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문화 | 성별 이분법을 넘어서, ‘코드명: 논바이너리’가 바라본 세상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분을 넘어선 제3의 성별이 인정받는 세상이다. 지난달 28일부터 29일까지, 지난해 9월 출범한 문화예술원과 다양성위원회의 첫 번째 페스티벌 ‘코드명: 논바이너리’가 열렸다. 페스티벌은 전시와 세미나, 공연 등을 포함한 다채로운 행사로 구성됐다. ‘코드명: 논바이너리’라는 이름은 성별 이분법과 컴퓨터의 이진법을 부정하며, 경계선을 넘어 무수한 가능성을 바라보려는 이들의 움직임을 상징한다. 『대학신문』은 29일 파워플랜트(68동)를 방문해 경계가 허물어지는 역동의 현장을 시간 순으로 소개한다.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적 시도

루킴 작가의 눈, 코, 입, 귀, 이마, 턱, 광대뼈, 눈썹.
루킴 작가의 눈, 코, 입, 귀, 이마, 턱, 광대뼈, 눈썹.

양일간 개최된 전시 〈바이너리를 넘나드는 작가들〉에서는 새로운 예술적 실험을 통해 사회가 규정한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페미니스트 활동 단체 페미당당의 〈퀴어퍼레이드 아카이브 프로젝트〉와 젠더뮤지엄코리아가 주관한 학생 참여 프로젝트 〈우리 사랑해도 될까요?〉를 포함한 여덟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문화예술원 김민아 전문위원은 “단순히 성별의 경계뿐만 아니라 ‘경계’라는 커다란 주제 아래 새로운 실험을 시도한 작업 위주로 선정했다”라며 “작가 자체가 논 바이너리를 지향한 경우도 있고 작업의 성격 자체가 경계를 허문 경우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퀴어퍼레이드 아카이브 프로젝트〉는 경계를 탈피하는 움직임을 아카이빙한 작업이자, 그 방식에 있어서도 실험성을 추구했다. 전시회장 한쪽에서는 서울퀴어퍼레이드 당시 페미당당의 기록과 물품, 사진 등을 관람할 수 있었다. 페미당당 심미섭 활동가는 “소수자의 움직임은 잊히기 쉽기 때문에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의 여타 작업처럼 대표자 중심의 위계적인 방식이 아니라 자유로운 방식으로 그 기록을 남기고자 했다”라고 밝혔다.

젠더뮤지엄코리아 주관의 〈우리 사랑해도 될까요?〉는 지난해 2학기 열린 ‘성과 사랑의 역사’ 과목 수강생들이 수업 내용을 토대로 해당 전시의 기획자들과 협업해 제작한 콘텐츠를 전시했다. 풋풋한 편지, 연애 당시 주고받은 목걸이 등의 선물, 놀이공원에서 나눠 쓴 머리띠 등 학생들의 연애와 실연의 기억이 가득 담긴 물건들로 가득했다. 수업을 진행한 기계형 강사(서양사학과)는 “성과 사랑이 삶에서 너무나 중요한 주제이니만큼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 사회와 호흡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역사에 남은 사랑의 기록도 찾아볼 수 있었다. 전시를 관람한 유정민 씨(사회학과·21)는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편지 속 낭만적 문구에서 드러나는 사랑이 인상적이다”라고 밝혔다.

그 외 여섯 작가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분된 정체성의 해체를 시도했다. 프린터 잉크가 천장에서부터 늘어진 검은 천을 적시며 숨겨진 색깔을 드러내는 권다예 작가의 작품 〈printer.13.1.3.〉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외에도 동성애자를 향한 경고문을 포스터로 디자인해 경고문의 목적을 비틀고자 한 양승욱 작가의 작품 〈경고 1-5〉, 전래동화 속에서 구원 당하는 위치에만 자리했던 소녀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직접 탐구하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 이시마 작가의 〈트릴로지 전례X동화〉 등이 전시 공간을 장식했다.

양승욱 작가의 경고 1-5.
양승욱 작가의 경고 1-5.

 

논 바이너리, 경계가 없는 화장실

오후 3시부터는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페미당당 심미섭 활동가, 양승욱 작가가 참여한 ‘퀴어와 경계(퀴어 안팎의 경계). 경계선과 함께 살기’ 세미나가 진행됐다. 세 사람은 기존의 성별 경계에 따르지 않는 새로운 화장실과 소수자의 화장실 내 안전을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이들의 이야기는 화장실은 이분법적 성별 경계를 전제하며, 장애인, 성소수자, 건설·철도·청소 노동자 등의 자유로운 접근이 온전히 허용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김지학 소장은 미국 유학 시절 대부분 건물의 1층에 ‘모두의 화장실’이 설치돼 있어 사람들이 편하게 이용했던 경험을 계기로 모두의 화장실 증설 사업을 진행하게 됐다며 운을 뗐다. 모두의 화장실은 성별, 장애 여부, 아이 동반 여부 등과 무관하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넓고 쾌적한 화장실이다. 대부분 1층에 위치하고 공간 또한 넓어 접근성이 뛰어나며, 성별이라는 경계를 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 화장실이 갖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한편, 모두의 화장실이 지닌 특성 탓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제기됐다. 심미섭 활동가는 화장실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지난해 일어난 ‘신당역 살인사건’과 2016년에 일어난 ‘강남역 살인사건’을 예로 들며 모두의 화장실 내 여성 대상 범죄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나아가 모두의 화장실이 노숙인의 임시 거처, 마약중독자의 쉼터, 혹은 청소년의 성관계 장소 등 용변 이외의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비판도 화두에 올랐다.

이에 대해 양승욱 작가는 “모두의 화장실의 원형은 가족 화장실”이라며 “화장실이 더럽고 위험하고 숨겨진 공간이 된 것은 사회가 소수자를 위한 안전망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피력했다. 앞서 제기된 우려의 근본적 원인은 모두의 화장실이 아닌, 모든 개인이 안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에 있다는 것이다. 세 활동가는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막을 생각부터 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소수자에게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돼야 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경계에 도전하는 사운드 퍼포먼스

다이애나 밴드가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다이애나 밴드가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오후 5시부터 다이애나밴드와 가수 HWI, And Rose Peacock이 참여한 폐막 무대 ‘NON-BINARY: 선 넘어 놀기’가 펼쳐졌다. 이들의 공연은 관객의 호응과 화합을 끌어내며 페스티벌의 대미를 장식했다. 세 공연팀 모두 기존의 음악 장르에 들지 않는 실험적이고 개성 있는 음악을 선보였다. 다이애나밴드는 일상 속 사물과 직접 만든 전자 악기를, HWI는 목소리를, And Rose Peacock은 컴퓨터를 베이스로 한 전자음을 주로 사용했다. 그중에서도 다이애나밴드의 이두호 씨는 스피커와 마이크 사이에서 색, 재질, 모양이 각기 다른 일상적 오브제의 소리를 담아냈으며, 같은 밴드의 신원정 씨는 직접 만든 악기 위에 그림을 그려 진동을 줘서 전자음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끌었다. 신원정 씨는 “오늘 선보인 〈고양이와 종이상자〉는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진동과 사물, 움직임의 관계를 느끼며 ‘수행하는’ 사운드 퍼포먼스다”라고 설명했다. 공연자들을 초대한 김민아 전문위원은 “이번 페스티벌의 취지상 장르적 경계에 속하지 않는 음악을 들려주려고 했다”라고 전했다.

문화예술원과 다양성위원회가 주최한 첫 페스티벌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전시와 공연, 그리고 세미나 모두 사회의 규정된 경계를 벗어나려는 여러 움직임을 한껏 담아냈다. 이틀간의 행사는 종료됐으나, 고정관념을 탈피하려는 이들의 움직임은 분명 곳곳에서 이어질 것이다.

 

 

사진: 유예은 기자

eliza72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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