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인터뷰 | 경제학부 18학번 민준홍 씨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민준홍 씨(경제학부·18)는 “결국은 지나온 모든 순간이 의미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라고 말한다. 입학 전부터 수능 만점자로 화제를 모았던 그는 입학 후에도 여러 매체에 얼굴을 비추며 학부생으로는 드물게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기자는 관심의 중심에 있는 유명인이 아닌 ‘학생 민준홍’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며 자신을 겸손하게 다져왔다. 이제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선 민준홍 씨의 지난 5년은 어떤 모양일까.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탐색했던 그의 발자국을 따라가 봤다.

 

‘무엇을 위해?’라는 고민

‘학부생 민준홍’의 5년은 끝났지만 민준홍 씨는 여전히 캠퍼스에 남을 예정이다. 그는 이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법전원) 학생으로서 새로운 3년을 앞두고 있다. 민 씨는 국제정치 및 국제경제 시스템을 구성하고 규율하는 국제법 및 통상법의 중요성에 끌려 이를 더 깊게 공부하고자 법전원에 진학하게 됐다. 그는 “먼 훗날 세계무역기구(WTO)나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와 같이 권위를 갖고 분쟁을 해결하는 국제기구에서 일할 수 있다면 영광일 것”이라고 눈을 빛냈다.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해 보이는 민준홍 씨. 하지만 기자의 생각과 달리, 그는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는 학부 생활을 관통하는 고민이었다”라고 답했다. 오랜 학창 시절 동안의 목표였던 대학에 입학하자, 그 이후의 삶에 최선을 다할 원동력을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에 민준홍 씨는 이런 고민을 TV 토크쇼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유재석 씨에게 털어놨다. 민준홍 씨에게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 따로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다”라는 유재석 씨의 답변은 사뭇 의외로 다가왔다. 그는 “뚜렷한 목표를 두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당시에는 유재석 씨의 말을 쉬이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졸업을 앞둔 지금은 오히려 공감이 간다”라고 밝혔다. 목표 설정의 강박이 오히려 민 씨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나는 경험한 것을 위주로 사고해서, 겪어보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다”라며 “삶의 목표를 미래에 두기보다는 최선을 다한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재조합하며 삶의 방향성을 잡아 나가는 것이 내 성향에 맞았다”라고 답했다. 그런 민준홍 씨에게 삶은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형체를 파악하는 연속적인 경로 변경의 과정이다. 

 

지나온 길에서 찾는 의미

민준홍 씨가 최선을 다했던 지난 5년은 어땠을까. 경제학을 전공하고, 외교학 복수전공을 한 민 씨의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국제 분야로 수렴했다. 그는 이론적인 틀을 적용해 결론을 도출하는 경제학의 특성에 매력을 느껴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경제가 이론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외교학 공부에 뛰어들었다. 민 씨는 외교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에 대해 “여러 세미나에 참여하며 경제가 국제정치와 밀접하게 맞물리며 작동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운을 뗐다. 미·중 패권 경쟁의 막이 오르기 직전이었던 2018~2019년 즈음, 민 씨는 세미나에서 존 미어샤이머, 그레이엄 앨리슨 등 세계적인 석학들이 미·중 패권 경쟁을 예측하고 그 속에서 한국의 국제경제적 역할을 논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는 “빠르게 변하는 국제 정세가 경제 변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게 즐거웠다”라고 외교학 복수전공의 이유를 밝혔다. 이렇듯 국제 관계와 국제경제에 있었던 민준홍 씨의 학문적 관심사는 이재민 교수(법학전문대학원)의 ‘주권국가와 국제법원’ 강의를 통해 국제법으로 확장됐다. 그렇게 강의를 들으며 식견을 쌓은 그는, 뉴스에서 여러 국가가 얽혀있는 사안을 접했을 때, 국제법을 통해 이해할 수 있어 시야가 넓어짐을 느꼈다.

국제 분야에 대한 민준홍 씨의 학문적 관심은 2019년 여름 ‘SNU in the UN’ 참여로 이어졌다. ‘SNU in the UN’은 뉴욕의 유엔 본부를 직접 방문해 유엔의 작동 방식을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민 씨는 “실제로 세상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관료주의적인 유엔이 아니라 각국의 국제정치 역량임을 느꼈다”라며 “국제기구보다는 정부를 대변해 국익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활동을 통해 느낀 바를 전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도 이때 유엔 한국 대표부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민 씨는 “눈빛에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 확신이 있는 것 같아 이 사진을 가장 좋아한다”라며, “졸업 후 학부생 시절 사진을 단 한 장 가져갈 수 있다면 이 사진을 가져가고 싶다”라고 소개했다.

‘SNU in the UN’ 프로그램 중 주 유엔 대한민국 대표부 앞에서 찍은 사진.
‘SNU in the UN’ 프로그램 중 주 유엔 대한민국 대표부 앞에서 찍은 사진.

민준홍 씨는 다양한 대외활동에 참여하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고도 밝혔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국제법 모의재판대회, 국제 해양법 모의재판대회 등의 각종 대회에도 참가했다. 그는 “비록 학문적 성장을 위해 참여한 대회였지만, 궁극적으로는 대학 생활을 대하는 태도에 큰 변화를 겪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이 대회들 전에는 보장되지 않은 결과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을 망설였다”라며 “대회를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좋은 결과까지 얻게 되면서 과감히 많은 노력을 투입해 도전하는 것을 즐기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뚜렷한 목표나 지향을 갖게 된 건 아니라는 민준홍 씨. 그는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내고 그것을 향유하는 다채로운 삶을 사는 것, 그리고 의미를 찾는 과정 자체를 즐겁게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삶의 목표와 의미를 어디에 둬야 할지 끊임없이 고뇌하고 탐색했던 모든 순간이 모여 그의 5년을 만들었다. 민 씨의 5년을 관통했던,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둬야 하는가’라는 고민은 이제 “뒤돌아봤을 때 모든 순간이 의미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단단해졌다. 대학 생활의 자유라는 이름 뒤에 숨은 예측 불가능성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뒤돌아봤을 때 모든 순간이 유의미한 영상으로 펼쳐질 것이라는 믿음이 그를 지지해준다.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는

민준홍 씨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과, 운동이나 음악 동아리처럼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활동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쉽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겨울 파리 여행을 다녀오고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문화도 많고 만나보지 못했던 다양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며 후배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을 조언했다. 그는 “대학은 적은 부담으로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라며 “새로운 도전을 통해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찾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민준홍 씨는 특별한 삶의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그와 달리, 뚜렷한 목표 의식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조급해했던 시절도 떠올렸다. 민 씨는 융통성이 없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고지식했고, 일정 관리에 있어서도 계획이 어긋나면 강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민준홍 씨가 조급함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후회하지 말자’라는 원칙을 세운 이후였다. 그는 “후회하면 반성하는 시간보다 나를 갉아먹는 시간이 길었다”라며 “후회하는 시간이 비생산적이라고 느꼈다”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일까. 민준홍 씨는 후배들이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 그는 “누가 어떤 시험에 합격했다더라, 누가 대박 났다더라 하는 말들에 휘둘려 조급해지면 오히려 길을 잃는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쌓아온 것과 쌓아갈 것들이 의미 있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노력하다 보면, 훗날 뒤돌아봤을 때 각각의 의미를 재조합해 자신의 삶을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스스로를 믿을 것을 강조했다. 민 씨는 “사람이 100% 완벽할 수는 없다”라며 “완벽하지 못한 모습에 대해 후회하기보다 잘못을 극복할 방법을 고민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지난 시간에서 의미를 찾는 그의 가치관과 궤를 같이하는 조언이었다.

민준홍 씨는 이제 아쉬웠던 순간들을 밑거름 삼아 더 나은 어른, ‘속이 꽉 찬 지식인’이 되고자 한다. 민 씨는 스스로 새내기 때의 민준홍과 졸업을 앞둔 민준홍은 같은 듯 다른 사람이라고 평했다. 5년 동안 스스로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성찰을 통해 완만하게 성장했듯이, 앞으로의 시간 역시 성품과 지혜를 함양해 어른으로 거듭나는 데 쓰고자 한다.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속이 꽉 찬 지식인이 되기 위한 노력을 다짐하기도 했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민준홍 씨. 누구나 그렇듯 그는 희망과 기대에 설레는 마음과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품고 있다. 민 씨는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졸업생들에게 “우리가 의미 있는 시간을 지나왔다는 믿음을 갖자”라고 힘을 불어넣었다. 그는 “내가 캠퍼스에서 본 우리 학교 학생들은 어떤 상황이든 풀어낼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라고 자신했다. 수년간 캠퍼스에서 스스로를 다져 다시 미지의 문 앞에 선 민준홍 씨를 비롯한 졸업생들에게 경의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사진: 안선제 기자 

sunje102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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