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현(컴퓨터공학부 석사과정)
정채현(컴퓨터공학부 석사과정)

최근 들어 소프트웨어 개발자라는 직업의 선호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작년 쿠팡, 카카오, 네이버 등 대기업이 개발 직군을 대상으로 성과급과 연봉을 일괄적으로 인상하는 등, 업계의 파격적인 대우도 한몫했다. 교내 컴퓨터공학부 복수전공 진입생의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한 것도 이런 현상을 뒷받침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고용 시장이 얼어붙었지만, 개발자 시장은 디지털 전환 가속화라는 기회를 발판으로 삼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 개발직의 매력 중 하나는 능력에 따라 정직하게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첫째, 대부분의 IT 기업들의 채용 과정에서 다른 직군과 비교해 학벌이나 학점 같은 요소가 비중이 작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가는 주어진 문제를 즉석에서 프로그래밍하는 코딩 테스트와 전문 지식을 묻는 전문성 면접 등으로 이뤄진다. 둘째, 개발자의 능력에 따라 조직의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인식이 개발자 사회에서 만연한 만큼, 개인의 기술력에 따른 급여 차이가 크다. 팀 안에서 같은 업무를 맡아도 다른 수준의 연봉을 받는 것은 흔한 사례다. 이렇듯 청년층이 철저히 능력만으로 평가받는 개발직을 선호하는 현상은 ‘공정’과 ‘능력주의’에 대한 갈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집안, 학벌 등 타고난 배경과 관계없이 모두가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실력’만으로 경쟁할 수 있는 개발 직군은, 정·재계 인사의 자녀 입시 비리, 채용 비리에 분노한 청년층에게 몇 안 남은 공정의 보루로 인식된다.

하지만 개발직의 최대 매력인 능력에 따른 대우는 역설적으로 오래, 그리고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필자에게 불안감으로 다가온다. IT 산업은 그 어느 분야보다 변화에 민감한 곳이다. 프로그래밍 언어와 프레임워크는 매년 버전이 업데이트되며, 하드웨어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백엔드(Back-End), 인프라 환경 또한 시시각각으로 진화한다. 개발자들은 나이가 듦에 따라 적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젊은 시절의 역량을 유지하며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혹자는 많은 나이에도 계속 능력을 갈고닦으면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생태계라고 말한다. 물론 개발자들 간 의사 조정을 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나 프로그램의 전체 향방에 대한 의사결정 능력 등을 키우면 관리자급 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겠지만, 관리자 직급의 수요는 신입 프로그래머의 수요와 비교해서 절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더불어 최근 실리콘 밸리로부터 발발한 IT 기업 고용 한파는 우리나라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규모 채용 뒤의 고용 시장 위축이 시사하는 점은 명백하다.

우리는 흔히들 말하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노동이라는 단어가 아예 새롭게 정의되고 있는 격동의 시기를 살고 있다. 얼마 전 오픈AI에서 발표한 ‘Codex’는 자연어 형태의 입력을 받아 코드를 작성하는 인공지능으로, 간단한 게임 개발 및 웹 프로그래밍까지 가능한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직 현업자들을 대체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하지만, 여타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로 미루어봤을 때 종국에는 인간의 자리를 위협할지도 모른다. 만약 개발자의 가치가 철저하게 실력만으로 평가받는다면, AI보다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늦둥이 딸을 위해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는 의사라는 직업에 도전한 대기업 부장 출신 동문의 이야기가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다.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 하고 중년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결심한 그의 사례에서 ‘오래 일한다’는 것이 직장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읽어낼 수 있다. 기업 내 세대교체는 사용자 관점에서 단순히 인력 쇄신의 수단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개발자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는 생계와 생존의 문제다. 노장이 돼서도 꾸준히 일하고 싶은 개발자들을 위한 논의의 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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