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호 교수(체육교육과)
강준호 교수(체육교육과)

흔히 교육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한다. 국가와 사회의 근본 초석이기 때문이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국가의 미래가 교육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의 교육은 오히려 온갖 사회 문제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집값에 큰 영향을 주고, 젊은 세대의 주요 결혼 기피 요인이기도 하다. 교육은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최전선이자, 사회적 종족 번식을 위한 부모의 치열한 투쟁의 장이 되고 있다.

이런 한국 교육은 인류가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이함에 따라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주도하는 디지털 전환, 기후위기,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팬데믹의 일상화 등으로 인해 개인의 삶과 사회의 작동 방식이 총체적, 복합적,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 환경의 대전환기를 맞아 한국 교육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는 교육의 근본과 미래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과 긴 안목의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의 교육 체계는 아직도 산업혁명 이후 만들어진 근대 교육 시스템의 연장선에 있다. 근대 교육은 한 마디로 ‘교수자 중심의 표준화된 대량 교육 시스템’이다.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듯이 모든 학생에게 표준화된 지식을 공급한 후, 지식 습득의 양과 속도에 따라 학생들을 평가해 등급을 매기는 방식이다. 이런 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의 개인차를 고려하지 않은 채 교수자(공급자) 관점의 ‘티칭’(teaching)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물건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성향과 특성이 있다. 근대 교육 시스템은 개인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인 방식으로 가르치며 평가했다.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는 ‘정상적으로’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없었으나, 좋은 부모를 만난 덕분에 ‘맞춤형’ 교육을 받으며 자기만의 사유 방식을 유지할 수 있었고 결국 자신의 길을 찾아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다.

미래 교육은 ‘학생 중심의 개인 맞춤형 학습 시스템’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개인의 특성에 따라 학습 효과를 최적화할 수 있도록 학습(learning)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기성복에 몸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각자 몸에 맞는 맞춤옷을 입는 것과 같다. 맞춤형 학습 시스템은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고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버리고 가는 교육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모든 학생을 안고 가는 포용적(inclusive)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

과거에는 맞춤형 교육을 하고 싶어도 구체적인 수단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학습 과학(the science of learning)이 발전하며 그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했다. 학습 과학이란 인간의 학습 현상을 교육학, 뇌신경 과학, 인지 과학, 데이터 과학 및 AI 등을 통해 학제적으로(interdisciplinary) 탐구하는 분야다. 학습 과학은 머신 러닝으로 시작한 AI의 궁극적 모습이 휴먼 러닝이라는 점에서 교육뿐 아니라 AI 발전에도 영향을 준다. 최근 들어 미국 스탠포드대, 미국 카네기멜론대, 미국 존스홉킨스대, 싱가포르 난양공대 등 세계적인 대학들이 학습 과학 연구에 뛰어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초·중등 교육뿐 아니라 고등 교육, 평생 교육, 기업 교육, 예술 교육, 스포츠 교육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학습 현상의 기초가 되는 범용 지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학습 과학은 미래 교육이 지향하는 개인 맞춤형 학습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핵심 지식을 창출한다. 또한, 학습 과학은 교육 과정, 방법, 환경, 정책 전반에 걸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를 상징하는 용어라고도 할 수 있다. 미네르바 스쿨 교육 혁신의 핵심도 학습 과학에 기반한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 학생들을 능동적인 학습 주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데이터 시대가 도래하며 모든 분야에서 맞춤형 시대가 열리고 있다. 맞춤형 접근이 인간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분야가 바로 건강과 교육이다. 맞춤형 의료 시대가 도래했듯이 맞춤형 교육 시대도 다가올 것이다. 서울대도 학습 과학 분야의 지식 창출과 인재 양성을 통해 미래 교육을 준비하고 선도해야 한다. 미래 교육의 핵심은 ‘티칭’이 아니라 ‘학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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