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희 취재부 차장
김창희 취재부 차장

“기자예요.” 내 필살기다. 낯가리는 내향형 인간이 관심이 고플 때면, 눈 딱 감고 이 비장의 무기를 꺼낸다. 쏟아지는 질문 세례. 효과는 굉장하다. 그렇지만 그 질문 앞에서는 항상 말문이 턱 막힌다. “그래서 『대학신문』 기자를 왜 하나요?” 그러게나 말이다. 지면 한구석에 실릴지도 모르는 기사 한 편과 그 많은 시간을 맞바꾸는 건 누가 봐도 불공정 거래다. 스스로에게 반문해 본다. 나는 왜 불공정 거래의 피해자를 자처하는가.

오랫동안 고민한 문제의 해답을 『대학신문』에서의 마지막 기사를 쓰며 찾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쓰는 특집 기사였기 때문일까. 큰 얘기를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미・중 갈등 속 한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주제로 잡고 기획안을 쓰기 시작했다. 욕심이 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작 학생 기자가 무슨 수로 한국 반도체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로 결심했다. 기업 관계자부터 관련 정책 담당자까지, 반도체 산업에 대해 조금이라도 제언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라면 인터뷰를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기자 신분이 주는 이점은 생각보다 컸다. 취재는 “저를 만나주세요”라고 대뜸 얘기할 좋은 핑계였기 때문이다. 특히 감명 깊게 읽은 반도체 관련 도서의 작가를 인터뷰하고 그 이야기를 기사에 실을 수 있게 됐을 때, ‘좋은 핑계를 뒀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에는 나오지 않는 새로운 사실을 취재를 통해 알게 됐을 때, 쾌감은 배가 됐다. 2019년 한일 무역 분쟁 이후 일본의 반도체 소재 기업이 수출 규제를 피하기 위해 중국과 한국에서 한국 기업과 ‘조인트 벤처’를 확대했다는 사실을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됐다. 일본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낮아진 배경에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 사이의 물밑 협력 확대가 있었다는 사실은 단순히 한국 기업이 소재 국산화를 잘 했기 때문에 일본 의존도가 낮아졌다고 믿고 있던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렇듯 많은 취재원의 도움으로 반도체 특집 기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 어설프게나마 한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에 대한 제언도 담았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을 만나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니 기자 개인이 얻은 바도 많았다. 

이 글이 단순한 ‘기자 예찬’으로 읽히지는 않았으면 한다. 내가 경험한 1년 반의 짧은 기자 생활은 분명 정신적·육체적으로 고된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마지막 기사를 쓰며, 내가 『대학신문』에 투자한 많은 밤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대학신문』 기자를 왜 하셨나요?” 이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기자보다 좋은 핑계는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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