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숙 강사(여성학협동과정)
홍찬숙 강사(여성학협동과정)

2018년부터 ‘젠더 갈등’이라는 단어가 정치권의 키워드로 떠올랐다. 젠더는 여론 조사 기관에서 한국 사회의 갈등을 조사할 때 사용한 범주 중 하나였다. 예컨대 이념·빈부·노사·세대·젠더 등을 갈등의 범주로 제시해 한국에서 그중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식이다. 사회학의 이론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분류가 설득력이 크지 않다. 그 이유는 빈부·노사·세대·젠더 등은 불평등 경험과 관련된 범주지만, 이념은 정치적 태도와 연관된 범주이기 때문이다. 

2019년 발표된 온라인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젠더 갈등’은 2017년 1위를 기록했고, 2018년 이후에는 ‘이념 갈등’ 다음으로 2위를 유지해 왔다. 2018년 연말의 한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젠더 갈등’을 2위로 꼽은 연령층은 20대뿐이었다. 그런데 이 조사에서 ‘본인이 당사자로 경험한 갈등’의 순위를 물었을 때는 남녀 차이가 확연했다. 여기서 ‘젠더 갈등’을 1위로 꼽은 층은 2~30대 여성들이었던 반면, 2~30대 남성들은 ‘세대 갈등’ 다음으로 ‘젠더 갈등’을 꼽았다. 2~30대 남성들에게는 세대 갈등이 젠더 갈등보다 더 버거운 현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후 세대 문제로 호명된 문제에서 젠더 문제는 묻혀버렸고, 청년 세대가 2030 남성으로 동일시됐다. 

한편 젠더 갈등이 정치적 의제로 호출되는 과정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찾을 수 있다. 바로 젠더 갈등이 2~30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소위 ‘이대남’의 문제로 인식됐다는 것이다. 이것은 젠더 갈등이 당사자의 불평등 경험으로서가 아니라 주장으로서 이슈화됐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젠더 갈등은 불평등의 사회·정치적 표현이 아니라 특정 주장의 ‘프레임’으로서 채택된 것이다. 이것은 젠더 갈등이 불평등 현실을 개념적으로 가공하는 인지적 개입의 생산물로서 오히려 ‘이념 갈등’ 범주와 유사함을 말해준다. 

이념 갈등은 계급이나 계층의 불평등 문제가 좌우 이념이라는 인지적 구성물 간의 갈등으로 응축된 것이다. 산업화의 발생지인 서구에서 이념 갈등은 소유 및 분배 불평등의 결과인 ‘계급 갈등’이 좌우 이념으로 갈리며 생겨났다. 그러나 계급 사회를 경험한 적이 없는 미국에서 이념 갈등은 냉전의 결과물일 뿐이며 한국 역시 그러하다. 미국이나 분단 한국에서는 좌우의 이념으로 결집한 계급 정당이 제대로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이념 갈등이 분배 불평등의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위 여론 조사 항목들에서처럼 분배 갈등(빈부·노사 갈등)과 병존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즉 서구와 달리 한국에서 이념 갈등은 불평등 격차와 유리된 인지적 주장의 결집일 뿐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젠더 갈등은 그와 같은 이념 갈등과 오히려 유사해졌다. 즉 젠더 갈등은 젠더 불평등 현실과 무관한 인지적 주장의 프레임이 된 것이다. 이것은 각종 통계를 통해 확인되는 바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프레임의 기능은 무엇일까? 불평등의 현실과 유리된 이 프레임이 그것을 주장하는 20대 남성들에게 주는 이득은 무엇인가? 그것은 ‘젠더 갈등’ 프레임의 실질적 결과인 ‘여성가족부 폐지’의 결과를 상상해봄으로써 가늠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가 폐지되면 20대 남성들은 무슨 이득을 얻는가? 아마도 승리감 이외의 이득은 없을 것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로 20대 남성들은 ‘사회적’ 이득이 아닌 ‘심리적’ 이득만을 얻을 수 있고, 그 심리적 이득의 유효 기간도 짧을 것이다. 미국의 매카시즘이나 분단 한국의 ‘이념 갈등’ 역사가 보여주듯이, 불평등 현실과 유리된 정치적 구성물로서 이념 갈등은 민주주의를 짓누르는 극단의 정치로 흐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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