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펙은 어떤 기구?

◆ 아펙(APEC)이란?

아펙은 북미자유무역연합(NAFTA)과 유럽연합(EU)의 부상에 대응해 아시아ㆍ태평양 연안국가들이 역내 경제협력 증진을 목표로 1989년 창설한 지역협력체다. 정상회의와 장관급회의를 포함한 각종 회의가 매년 열리고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21개국이 가입해있다.

느슨한 협력체제인 아펙에서 결정된 정책의 구속력은 약하다. 그러나 아펙을 통해 21개국 정상들이 매년 한자리에 모여 경제 분야 뿐 아니라 외교, 안보 분야에서도 정책공조의 폭을 넓혀가고 있으며 세계무역기구(WTO)의 정책추진을 돕고 있어 그 영향력이 크다. 또한 아펙 회원국들의 국내총생산(GDP)과 교역량이 각각 전세계의 57%와 46%를 차지(2003년 기준)하고 있을 정도로 회원국들의 경제 규모도 크다. 

출범 이후 아펙은 무역과 투자 자유화를 중점적으로 추진해왔다. 1993년에는 난항을 거듭하던 우루과이라운드(UR) 연내타결을 결의했고, 1994년 보고르 정상회의에서는 무역자유화 노선이 구체화됐다. 선진국은 2010년, 개발도상국은 2020년까지 역내 무역ㆍ투자 자유화를 완료하며 새로운 보호무역 장벽을 세우지 않는다는 것이 보고르 선언의 주요내용이다.

또한 최근 몇 년 사이 아펙은 테러 대응에 대해서도 활발한 논의를 진행시켜왔다. 9.11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감행했던 미국이 2001년 10월 상하이 회의에서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의제를 제기해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한다’는 공식 선언문이 채택됐다. 2003년 방콕 회의에서는 이라크 파병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들이 논의됐다.

이처럼 아펙은 그동안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왔지만 오는 12월 처음 열리는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중국과 우리나라 등 다수 아펙 회원국이 참여함에 따라 진로 설정에 영향을 받게 됐고, 회원국들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정책합의가 어려우므로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우리나라와 아펙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남상열 연구위원은 “역내 무역 자유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요한 절차인 보고르 선언 중간점검이 이번 부산회의에서 수행된 것은 아펙 출범 때부터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적 기대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펙 내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위상이 제법 높다는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가 총 교역량의 70%를 아펙 회원국들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참가국들과의 정기적인 교류를 통해 외교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은 우리나라에 있어 아펙이 가지는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남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외국 시장 접근에 있어서는 적극적이면서도 우리 시장을 개방하는 데는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이번 아펙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우리 국민들의 의식변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아펙의 반민중성

하지만 아펙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한신대 이해영 교수(국제관계학부)는 “그동안의 행보로 볼 때 아펙은 아시아 지역에 대한 경제적 세력 확장을 꾀하는 미국의 충실한 도구 역할을 하고 있다”며 “몇몇 강대국들을 제외한 많은 국가들은 들러리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18일(금)과 19일 부산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던 ‘APEC반대 부시반대 국민행동(아펙반대국민행동)’은 “아펙이 지지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자유무역’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게 하기는커녕 노동자ㆍ민중의 권리를 박탈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며 아펙의 자유무역 확산 기조 자체를 비판했다. 실제로 최근 세계은행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인구 상위 10%와 하위 10%간의 소득격차가 1980년 79배에서 1999년 117배로 확대됐을 정도로 세계화에 따른 양극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또 아펙이 2003년 방콕회의 등에서 ‘안보’를 명목삼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합리화해왔다는 점,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를 야기한다는 가설은 옳지 않다”며 온실가스 감축을 약속한 교토의정서에 반대하는 흐름을 만들어 자국 기업들의 부담을 줄이려 하는 점도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한편 이번 정상회의의 경우, 여성 권익증진이 의제로 상정된 것을 두고 그 기만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APEC반대 여성대회’ 집행위원 조이헌임씨는 “아펙에서 그 권익을 옹호하고자 하는 여성은 전체여성의 1%에도 못미치는 여성 기업인과 정치인”이라며 “아펙이 추진하는 노동시장유연화는 여성 비정규직을 확대해 오히려 대다수 여성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상회의 마지막날 발표된 아펙 정상선언문 주요내용

■ WTO DDA 협상의 성공적 진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합의

■보고르 선언에 명기된 역내 무역 자유화 완료 시한까지 각국이 역점을 두어야 할 사안을 정리한 '부산로드맵' 채택

■ 국민의 생명과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인권과 거래비용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대테러 활동 강화
■ 조류인플루엔자에 대처하는 공동 전략 수립

■ 고유가가 경제와 무역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에너지 시장에서의 공동대응 합의

■ 국민들의 사회ㆍ경제적 격차 완화 방안을 연구하기로 합의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