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고교학점제를 샅샅이 들여보다

정부가 한국 교육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겠다며 야심 차게 제안한 고교학점제는 2025년부터 전면 시행될 예정이다. 『대학신문』은 고교학점제의 쟁점을 짚고 이를 시범 운영 중인 서울 관악구 당곡고등학교, 경기 성남시 위례한빛고등학교, 경남 삼천포고등학교의 교육 현장을 방문했다.

 

고교학점제를 둘러싼 쟁점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기초 소양과 기본 학력을 바탕으로 진로·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이수 기준에 도달한 과목에 대해 학점을 취득·누적해 졸업하는 제도’다. 이는 단위제*가 바탕이 되는 고등학교에 대학에서 운영되고 있는 학점제를 도입하겠다는 방안으로, 학생의 주도적인 참여와 다양한 과목 선택지 제공을 강조한다. 김성천 교수(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는 고교학점제를 △교육 과정의 다양화 △책임 교육* △진로 교육의 내실화라는 키워드를 통해 설명했다. 그는 “고교학점제는 공급자 중심의 교육 과정 구성에서 벗어나 거버넌스 차원의 민주화를 촉진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올해부터 부분 도입 절차를 밟고 있는 고교학점제는 다수의 연구·선도학교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대표적으로 △경기 군포의왕지구 △광주지구 △세종지구 △서울 동작관악지구가 있다.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로 지정된 일반고는 지난해 939곳(55.9%)에서 올해 1,413곳(83.9%)로 늘었고, 교육부가 지난해 8월 발표한 단계적 이행계획에 따르면 이 비율은 내년 95%, 2024년 100%까지 높아질 예정이다. 한국교육개발원 고교학점제연구센터 우선영 총괄연구원은 “선도지구에서 진행한 사업의 성과를 다른 지역과 나누는 것이 사업의 출발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선도 학교가 아닌 학교에서도 고교학점제를 준비하는 지원 사업이 추진 중이다. 예컨대 서울대 교육종합연구원과 연계한 고교학점제 운영이 인천국제고등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협력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민병천 교수(영어교육과)는 “인천국제고의 고교학점제 모델은 해외의 대학 과목 선이수제(Advanced Placement, AP)와 유사하게 진행된다”라고 소개했다.

한편 전면 도입에 앞서 논쟁도 상당하다. 고교학점제 도입과 정시 전형 확대 및 자사고 폐지 백지화 기조가 충돌한다는 것이 주요 쟁점이다. 정시 전형 확대는 수능 중심의 획일화된 과목 선택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고교학점제의 의도와 상충된다. 또한 절대평가가 도입된 상황에서는 내신 경쟁을 할 필요가 덜하므로, 자사고와 특목고가 유지된다면 이 학교들에 인기가 더욱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제도의 취지를 충분히 살리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교육 과정 및 대입 제도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 

대입에 영향이 큰 성적 산출의 문제 역시 큰 쟁점이다. 고교학점제가 2025년까지 점진적으로 도입되는 방식이므로, 이 과정에서 절대평가와 상대평가가 혼용돼 혼란이 가중된다. 특히 절대평가는 임의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많다. 홍후조 교수(고려대 교육학과)는 “대입과 직결되는 성적을 절대평가에 의해 조정할 수 있게 된다면 많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A등급을 부여하고자 할 것”이라며 “최소한 광역 단위의 평가 기준에 따라, 진로별로 중요한 교과목만 절대평가를 실시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고교학점제의 현장과 한계점

고교학점제 현장을 찾아가 본 결과 새로운 시도가 많이 이뤄지고 있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에게 획일적이지 않은 과목 선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에 교육부 지침에 따라 각 고교가 필수 이수 단위를 설정한 뒤, 학생들이 진로 관련 교과목을 선택하게 한다. 시범 운영 현장에서는 애플리케이션 개발 방법을 수업하는 ‘정보통신’, 사회 현안과 관련된 학생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회과제탐구’, 시를 소재로 영상을 제작하는 ‘현대문학감상’ 등 각각 차별성을 지닌 교과목이 운영되고 있었다.

다양한 과목 선택지를 제시함과 동시에 수업이 진행되고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혁신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위례한빛고에서는 공학 전문화를 위해 설계·제작·실습이 이뤄지는 ‘무한상상실’을 구축했고, 학생들이 방송을 송출할 수 있게 한 ‘소리마루’ 등의 공간을 조성했다. 당곡고에서는 온라인 공동 교육 과정 수업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게 수업 송출과 학생들의 수업 수강이 가능한 ‘설렘ON실’이라는 공간과 정보 수업에 특화된 형태로 여러 도구가 준비된 ‘AI LAB’을 구축하기도 했다. 

수학 과제 탐구 과목을 듣고 있는 당곡고 학생들.
수학 과제 탐구 과목을 듣고 있는 당곡고 학생들.
학생들의 공학 전문화를 위해 구축된 위례한빛고 무한상상실.
학생들의 공학 전문화를 위해 구축된 위례한빛고 무한상상실.

그러나 교사 인력 문제가 있어 한 학교의 교육 과정 및 공간 변화만으로는 학생에게 다양한 과목을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당곡고 배덕희 교무부장은 “심리학, AI와 같은 분야는 학생의 수요에 비해 강사 공급이 적고 인건비 지급 역시 어려운 일”이라고 밝혔다. 삼천포고 서은희 진로부장 역시 “인력 충원이 어려워 이웃 학교와 협력해 교사를 고용하거나 ‘코티칭’(co-teaching)* 강사를 초빙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이정현 장학사는 “그렇다고 대학 강사가 고등학교의 정식 교원으로 오는 것은 행정상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관해 김성천 교수는 “일부 교원은 교육지원청 혹은 고교학점제 지원센터에서 배치하거나 교원자격증이 없는 산학겸임교사를 활용하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공동 교육 과정과 지역 협력

인력 문제와 고교 간 격차 해소를 위해 ‘공동 교육 과정’이 제시되기도 했다. 공동 교육 과정은 고교학점제의 대표적인 사업으로, 학교 간 협력 교육과정이다. 이는 거점형*과 학교 연합형*으로 분류되며 온·오프라인 운영이 병행된다. 민병천 교수는 “한정된 교원이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기는 부담이 있는 상황에서 공동 교육 과정은 하나의 좋은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특히 농산어촌과 같은 교육 소외 지역의 경우 강사 수급의 불안정과 인근 학교의 부재 등으로 고교학점제 시행에 난관이 많아 온라인 공동 교육 과정의 필요가 크다. 서은희 진로부장은 경상남도 지역 내 학교 간 거리가 상당하고 대부분의 학교가 규모가 작아 교사 확보가 어렵다는 점을 언급하며 “지역별 격차를 줄이기 위해 온라인 공동 교육 과정이 전국구로 대폭 확대되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공동 교육 과정은 현재 여러 선도지구에서 시범 운영되고 있다. 당곡고 배덕희 교무부장은 “여러 학교가 학사 일정을 맞추고, 학생의 물리적 이동도 신경 써야 한다는 점에서 마치 이인삼각 경기 같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공동 교육 과정은 아니지만, 지역 협력의 일환으로 서울대 평생교육원이 동작관악교육지원청과 연계해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한다. 평생교육원 박준희 수석팀장은 “2020년부터 동작관악지구 내 9개 학교와 4차 산업, 인문, 사회, AI 등 학교 특성에 맞는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위례한빛고 김하영 교육과정부장은 “프로그래밍 수업을 전문으로 하는 순회 교사*가 존재해 여러 학교에 정규 수업을 다니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 공동 교육 과정에도 개선돼야 할 부분이 있다. 위례한빛고 김하영 교육과정부장은 “성남시의 36개 학교가 모두 공동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상담심리, 공중보건과 같은 과목을 방과 후에 진행하는 식이라 추가 교육의 성격이 강하다”라고 밝혔다. 김성천 교수 또한 “현재의 공동 교육 과정은 정규 교육 과정 선택과목이 아니라 야간에 별도로 듣는 방식으로 운영되기에 문제가 된다”라고 밝혔다.

 

학생들의 진로 의식은?

고교학점제가 학생의 ‘선택’을 기반으로 하기에, 학생들 각자의 진로 의식이 바탕이 돼야 고교학점제 진로 교육 내실화가 가능하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정윤경 선임연구위원은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에서 진로나 적성에 따라 교과목을 선택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 정도를 조사한 결과, 교과목 선택이 쉬운 편이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학생 15.2%로 다소 낮게 나타났다”라고 밝혔다. 더불어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위해 과목을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도입 이전에도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위해서 탐구 영역 과목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고교학점제는 과목 개설과 선택에 대한 부담만 증대할 뿐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학교 자체적으로 상담을 통해 학생에게 선택을 위한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당곡고의 경우, 1학년에게 진로 코디네이터와 협업해 과목 선택에 도움을 주고자 1:1 맞춤형 상담 등을 진행했다. 당곡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서예나 씨(18)는 “상담을 받으면서 고교학점제 시행으로 생긴 ‘실용영어’와 ‘스페인어 1’ 과목을 고른 것이 현재의 진로인 통역가를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라고 밝혔다.

 

고교학점제는 교육 혁신과 지역 사회의 협력을 이끌 수 있는 제도지만, 형평성 있는 내신 절대평가제와 대입 제도 개편이 함께 이뤄지지 않는다면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이다. 한국 교육 혁신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고교학점제에 걸맞은 빠른 움직임이 선행돼야 한다.

 

*단위제: 성적에 상관없이 출석으로 과목 이수를 인정받는 제도.

*책임 교육: 교과별 최소 성취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에 대한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거점형 공동 교육 과정: 거점 학교에서 개설해 지역 내 모든 고등학교에 개방하는 교육 과정.

*학교 연합형 공동 교육 과정: 2~4개 인접 학교가 협의해 과목을 공동 개설하고 연합 학교 학생에게만 개방하는 교육 과정.

*코티칭: 2명 이상의 교사가 수업 진행과 계획을 함께하는 수업 형식.

*순회 교사: 추가적인 인력이 필요한 상황에, 해당 학교로 직접 방문해 교육 자료를 제공하거나 가르치는 사람.

 

사진: 하주영 기자

sisn02@snu.ac.kr

인포그래픽: 신윤서 기자

oo00ol@snu.ac.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