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쉬듯 꿈틀거리는 사회의 동태를 보고 있자면 왜인지 모르게 벅차오르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시위, 외침, 호소. 30년 전만 해도 ‘소요 사태’로 불렸던 일들. 소수의 우수한 엘리트만이 사회를 이끌 수 있다는 그럴듯한 말은 몇천 년 동안 인류를 따라다녀 왔지만, 여태 사회를 변화시킨 진짜 주체는 시민이었다(이다). 프랑스 대혁명, 68혁명, 88년 민주화 항쟁 등, 1명의 로베스피에르보다 만 명의 민중이 더 큰 힘을 발휘해 왔다. 국가의 근간 또한 그러하다. 시민이, 그리고 그들의 움직임인 노동이 국가를 굴러가도록 해왔다.

이렇듯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트주의는 여전히 사회에 잔존해 있다. 이는 자연히 ‘엘리트가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에 대한 하대로 이어진다. 화이트칼라에 대한 선망, 블루칼라에 대한 암묵적 깔봄, 꼬리표가 되는 대학 출신. 특히 단순 노동 혹은 일용직 노동 종사자에게는 더욱 심한 차별이 가해진다. 그리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노동이 국가 운영의 근간이라는 거창한 이유를 내세우기 이전에도, 우리 모두가 정치 지도자나 선도적인 연구가가 될 가능성보다는 오히려 소시민이나 평범한 노동자로 일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가. 노동 의제를 남의 일로, 엘리트의 이익을 나의 일로 여기는 경향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다. 

물론 엘리트가 되지 말라는 취지는 전혀 아니다. 다만 엘리트만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판단을 하기 이전에, 정말 그런지 한번 더 생각할 필요는 있다. 우리는 주로 엘리트보다는 노동과 맞닿아있음을 새겨야 한다. 특히 서울대라는 공간은 엘리트주의에 빠지기 쉬운 환경을 제공한다. 아무래도 입시라는 경쟁 시장에서 성과를 세운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보니, 스스로를 선택받은 자라고 오만하게 생각해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운 좋게 경쟁 사회, 특히 ‘시험 치르는 능력’을 높이 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대학에 왔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남을 함부로 평가하고 줄 세우거나, 그런 행위로 자부심을 갈취해낼 자격은 없다.

소수의 권력가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수의 힘보다는 다수의 시민이 뿜어내는 뜨거운 움직임의 에너지가 지닌 가능성에 나는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최근 뉴스를 보면 시험 몇 번 잘 치러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은 사람들이 마치 세상 모든 이치를 다 아는 듯 행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적어도 그들의 정제되고 편협한 사고보다는 다수의 투박한 움직임이 더 가치롭다 믿는다. 그들이 칭송받을 만한 엘리트가 맞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엘리트주의에 잠식되지 않도록 항상 노력해야할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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