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회 대학문학상 시 부문에 시를 보내준 투고자는 100명이 넘는다. 시와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 커다란 숫자가 의미하는 바가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년에 비해 압도적으로 늘어난 숫자라는 사실도 주목할 부분이다. 

심사위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사실은 응모작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지만 그만큼 쉽게 씌어진 시도 많은 듯했다는 점이다. 우선, 응모작들의 소재나 주제가 전반적으로 다채롭지 못하고 일상적인 상념들이 푸념처럼 적히는 경우가 많아 아쉬웠다. 개인적인 감정들을 토로하는 문장들의 더미가 시라고 착각하는 사례도 적지 않게 보였다. 시의 기본 단위가 단어이고 문장이라는 점은 산문과 동일하지만, 시를 시답게 만드는 것은 일차적으로 행과 연의 적절한 구분이다. 행과 연이 바뀌는 필연적인 이유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어느 정도 세련된 구성을 취했지만 예측 가능한 시상의 전개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생경한 단어들의 무분별한 활용을 시적인 것이라 믿거나, 이미 독자들에게 익숙한 시들을 흉내낸 경우들도 꽤 있었다. 

이러한 사태가 생겨나는 것은 아무래도 성급한 쓰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급하게 쓴 듯 보인다는 것은 개별 작품들을 좀 더 공들여 썼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고, ‘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많은 ‘읽기’의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양한 시에 대한 독서 경험이 부족해 본인이 접해 본 몇몇 형태의 작품들만을 시적인 것으로 믿게 된다면 시의 형태나 주제나 사용하는 어휘들이 상투적으로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색다른 작품이 씌어지려면 시적 체험이 깊고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차적으로 그것은 다양한 ‘읽기’로부터 충족될 수 있다. 시에 관해서라면, 몇 편이나마 ‘쓰기’는 쉽고 엄청나게 많은 양을 ‘읽기’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정확히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올해 대학문학상 시 부문의 가작으로 「확산」을 결정하기까지 심사위원들의 많은 고민이 있었다. “가는 비 온다”라는 기형도의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시는 설정이나 분위기가 기형도의 어떤 시들을 생각나게 한다. 알 수 없는 어떤 상실의 정서가 시 안에 깔려 있기도 하다. 간밤에 내리는 “가는 비”를 응시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시는 나아가 관계의 틈과 언어의 사이를 읽으려는 “독순술”로 확장되기도 한다. 상실의 감정이 그 틈과 사이로부터 생겨난다고 할 수 있다. 흥미롭게 읽은 응모작들이 더 있었지만 「확산」이 심사위원들에게는 여러 가능성을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작품으로 읽혔다. 

개인의 경험에서 시가 출발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일이지만, 그 경험을 언어화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쓰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또 다른 체험을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응모자들의 시적 체험이 더욱 단단해지기를 바란다.

 

조연정 교수(기초교육원)

봉준수 교수(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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