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홍기정 교수(의학과) 기고

홍기정 교수(의학과)
홍기정 교수(의학과)

서울 도심 한복판 이태원에서 핼러윈 기간에 안타까운 참사가 발생했다. 이태원 참사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세월호 참사에 이어 또다시 발생한 대규모 사회 재난으로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이태원 참사는 안타깝게도 많은 젊은이의 소중한 생명을 잃게 했다. 서울대병원은 서울특별시 서북권역 재난거점병원으로 이태원 참사 발생 즉시 재난의료지원팀(Disaster Medical Assistance Team, DMAT)을 현장에 급파했다. 

서울대병원을 포함해 재난거점병원으로 지정된 서울 지역 7개 권역응급의료센터는 그동안 해당 권역의 보건소, 소방, 의료 기관과 재난대비훈련을 해 왔고, 각 병원 단위에서도 내부 인력과 재난대비훈련을 꾸준히 해 왔다. 재난대비훈련은 응급의학과 의사만이 아니라 간호사, 응급구조사, 보건행정직까지 재난 대응에 필요한 인력이 모두 함께 참여하고 소방서, 보건소 등 외부 기관과 함께 수행하는 훈련이다. 그날 밤 이태원에서도 평소에 함께 훈련해 온 재난거점병원 인력들이 모여서 훈련했던 대로 현장응급의료소를 설치하고, 중증도 분류, 응급 처치, 병원 이송의 과정을 진행했다. 혼란스럽기도 하고 처음 겪어보는 현장 상황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훈련대로 각자 정해진 역할에 따라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개인적으로도 재난의료 관련 교육과 연구에 참여를 해 왔지만, 교과서가 아닌 실제 현장에서의 경험은 처음이었기에, 현장에서 느낀 점과 개선 사항을 기술해보려 한다.

첫째, 재난 현장에서의 지휘체계 정비가 중요하다. 국가 재난의료과정(National Disaster Life Support, NDLS)의 ‘disaster paradigm’(재난 패러다임)에 따르면, 재난 의료 대응 단계에서 재난 상황의 인지(detection) 직후에 해야 할 첫 임무는 재난 의료 지휘 체계(Incident Command System)의 구축이다. 세월호 참사 때도 초기 지휘 체계 대응이 문제가 됐고, 이태원 참사도 언론에 보도되듯이 초기 단계의 지휘 체계 구축이 문제였다. 재난 초기 지휘 체계의 구축은 그 중요성만큼이나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재난 발생 초기에 제한된 정보로 신속하게 정확한 상황 판단을 하고 일원화된 지휘를 해야 한다. 재난 현장에 투입된 경찰, 소방, 의료, 행정 등 다양한 분야의 직종이 모여서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유형의 재난을 두 번 겪어서 경험을 축적할 수도 없다. 다른 유형의 생물학 재난인 코로나19를 수년간 겪었지만, 코로나19를 통해 축적된 경험과 사회적 인프라는 이태원 참사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현재 법령상 소방청장이 긴급구조통제단장으로서 전체 재난 현장을 지휘하고, 재난 대응의 한 부분인 재난 의료는 보건소장이 현장응급의료소장 역할을 맡아 하게 된다. 행정 조직상 적절한 지휘 체계일 수 있으나, 재난 의료 대응에 있어서는 효과적이지 않은 지휘 체계다. 재난이 24시간 365일 어느 때나 발생할 수 있음을 고려하면, 보건소장 1인이 책임지는 당직 체계는 운영이 불가능하다. 보건소장은 직종이기도 하지만, 한 명의 개인이기도 하다. 서울대병원 DMAT나 119 구급대는 근무표에 따라 출동팀이 있고, 24시간 365일 운영이 가능한 당직 체계로 인력이 운영된다. 또한 DMAT나 119 구급대는 심정지, 중증외상 환자를 자주 마주하는 반면, 그와 같은 경험이 적은 보건소장은 중증 응급 환자가 다수 발생하는 현장에서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 DMAT와 보건소가 각자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초기 대응 과정에서 DMAT와 보건소와의 적절한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둘째, 재난 상황 중증도 분류(triage)와 지자체 단위의 ‘surge capacity’(수용 능력) 정비가 중요하다. 재난의 의학적 정의는 ‘해당 지역 사회에서 감당할 수 없는 보건 의료 수요의 발생’이다. 예를 들어 이태원에서 인파로 인한 압사 사고로 1명의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다면 이는 재난이 아니다. 통상적인 응급 의료 체계로 1명의 심정지 환자에게 전문 심장 소생술을 제공한 후에 적절한 병원으로 이송하면 된다. 하지만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해서 통상적인 응급 의료 체계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면 재난 상황에 들어가게 된다. 재난 의료의 관점에서 엄밀히 살펴보면, 금번 이태원 참사의 경우 재난 상황 판단과 초기 중증도 분류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재난 상황에서 환자 평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중증도 분류다. 일반적인 응급 의료에서는 개별 환자에게 최선의 응급 의료를 제공해서 임상 결과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 반면 재난 의료에서는 개별 환자에게 집중하기보다 전체 사상자 수를 줄이기 위한 효율적인 의료 자원 활용에 집중한다. 재난 현장에서 처음 만난 환자가 심정지라고 해서 심폐소생술을 30분간 열심히 제공하게 되면, 그동안 오히려 회생 가능성이 높은 환자를 더 많이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도 4단계의 중증도 분류 도구를 사용했다. 중증도에 따라서 고유의 색깔을 부여해 △긴급(적색) △지연(황색) △경미(녹색) △기대(흑색)의 4단계로 현장 환자를 분류했다. 상태가 위중하지만 간단한 응급 처치가 신속하게 제공되면 회생 가능성이 높은 긴급 환자를 우선 선정해 붉은색 인식표를 붙이고, 최우선적으로 현장 응급 처치를 한 후 병원으로 이송한다. 이태원 참사는 정확한 환자 정보 파악이 아직 필요하겠으나, 많은 ‘기대’(expectant) 환자와 다수의 경미한 손상 환자가 발생한 상황으로 추정된다. 현장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제공한 시민들의 노력은 박수 받아야 하고, 심폐소생술 교육 활성화 등 제도적 지원도 중요하다. 하지만 신속대응반, 소방, DMAT 등 전문 인력이 도착한 후에는 대부분의 심정지 환자를 회생 가능성이 적은 ‘기대’로 분류하고, 추가적인 심폐소생술이나 병원에 이송은 제한해야 한다. 

물론 현장에서 이를 실제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전문 역량이 필요하고 심리적인 부담도 있겠으나, 이는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매우 주요한 조치다. ‘surge capacity protocol’(수용 능력 프로토콜)은 재난 지역 의료 기관이 평소의 의료 서비스 수요 외에 갑자기 발생한 다수의 환자 수용을 목적으로 인력, 시설, 약물 등을 제공하기 위한 지침이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서울 시내 인근 병원별로 현재 수용이 가능한 환자 수에 대한 정보를 수합하고, 이에 따라 특정 병원에 쏠림이 없도록 분배해 이송했다. 환자의 발생 규모에 따라 단시간에 수용 환자 수를 적절히 늘리기 위해서는 평시 지자체 단위의 재난 의료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이태원 참사는 다수의 ‘기대’ 환자로 의료 기관 수용 단계에서는 필요한 의료 자원이 적은 상황이었다. 만약 응급 수술 등이 필요한 ‘긴급’ 상태의 환자가 많이 구조됐다면 의료 기관 대응 단계에서 또 다른 혼란이 발생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재난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교육 및 연구 인프라 확보가 필요하다. 재난 의료는 재난 현장에 1차로 출동하게 되는 응급 의학 분야도 중요하겠으나 외상외과·정신건강의학과·감염내과·의공학과·핵의학과 등 다양한 의학 분야의 연구 협력 및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재난 대비, 대응과 회복을 위해 의학뿐만 아니라 공학·보건학·인문학·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의 통합 연구가 필요하다. 적절한 재난 대비, 대응, 회복을 위해서 다양한 학문의 교류 및 협력 연구, 교육, 관련 인프라 구축이 서울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일 것이다. 서울대 재학 중의 심폐소생술 교육처럼, 의대뿐만 아니라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기본적인 재난 교육 운영도 고려해볼만하다.

개인적으로는 문서가 아닌 현장에서 처음 겪어본 재난이었다. 재난 의학 교과서에서 있던 중증도 분류의 ‘기대’ 판정이 실제 현장에서는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혼선과 실수도 있었겠지만, 그날 밤 현장에서 고생했던 소방, 경찰, 재난의료지원팀 등 재난 의료 종사자들의 많은 노력이 있었다. 이태원 참사로 생명을 잃은 많은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이전 재난들처럼 잠깐의 뜨거운 언론 보도 후에 모두가 망각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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