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서울대의 영어 교육을 짚어보다 ② 영어 강의

 

서울대는 지난 8월 발간된 <서울대학교 중장기발전계획 보고서>(보고서)에서 국제화의 핵심 이슈와 전략적 시사점을 짚으며 영어 강의를 언급했다. 보고서는 서울대의 국내외 위상을 고려했을 때 타 학교에 비해 영어 강의의 수가 여전히 부족하다며 강의 수의 대폭 확대와 내실 강화를 주장했다. 『대학신문』에서는 본격적인 국제화 정책에 앞서 영어 강의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영어 강의, 필요한가?

우선 영어 강의의 근본적인 필요성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보고서는 국제화에서 영어 강의의 중요성을 주장했지만 정작 학내 구성원들의 입장은 제각각이었다. 

영어 강의가 필요하다고 평가하는 구성원들은 전공 용어 등의 학습과 국제화에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진우 씨(컴퓨터공학부·18)는 “컴퓨터공학과 언어학을 배우고 있는데 두 분야 모두 주로 영어권에서 발전 중이다”라며 “학문의 흐름을 따라가려면 영어로 수업을 하는 게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김중림 씨(간호학과·22)는 “간호학과 학생들은 의학 용어를 영어로 배우고, 이후 해외에서 활동할 가능성이 있기에 영어 강의 수강에 이점이 있다”라고 말했다. 공대 홍유석 학장(산업공학과)도 영어에 대한 노출과 전문 용어 습득을 영어 강의의 목적으로 꼽았다. 그는 “전문 용어를 배우지 못하면 학회 내용도 알아듣기 힘들다”라며 “영어 강의를 하면 자연스럽게 전문 용어에 익숙해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전공 분야나 수업의 특성에 따라 영어 강의의 필요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었다. 영어 강의의 필요성을 역설한 홍유석 학장도 한편으로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홍 학장은 “사실 모든 과목에 일률적 잣대를 적용할 수는 없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표준적인 교과서를 바탕으로 이론을 가르치는 경우에는 영어 강의가 효과적일 수 있다”라며 “반면 현실의 산업 문제를 다루는 경우에는 강의 목표가 훼손될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양현서 씨(자유전공학부·21)는 “영어로 강의가 진행될 시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내용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것 같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실제로 한국어로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전공 수업을 영어로 듣는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라며 “전공 수업의 성적이 전공 성취도가 아닌 영어 숙련도에 영향을 받게 됐다”라고 경험을 공유했다. 

 

현행 영어 강의에 대한 평가는?

필요성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은 반면, 서울대에서는 2022년 2학기 현재 전체 전공 강의 중 약 8%가 영어로 진행되고 있다. 또한 영어 강의 수강을 졸업 요건으로 지정한 단과대도 있다. 경영대의 경우 심화전공은 전공 과목 5개 이상, 다전공·편입생·전과생은 3개 이상의 전공 과목을 영어 강의로 수강해야 한다. 공대에서는 1개 이상의 전공 과목을 포함해 총 세 과목 이상의 영어 강의 이수가 필수적이다. 생활대의 영어 강의 수강 졸업 요건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학교에서는 영어 강의 수강을 지향하고 있지만, 현행 영어 강의에 대한 구성원의 평가에서는 맹점이 드러났다. 먼저 외국인 학생이 들을 수 있는 강의가 제한적이라는 점이 지적됐다. 이시우 씨(정치외교학부·19)는 “교환학생이나 유학생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영어 강의의 수가 너무 적고 수강신청도 힘든 상황”이라며 “적은 영어 강의에 외국인 학생이 몰려 한국 학생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도 적다고 들었다”라고 언급했다. 덧붙여 그는 가장 중요한 전공필수 과목은 영어로 열리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서울대에서의 학업을 포기한 외국인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2007년부터 매년 영어 강의를 개설하고 있는 백복현 교수(경영학과)는 “교환학생이 들을 수 있는 과목이 적다고 하소연한다”라며 “이들이 불편 없이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내국인 학생들은 영어 강의의 양보다는 질에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영어 강의를 10개 이상 수강한 이진우 씨는 “질 좋은 영어 강의가 많이 열리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학생과 교수자 모두 만족스러운 영어 강의가 나와야 한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영어 강의의 질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으로 모두 ‘교수자의 강의 능력’을 꼽았다. 양현서 씨는 “강의 구성이나 교수님의 강의 진행이 좋은 영어 강의가 만족스러웠다”라고 전했다. 이승구 씨(정치외교학부·18)도 “만족하지 못했던 수업의 경우 교수님이 영어로 정보 전달을 하시는 데 문제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영어 강의를 진행하는 교수자도 교수자의 강의 능력이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교수자를 대상으로 영어 강의 컨설팅을 진행하는 정한별 강의조교수(기초교육원)는 영어 강의에서 교수자의 전달력과 교수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전달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영어라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추가된다면 수강생의 어려움이 커진다”라고 전했다. 영어 강의 관련 연구를 진행한 이병민 교수(영어교육과)도 교수자의 영어 표현력과 풍부한 강의 내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영어 강의의 내실화 방법은

국제화라는 큰 목표의 달성에 앞서 기존에 산재하는 영어 강의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 먼저 영어 강의의 필요성에 의문을 품는 구성원이 다수 존재하는 상황에서 영어 강의 수만 늘리는 것은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기초교육원에서 영어 강의 연구를 진행하는 A교수는 “영어 강의의 목표와 정책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라며 “합의가 먼저 이뤄진 후 그에 따라 정책이 결정되고 지속돼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보고서에서도 국제화가 장기적 관점에서 시행돼야 하기에 학내 구성원 전체의 합의 도출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편 외국인 학생이 들을 영어 강의가 부족하다는 문제 의식과 함께, 외국인 학생을 어떤 기준으로 선발할지에 관한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 A교수는 “외국인 학생, 한국인이지만 영어가 더 편한 학생 등 다양한 학생을 선발했으니 그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영어 강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타당한 얘기”라면서도 “그 이전에 언어 능력 등 학생 선발 기준에 대한 합의가 다시 이뤄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병민 교수 역시 “서울대 내에서 언어 정책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거시적 그림이 필요하다”라며 “외국인 학생을 선발할 때 그들의 한국어 능력을 평가할 것인지 혹은 영어 능력을 평가할 것인지 등에 대한 기준이 정해져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영어 강의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 현재 많은 구성원이 교수자의 강의 능력을 영어 강의 만족도의 주요 요인으로 꼽고 있는 만큼 교수자 능력 향상이 필요하다. 현재 기초교육원 교수학습센터에서는 일대일 영어 강의 컨설팅과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정한별 강의조교수는 영어 강의 컨설팅을 “전달력 등 학생들과의 의사소통 위주의 특강”이라고 소개했다. 아울러 기초교육원 A교수는 “영어 강의 워크숍을 1년에 한두 번 정도 진행한다”라며 “초기에는 많은 교수자들이 참석했지만 이후 점점 적어져 최근에는 1년에 10~20명 정도만 참석한다”라고 언급했다. 교수자 교육의 실질적인 참여율이 저조해지는 상황에서 교수자가 강의 능력을 높이는 데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유인책을 고민해야 한다.

영어 강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영어 강의에 대한 구성원의 의견은 분분하다. 영어 강의의 실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영어 강의가 서울대의 국제화를 위해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삽화: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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