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 교수(건축학과)
서현 교수(건축학과)

‘입실렌티’와 ‘아카라카’. 대학 입학 시장에서 통용되는 수직 서열화 표기 ‘스카이’(SKY)에서 ‘카이’(KY)의 응원전 이름이다. 처음에는 경기장의 승부를 위한 집단 행위였겠으나 이제는 각각의 독립적 위상을 획득한 이벤트가 됐다. 그 자체가 공동체 의식을 얻고 확인하는 축제가 된 것이다. 입실렌티와 아카라카를 거치면 진정한 ‘카이’의 구성원이 된다.

‘카이’의 자부심을 문장으로 구성하면 이렇다. 입시 성적에서 ‘카이’가 ‘스’를 앞설 길은 없겠으나 ‘스’는 절대로 입실렌티와 아카라카를 넘어서는 이벤트를 가질 수 없다. 동의한다. 그런 열광적 동질감은 ‘스’에게는 지탄의 대상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카이’의 자랑이 더 있다. ‘스’의 캠퍼스는 ‘카이’의 캠퍼스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단언이다.

이건 정좌 후 자문할 일이다. 도대체 이건 어떤 연유인가. ‘카’는 유사품이기는 하지만 유사 형태와 재료의 건물군 유지로 캠퍼스의 형태적 조화를 이뤘다. ‘이’ 역시 중심 도로 좌우에 건물을 균형있게 배치함으로써 조화로운 캠퍼스를 이뤘다. 그리고 두 캠퍼스 모두 자동차를 지하로 몰아넣었다. 획기적 작업이었고 드디어 대학 캠퍼스가 이뤄졌다. 지상에 자동차가 출몰하던 시절에는 캠퍼스가 두 학교의 자랑은 아니었다.

이제 관악산의 ‘스’로 돌아오자. 여전히 자동차가 스멀스멀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아무렇지 않게 보행인을 위협한다. 자체의 진단과 비판은 익숙하다. 보행 중심 캠퍼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나부터 자동차를 타고 오지 않겠다는 선언문도 들어본 적이 없다. 변명의 근거는 수두룩하다. 건물이 너무 멀어서, 무거운 걸 들고 다니는 전공이어서, 급하게 나가야 할 일정이 많은 입장이어서. 그래서 필사적으로 건물 코앞에 자동차를 세워야 한다. 지구의 미래를 걱정해야 한다는 책임 의식에서도 관악산은 외딴 섬이다.

순환 도로의 속도 제한 안내판에는 ‘30’이라고 써있다. 그러나 이건 숫자에 불과하니 자동차는 원하는 대로 질주한다. 보행자 우선 원칙도 공허한 선언일 뿐이다. 최고의 학생을 선발했으면 최고의 교육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그 물리적 환경이 캠퍼스다. 그런데 그 최고의 학생은 횡단보도를 항상 뛰어 건넌다. 횡단보도에서 멈춰 선 자동차에 고맙다고 꾸벅 인사하는 풍경은 대학 캠퍼스의 상황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기심이 세상을 지탱한다는 데 동의한다. 자동차 이용이 나의 이익을 실현하는 길이라면 자동차를 이용하게 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이기심의 무한 발호를 억누를 규칙의 제정이다. 그 규칙 문제의 하나는 싸구려 주차비다. 지금 관악캠퍼스의 구성원 주차 요금은 자동차 이용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터무니 없는 염가(廉價)다.

주차비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캠퍼스의 물리적 조정이다. 일단 캠퍼스의 지상 주차를 없애야 한다. 주인도, 책임 의식도, 조정 장치도 없는 ‘스’는 신축 건물의 부설 주차장을 제각각 설치해 왔으니 이를 폐쇄할 길은 이제 없다. 행정관 앞 거점 주차장 설치로 주차난이 해결되면 순환 도로에 더 많은 자동차가 배회할 것이 걱정이다. 그래서 타협안으로 제안한 것이 건물 부설 주차장을 제외한 주차 금지다.

제시하려는 대안은 순환 도로 지하화다. 그 지하 도로 전체에 연도형 주차장을 조성한다. 지상부는 긴급 차량 진입만 허용하는 보행 공간으로 만든다. 전체 순환로를 지하화할 필요는 없다. 순환로는 정문에서 오른쪽으로는 공대입구까지, 왼쪽으로는 우석경제관(223동) 인근까지 이어진다. 도로 길이와 폭을 기준으로 공사비를 대략 추산하면 700억 원 정도일 것이다. 전체가 경사 구간이므로 접속 도로도 입체로 해결할 수 있다. 얻게 되는 것은 보행 천국의 멋진 캠퍼스다.

광기 어린 응원은 필요 없다. 그러나 캠퍼스 추억의 공유는 필요하다. 이를 무사히 담아줘야 대학이다. 그러나 지금 ‘스’의 캠퍼스는 운반 트럭이 분주한 공업 단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눈이 덮이고 낙엽이 위장해줘야 그나마 사진에 담길 캠퍼스. 그 캠퍼스를 걸을 때마다 마음이 ‘스’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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