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저출생 정책 기조 점검하기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출생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70년 이래 최저치인 0.808명이다. 이에 대한 반응 중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 전통적 가족의 가치가 강조돼야 한다’거나 ‘결혼과 출산이 장려돼야 한다’는 식의 논의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저출생 현상은 단순한 인구 문제를 넘어 성 평등 사회로의 구조적 변화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정책의 한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오랫동안 사용돼 온 용어 ‘저출산’ 대신 ‘저출생’이 사용되는 이유를 검토하며 저출생 정책의 방향을 짚어 봤다.

⃟  ‘저출산’ 대신 ‘저출생’=저출산과 저출생은 인구학적으로 상이한 용어다. 전체 인구 대비 신생아 수가 적음을 의미하는 저출생과 달리 저출산은 가임기 여성 대비 신생아 수가 적은 현상을 뜻한다. 저출생을 판단하는 지표는 1년간의 출생아 총수를 해당 연도 전체 인구수로 나눈 조출생률*이다. 반면 저출산은 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소영 연구위원은 “합계출산율은 저출산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라며 “단순 인구만을 고려하는 저출생과 달리, 출산 가능 연령의 여성이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현상을 보여주는 저출산이 출생아 감소에 관한 사회구조적 문제를 보다 정확히 나타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사회적으로 저출산 대신 저출생을 사용하는 것이 성 평등의 맥락에서 더 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소영 연구위원은 “출산율이라는 학술 용어가 여성에게 인구 구조 변화의 책임을 전가하는 도구로 사용되면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저출산 담론이 ‘여성의 출산’에 초점을 맞춘다면 저출생 담론은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현상’에 집중하고 출산을 어렵게 하는 사회적 구조를 문제 삼는다. 배은경 교수(사회학과)는 “저출생이라는 용어에는 인구 정책이 단순히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의 확보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라고 풀이했다.

⃟  저출생 논의, 변화와 정체=저출생이라는 용어는 성 역할 변화에 따른 사회 구조의 전환을 요구하는 맥락에서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배은경 교수는 “대안적 정책 용어 저출생은 여성들의 문제 제기를 통해 확산됐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은지 선임연구위원은 “여성을 양육자로 남성을 부양자로 봤던 전통적 모델이 힘을 잃으며 성 역할이 변해가는 과정의 일부”라며 “남녀 모두 일하고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의 정착이 출산율 상승으로 이어진다”라고 짚었다. 이처럼 구조적 변화에 초점을 맞춘 정책 기조는 지난해부터 2025년까지 시행되는 「제4차 저출산·고령화사회기본계획」에 담겼다. 저출생 정책 추진의 기반이 되는 해당 계획에는 △개인의 삶의 질 향상 △성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 △인구 변화 대응 사회 혁신을 목표로 내세웠다. 

그러나 정책이 단순히 ‘출산’에 대한 일시적 지원에 국한된다면 근본적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난 9일(수) 대통령 직속 기관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정부 차원에서 다자녀 지원 기준을 2자녀 이상까지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와 같은 다자녀 가구 지원 정책의 경우 자녀 수에 따라 차등적으로 혜택을 주는 인센티브의 측면이 강하기에 한계가 뚜렷하다. 이화여대 여성학과 백경흔 박사는 “아이 수에 방점을 찍은 지원책보다는 개인의 사정을 보다 면밀히 살피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지원책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그는 “이에 비해 올해부터 태어난 아동에게 일괄적으로 수당을 지급하는 ‘첫만남이용권’과 같은 정책은 부모와 관계없이 아동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았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변화”라고 평가했다. 이는 ‘출생’하는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는 저출생 담론의 핵심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  당사자들이 원하는 정책은?=그러나 출생에 대한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남녀 모두에게 일과 가정의 양립을 전적으로 보장하는 사회 여건이 발맞춰야만 저출생 문제 해소를 기대할 수 있다. 성별과 직종에 무관하게 모두가 육아를 위해 일을 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이 기본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책적으로 육아 휴직 제도가 확대됨에도 여전히 직종이나 기업 규모 등에 따라 육아 휴직의 사용 여부는 천차만별이다. 출산 이후 2년간 휴직이 가능했다는 양영주 씨(회사원·31)는 “주위에는 회사 사정으로 휴직을 짧게 사용하거나 쉬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라며 “이런 차이로 인해 쉽게 출산을 결정하지 못하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출산을 경험한 이들은 출생 이후 돌봄 확대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아이의 성장 과정 전반에서 믿을 만한 돌봄 체계가 제공돼야만 일과 가정이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출산 후 육아에 힘을 쏟고 있는 박수경 씨(필라테스 학원 원장·39)는 “돌봄 정책의 혜택을 출산 직후 일시적으로만 받을 수 있다 보니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라고 전했다. 이에 박미경 교수(안양대 아리교양대학)는 “대부분의 직장인이 정시에 퇴근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고 야간까지 운영되는 돌봄 등에 관한 수요를 반영해야 한다”라며 돌봄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더해 돌봄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수반돼야 한다. 백경흔 박사는 “양질의 돌봄을 제공하려면 돌봄 노동자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노력도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제는 출산보다는 출생으로, 출생을 넘어 돌봄으로,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로, 당사자의 목소리에 바탕을 두고 개별적 삶의 조건을 고려하는 정책 접근이 요구된다.

 

*조출생률: 특정 1년간의 출생아 총수를 해당 연도 연앙인구(한 해의 중간인 7월 1일을 기준으로 산출한 인구)로 나눈 백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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