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서울대의 영어 교육을 짚어보다 ① 대학영어

“OO과가 왜 대학영어를 들어야 해?”

많은 학생이 대학영어를 필수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는 한다. 대학영어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지금, 대학의 영어 교육에 주목해 봤다.

대학영어의 현주소

매년 초, 신입생은 서울대 공인 인증 영어 능력 시험인 TEPS를 치르기 위해 분주하다. 해당 시험 성적을 바탕으로 영어 필수 교양 과목인 대학영어의 교과목 배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학영어는 수준에 따라 순차적으로 ‘기초영어’, ‘대학영어 1’, ‘대학영어 2’, ‘고급영어’의 네 개 교과목으로 나뉜다. 그러나 오랜 기간에 걸쳐 대학영어의 과목별 수강 비율은 큰 변화를 겪었다. 2007~2013년 입학생 중 36.7%가 ‘고급영어’를, 8.3%가 ‘기초영어’를 수강했지만, 2018~2020년 입학생의 경우 16.2%만 ‘고급영어’를, 28.8%가 ‘기초영어’를 수강한 것이다.

입학생의 대학영어 교과목별 배정 비율이 변화한 원인은 무엇일까? 이병민 교수(영어영문학과)는 그 원인을 단순한 영어 수학 능력 하락이 아닌 영어에 대한 관심 감소로 분석했다. 이 교수는 “과거 한국 사회에서 영어 돌풍이 불며 교육열이 높아 영어 능력이 높았다면, 현재는 영어 학습에 대한 관심이 식어 자연스레 신입생의 영어 능력도 하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기초교육원 최윤영 원장(독어독문학과)도 “학생의 절대적 영어 능력 하락으로만 바라보기는 어렵다”라며 “수능에서의 영어 영역 절대평가 전환 등 영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이전보다 감소한 것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학생들의 관심이 감소했을지라도 대학에서 영어는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최윤영 원장은 “영어 능력은 학문을 탐구하는 데 핵심 역량 중 하나기에 학생들의 관심 하락은 큰 손실”이라고 우려했다. 이호찬 씨(의류학과·20)는 “많은 교재가 원문이 영어로 돼 있으며, 번역이 된 자료도 문장의 정확한 뜻과 지시체를 알기 위해 원문을 찾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라며 “대학 공부에 있어 탁월한 영어 능력은 굉장한 이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기초교육원은 신입생의 학술적 영어 능력 향상을 위해 대학영어를 졸업 요건에 넣어 반드시 수강하게끔 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영어 교양의 필수화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까?

필수적이지 않은 대학영어?

대학영어가 필수 과목이 된 것에 반해, 그 필요성에 대한 구성원들의 입장은 제각각이다. 먼저 졸업 요건을 충족시키는 것 이외에 대학영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의견이 다수다. 이진주 씨(서어서문학과·21)는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서는 대학영어 강의보다 학원에 다니거나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대학영어가 학생들의 영어 실력 도모를 위한 장치라면, 이수를 강제하기보다는 TEPS나 다른 공인 영어 시험 성적을 제출하게 해 실력 향상을 학생의 자율에 맡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영어를 독학한 경험이 있는 안드루아 헉 씨(정치외교학부·19)는 “대학영어가 졸업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관심이 있는 분야 중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를 더 많이 들었을 것”이라며 “언어를 배울 때 언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수업을 수강하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교류나 독학을 더욱 선호한다”라고 밝혔다.

기초교육원과 교원도 학생들의 이런 의견을 인지하고는 있다. 최윤영 원장은 “대학영어를 듣는 목적이 단순히 졸업을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또한 대학영어를 강의하고 있는 서주희 강사(영어영문학과)는 “학생들이 대학영어를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할 수 없어서 수강해야 하는 수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라며 “전공과목에 대한 압박에 대학영어가 더해지면서 괜한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대학영어가 영어 실력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 원장은 “대학영어는 학문적 환경에서 필요한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역량을 기르는 것에 최적화돼 있으며 그것을 학생이 가장 잘 배울 수 있게끔 강의를 설계한다”라고 설명했다. 서 강사도 “특히 ‘기초영어’, ‘대학영어 1’을 수강하고 나면 영어로 진행되는 다른 수업을 듣는 데 큰 도움을 받을 것”이라며 “외국 대학원 진학을 하는 등의 경우에 조금이라도 일찍 영어 수업을 경험하는 게 도움이 많이 된다”라고 대학영어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실제 영어 실력에 도움 될까?

대학영어가 학술적 측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한 학생도 있다. 김윤지 씨(농경제사회학부·20)는 “‘대학영어 2: 글쓰기’를 수강하며 쓰기 능력이 조금 향상된 것 같다”라며 “학우 분과 원어민 교수님의 피드백을 통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검토와 수정을 진행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호찬 씨는 “의사소통을 할 때와 영어로 쓰인 논문을 읽을 때 도움이 됐다”라며 “‘대학영어 2: 말하기’ 수강 이전과 현재를 비교하면 확실히 학술적 표현력이 늘었다”라고 말했다. ‘고급영어’를 수강한 김도연 씨(노어노문학과·21)는 “평소에 말하기를 할 기회가 없다 보니 주기적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만으로도 영어 실력 유지에 충분히 도움이 됐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학영어의 초점이 너무 학술적인 영역에 치우쳐 있다는 의견이 존재했다. 김윤지 씨는 “글쓰기 수업에서는 말하기를 할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아 실생활에 사용하는 영어를 배웠다기보다는 학술적 측면에 치우치게 된 것 같다”라고 아쉬움을 밝혔다. 이호찬 씨도 “대학영어를 통해 배우는 것은 주로 학술적 영역에 국한되기에 수업을 통해 자유롭게 영어로 대화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실생활에서 자유롭고 순조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이를 지도해주는 강의가 있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했다.

한편, 대학영어를 강의하고 있는 황세희 강사(영어영문학과)는 대학영어의 경우 다양한 과목이 개설돼 있기에 학술 영어 이외의 영어를 배우고 싶은 학생에게도 다방면 기회가 마련돼 있다고 설명한다. 황 강사는 “수준별로 다양한 대학영어 과목이 개설돼 있고, 특히 ‘고급영어’의 경우 ‘고급영어: 영화’, ‘고급영어: 문학’ 등 여러 종류의 세부 과목이 개설돼 있다”라며 “필요에 따라 적절히 수강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세민 씨(정치외교학부·18)는 “‘고급영어’의 경우 산문이나 연극 등 실제 영어 문화권에서 쓰이는 자료를 가지고 수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강의 선택의 폭이 넓다”라면서도 “‘대학영어 1’이나 ‘대학영어 2’에서는 선택지가 협소하다”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수준별로 강의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수강반을 성적에 따라 나눈 것은 합당하나, 수준별로 강의 선택의 폭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쉬운 부분” 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고급영어’의 경우 발표, 영화, 문학, 산문, 연극, 문화와 사회, 학술작문 7개의 영역으로 구분돼 있으나, ‘대학영어 1’과 ‘기초영어’는 그런 구분이 전혀 없다. 

모두를 위한 ‘대학’ 영어

이처럼 영어 학습에 대한 학생들의 수요는 학술적 영어에 국한되지 않고 매우 다양하지만, 그 수요와 학교의 공급에 괴리가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이에 대학영어는 학생들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물론 다양한 종류의 대학영어 강의가 제공되고 있으나, 강의의 성적 또한 신경 써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보다 높은 점수대의 학생들이 수강 대상인 강의를 학습만을 목적으로 선택하기에는 부담이 있다. 실제로 제도상 TEPS에서 낮은 성적을 받은 학생도 ‘고급영어’를 수강하는 것 자체에는 제한이 걸려있지 않지만, 많은 학생은 ‘고급영어’ 수강반이 아닌 경우에 해당 강의를 수강하려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최윤영 원장은 “‘고급영어’의 경우 매우 질 좋은 강의임에도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는, 혹은 그 나라에서 살다 온 사람들만 들을 수 있는 어려운 강의라는 인식이 많은 것 같다”라며 “그런 인식이 없어지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진단했다. 최 원장은 “최소한 성적 부담으로 인해 강의 수강을 피하는 일은 없도록 변화를 추진 중”이라며 “대학영어 수강생 30% 이상에 C학점을 부여해야하는 규제를 없애거나 절대평가로의 변경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대학영어 전면 급락제(S/U) 전환, 전공 특화 영어 강의 등을 통해 학생들의 부담을 경감하고 다양한 수요를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필수 졸업 요건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영어 능력에 대한 학생의 다양한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기초교육원 최윤영 원장은 “현재 각 단과대와 기초교육원 차원에서 대학영어 개선에 대한 여러 프로젝트가 논의 중”이라며 “학생들의 수요를 조사하며 그에 맞춘 강의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대학영어가 진정한 의미에서 ‘필수’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학생과 대학에서 진정으로 요구하는 영어 능력이 각각 무엇인지 파악해야 할 시점이다.

삽화: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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