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상병수당의 이모저모

한국 사회에 오랜 기간 뿌리내려 온, 아파도 쉴 수 없는 과로 문화. 과로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이에 응답해, 지난 7월 4일부터 건강 문제로 일할 수 없게 된 근로자의 소득을 보전하는 ‘상병수당 제도’의 시범 사업이 시작됐다. 상병수당 제도는 3년간의 시범 사업을 거쳐 2025년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과도한 근면이 익숙한 사회에서 벗어나 건강한 노동이 보장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 상병수당을 둘러싼 논의들을 짚으며 변화의 가능성을 조명해 봤다.

 

 

아파도 쉴 수 없는 사회의 관습적 뿌리

아파도 회사에서 아파야 한다는, 건강보다 일을 우선시하는 문화는 왜 생겨났을까? 한국 사회는 급속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성과 지상주의와 장시간 노동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를 형성했다. 2000년대 들어 ‘주 6일 근무제’에서 ‘주 5일 근무제’로, 다시 ‘주 52시간 근무제’로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이 이어졌으나, 실적에 따른 평가 체제는 계속 유지되면서 노동자들은 여전히 일에 쫓길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 있다. 아프면 쉬라는 취지에서 마련된 병가 제도마저 쉽게 사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기태 연구위원은 “질병으로 6개월 정도 휴직하면 승진이나 인사 발령에 부정적으로 반영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병원 주방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아파서 일할 수 없는 본인의 상황을 숨기고 자기 대신 일할 인력을 구해 겨우 쉬었던 적이 있다”라며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상황을 숨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원인은 과도한 근면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문화에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양승엽 입법조사관은 “개근상이 있을 만큼 결석이나 결근을 죄악시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다”라며 “아프면 당연히 쉬어야 하는데 이것마저도 성실성과 믿음의 문제로 파악하는 문화가 아파도 쉴 수 없는 사회를 만들어 왔다”라고 해설했다. 대기업 노동자 ㄱ 씨는 “하루나 이틀 정도 아픈 거면 차라리 연차를 소진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노동자는 병든 문화 속에서 쉬지 않고 출근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상병수당 시범 사업, 따라오는 기대

상병수당은 근로자가 업무와 무관하게 발생한 부상·질병으로 일하지 못하는 동안 하루에 최저임금의 60%인 4만 3,960원을 지원하는 제도로, 최대 90~120일까지 지원된다. 이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과로 문화에서 벗어나 ‘아프면 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도입됐다. 한편 상병수당 시범 사업은 현재 시범 사업 지역으로 선정된 6개 지역(△서울 종로구 △경기 부천시 △충남 천안시 △전남 순천시 △경북 포항시 △경남 창원시)에 거주하거나 해당 지역 소재의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만 15~64세 근로자를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다. 일과 생활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는 흐름 속에서, 상병수당의 시행은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한 소득 공백을 메꿔줌으로써 ‘질병-빈곤-건강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차단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은다. 다소 복잡한 신청 절차에도 불구하고, 상병수당은 시행 석 달 만에 신청 건수가 1,200건을 넘어섰다.

상병수당은 ‘아프면 쉴 권리’를 정부가 명시적으로 보장한 첫 제도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한국법제연구원 홍성민 연구위원은 “그동안 우리나라 사회 보장 제도에서 경시되던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노동자가 적시에 치료받기 위해 필요한 기간을 보장함으로써 노동자의 건강한 업무 복귀와 노동 생산성 손실을 방지해 노동의 효율성을 증대하리라는 기대도 있다. 이처럼 상병수당은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건강한 노동 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상병수당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다만 상병수당의 도입 목적이 온전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시범 사업을 바탕으로 꾸준한 제도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현 시범 사업의 급여 대상에는 일일 근로자나 파견 근로자가 포함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김기태 연구위원은 “비전형 근로자*와 같은 취약 노동 집단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적용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라며 “모든 근로자를 최대한 보편적으로 포괄할 수 있는 제도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부연했다. 질병으로 인한 쉼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을 방지하는 제도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홍성민 연구위원은 “상병수당과 함께 제도적으로는 ‘근로기준법’상 상병 휴가 제도 및 휴가 사용에 대한 불이익 처우 금지, 나아가 해고로부터의 보호 등 여러 제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상병수당을 사업장에서 지원하는 병가 제도로 보완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상병수당은 신청에서 발급까지 최대 14일이 소요되므로, 이 기간에는 병가를 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양승엽 입법조사관은 “수당을 받지 못하는 상병수당 대기 기간만큼이라도 유급 병가를 강행 규정으로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과 영세 사업자의 재정상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기업과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절충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취재원들은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도 상병수당은 궁극적으로 건강한 노동 문화의 정착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노동자 ㄱ 씨는 “상병수당이 원활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아프면 걱정 없이 쉴 수 있다는 인식부터 확산돼야 하고, 이 제도가 그런 변화의 단초가 되길 바란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병가가 있어도 쓸 수 없다는 노동자의 호소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휴식 자체를 기피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직장 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문화가 형성돼야, 아프면 쉴 수 있는 사회를 넘어 궁극적으로는 일 때문에 병들 일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시범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잡음을 포착해 유익한 비판의 목소리로 힘을 더하는 한편, 아프면 쉴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데 다 함께 동참할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한 상병수당이 정착됨으로써 ‘아프면 쉬는 게 당연한 사회’가 오길 바란다.

*비전형 근로자: 정규 근로자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사용자가 일시적으로 단기간 필요한 근로를 보완하고자 임시로 고용하는 파견 근로자나 일일 근로자 등을 의미한다.

삽화: 신윤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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