. 거주민이 놀이를 통해 자연스레 관계를 형성하고 협력하기를 장려하는 모습은 코리빙이 단순히 공간 공유를 넘어 사회적 관계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윤이나 씨는 “근처 대학교의 학생, 고학력자 청년, 외국인이 더 콜렉티브의 주 거주민”이라고 덧붙였다.

 

지하 1층 복도. ‘Hopscotch’, 즉 사방치기 놀이법과 그림판이 그려져 있다.
지하 1층 복도. ‘Hopscotch’, 즉 사방치기 놀이법과 그림판이 그려져 있다.

 

건물 출입구 옆에 비치된 칠판. 요일별로 진행되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정리돼 있다.
건물 출입구 옆에 비치된 칠판. 요일별로 진행되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정리돼 있다.

 

기자들이 더 콜렉티브에서 거주하며 마주친 거주민 역시 대부분 20대였기에 청년층을 중심으로 함께 사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또한 더 콜렉티브에서는 거주민들이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고 관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매일 오후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건물의 출입구 옆에 비치된 칠판에는 복서사이즈*, 인도 대 파키스탄 크리켓 시합, 노래방 가기 등의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요일별로 적혀 있었다. 뇨끼 만들기 및 와인 시음 프로그램을 진행한 모니카 씨(자영업자·50)는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라며 “이들은 내가 진행한 프로그램과 이탈리아 문화를 열린 마음으로 사랑해 줬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는 “코리빙 하우스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서로 친밀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라고 언급했다. 서로 다른 생각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경험을 공유하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함께 살아가는 가치, ‘연결’이 아닐까. 

 

◇코하우징, 그리고 코리빙이란?=코리빙과 굉장히 유사하지만, 코하우징이라는 개념도 존재한다. 코하우징 또한 여러 가구가 모여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고 편의 시설 및 공간을 공유한다. 영국에서 코하우징을 연구하고 있는 브루노 프리델 씨(옥스퍼드대 지리환경학부 박사과정)는 “작은 규모의 국가인 덴마크는 여러 사람이 공간을 공유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고안할 필요가 컸다”라며 “코하우징의 첫 번째 물결은 1960년대 덴마크에서 일어났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20가구가 각자 세탁기를 한 개씩 구매해 사용하는 것보다 세탁기 5개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환경 보전, 사회적 지속 가능성, 경제적 비용 측면에서 우수하다”라며 “사유 재산 개념의 해체에 대한 문화적·심리적 장벽을 극복해야 한다”라고 방향을 제시했다. 

하지만 코리빙과 코하우징은 공간을 만드는 주체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코하우징은 청년이 스스로 만드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면, 코리빙은 기업 등이 건물 전체를 소유해서 공간을 디자인해 이를 제공하는 데 강조점이 있다.

코리빙이 어느정도 정착된 영국에서는 실제로 ‘런던 플랜’*을 발행해 코리빙을 가리키는 개념인 ‘LSPBL’(Large‒Scale Purpose Built Shared Living)의 공동체 의식 개발 및 편의 시설 관리 가이드라인 등을 제시하고 있다. 런던에서는 평등과 같은 가치를 중심으로 코리빙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확대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민간에서 먼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거주 모델과 물리적 공간을 요구한 뒤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코하우징 형태로 정책이 고안되기도 한다. 프리델 씨는 “주택 공급이 위태롭다는 것을 체감한 청년들이 새로운 주거 모델을 제안하고 있다”라며 주거의 질 향상을 위해 청년 세대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코하우징을 발전시키겠다는 목표하에 공동체를 형성한 청년들은 토지 및 인적 자본을 보유한 정부, 건설사 등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코리빙과 코하우징의 개념이 아직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프리델 씨는 “전 세계적으로 공간을 공유하는 모습이 다양하기에 코하우징의 정의에 대한 학문적 토론의 장은 열려있다”라고 말했다.

공유 공간인 테라스와 오락실. 사람들이 공부를 하거나 탁구를 즐기고 있다.
공유 공간인 테라스와 오락실. 사람들이 공부를 하거나 탁구를 즐기고 있다.
대표 공유 공간인 세탁실. 이용법이 벽에 손수 쓰여 있어 공동 생활 수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표 공유 공간인 세탁실. 이용법이 벽에 손수 쓰여 있어 공동 생활 수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제공: 로컬스티치) 국내 커뮤니티 프로그램 활동 모습.
(사진 제공: 로컬스티치) 국내 커뮤니티 프로그램 활동 모습.
(사진 제공: 로컬스티치) 국내 커뮤니티 프로그램 활동 모습.
(사진 제공: 로컬스티치) 국내 커뮤니티 프로그램 활동 모습.

 

청년의 온전한 삶을 위해서

◇‘청’(靑)과 ‘노’(老)를 연결하다=한국에서 코리빙과 유사한 정책으로는 ‘노장청 쉐어하우스’를 뽑을 수 있다. 노장청 쉐어하우스 정책은 청년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이 남는 방을 학생에게 저렴하게 임대하는 정책으로, 코리빙과 비슷하지만 한 가구당 인원수가 적다는 차이점이 있다. 서울특별시 주택정책과 배지연 주무관은 “대학생은 고정 수입이 없기에 주거 공간을 마련하는 데 취약하다”라며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주거의 질을 제공하는 것이 기획 의도임을 밝혔다. 광진구의 노장청 쉐어하우스에 거주했던 김수은 씨(대학생·23)는 “고시원도 구하기 어려운 금액으로 전자레인지 등이 구비된 아파트에 거주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어르신과의 생활에 대해 “문자를 대신 보내드리거나 우편물을 읽어드렸고, 어르신은 종종 음식을 나눠주셨다”라고 회상했다. 해당 정책은 보증금을 받지 않고 저렴한 수준으로 월세를 설정해 세대 간 호혜 관계를 형성하며 청년의 주거 수준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노장청 쉐어하우스의 계약 건수는 매년 평균 250건 정도로 아직은 그 인기가 높지 않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함께 사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기에 단순히 수치를 기반으로 정책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대학생으로 정책 대상이 한정돼 있다는 점과 거주 공간 내 실질적인 인적 교류 수준이 낮다는 점은 정책의 한계로 꼽을 수 있다.

◇한국에서의 코리빙=영국의 코리빙에서는 자신의 목적 및 취향에 부합하는 거주 공간과 문화생활을 활발히 추구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한국 역시 코리빙 관련 정책을 추진 중에 있으나 여러 보완점이 제기되고 있다. 국토연구원 박미선 센터장은 국내 코리빙 정책에 대해 “유럽 쪽의 코리빙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실패한 경우가 여럿 있다”라며 “아직은 계속 발전하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에서는 청년 창업인의 주거 및 작업 공간을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 정책 ‘도전숙’(도전하는 사람들의 꿈을 응원하는 집)이 수립된 후 정책 명칭이 여러 차례 수정되는 등 일종의 과도기를 겪고 있다.

국내 다수의 코리빙 시설에서 거주해 본 이지선 씨(여행 에디터·29)는 코리빙 시장에 대해 “프리랜서, 벤처기업 종사자 등 시공간의 제약을 상대적으로 덜 겪는 사람들이 코리빙 시설에 많이 거주한다”라고 설명했다. 이 씨는 “한국에서도 벼룩시장을 열거나 함께 운동하는 등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코리빙도 접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그는 코리빙 시설의 주거비가 높아 학생 거주민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음을 밝혔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내는 직장인이나 학생에게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낮음을 언급하면서도 “공유 공간의 활용도에 따라 코리빙의 가치가 다변하기에 일반적인 주거 형태와의 단순한 가격 비교는 적절치 않다”라고 강조했다. 국내 코리빙 시설을 운영하는 ‘로컬스티치 스페이스매니지먼트그룹’ 심지헌 그룹장은 “합리적인 가격에 사람들이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저평가된 동네나 상권 발견에 힘쓰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학에도 코리빙이 정착할 수 있을까=연세대, 한양대, 한국외대 등 국내 대학들은 기숙사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교육을 받는 기숙형 교육(RC)을 추진 중에 있다. 서울대형 RC 모델인 LnL 시범사업 운영단 총괄단장인 김영오 학생처장은 “학생들이 토론하며 언어도 배우는 공용 공간을 마련해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하려 한다”라며 “학생이 주도적으로 학교 문화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학생이 주도적으로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RC는 코하우징 및 코리빙과도 맞닿아 있다. 오영훈 씨(물리천문학부 석박사통합과정)는 “현재 관악사의 규칙 및 상·벌점 제도는 제약이 많다”라며 “RC에 적합한 생활 수칙을 학생들이 자치적으로 수립해 열린 공간으로 확대해야 한다”라고 방향을 제시했다.

 

해외에서 빠르게 코리빙이 확대되며 한국에서도 코리빙이 느리지만 계속 발전하고 있다. 코리빙은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라면 대학 사회에도 도입될 수 있을 만큼 적용 범위가 넓으며, 특히 주거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에게 매력적이다. 코리빙은 공간을 제공할 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중점으로 다른 가치까지 고려하는 능동적인 개념이다. 다만 청년을 위한다면 코리빙의 다소 높은 주거비 부담의 해결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가치를 고려한 공간은 개인을 더 넓은 사회와 연결하고 새로운 역할과 관계를 부여해 전인적(全人的) 존재로서의 인간을 만들어 줄 것이다.

 

*복서사이즈(Boxercise): 권투 장비를 쓰고 권투하듯 하는 운동.

*런던 플랜(London Plan): 런던 시장이 그레이터 런던(Greater London) 지역에 대해 발행하는 법적 공간 개발 전략.

 

유예은 기자 eliza721@snu.ac.kr  구민지 기자 grrr02@snu.ac.kr

인포그래픽: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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