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프로 선수의 삶, 그 이후를 조명하다

많은 이들에게 스물셋은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준비하는 나이다. 하지만 최근 5년 간 운동선수의 평균 은퇴 나이는 23.6세.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박수갈채를 기다리며 오랜 시간 운동에 매진해 온 많은 프로 선수가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채 끝내 돌아서고 만다. 화려한 무대를 바라만 보다 뒤돌아선 이들 앞에 놓인 것은 가파른 낭떠러지다. 조명이 닿지 않는 곳에서 성공을 꿈꾸며 달려왔지만 무대를 등져야 했던 은퇴 선수들의 이야기는 꿈을 꾸고, 또 무수히 꺾일 모든 청춘의 이야기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기까지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약 10만 명의 학생 선수 중 경쟁을 이겨내고 프로 혹은 실업팀에 진출하는 선수는 약 9%에 불과하다. 이 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적정 수입을 유지할 수 있는 선수의 비율은 더욱 낮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선수들이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험난한 길을 걷고 있다. 14년간 야구만을 위해 달려온 장빈 선수(25)는 이제 함성이 가득한 1군 무대에서 뛰는 28인 중 한 명이 되기 위해 다시 달리고 있다.

장빈 선수의 선수 생활은 부상으로 인한 불확실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충암고등학교 유망주였던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팔꿈치 수술을 하고 1년 유급했다. 프로 구단들이 졸업 예정자 중 신인 선수를 선발하는 드래프트에도 1년 후에야 참가할 수 있었다. 무난하게 지명될 줄 알았건만, 결과는 미지명.

약간의 방황은 있었지만, 야구에 대한 간절함으로 겨우 마음을 추스른 그는 강릉영동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깨 부상이 문제였다. 결국 두 번째 드래프트에서도 지명을 받지 못해 야구를 그만둘까 고민하던 순간, 두산 베어스에서 입단 테스트 제의를 받았다. 

2020년 겨울, 마지막 기회를 잡는 심정으로 임한 두산 베어스의 입단 테스트를 통과한 장빈 선수는 마침내 스물 두 살에 프로 무대에 입성했다. 그러나 어깨 부상이 온전히 낫지 않아 재활군으로 분류되며 또 한 번의 기다림을 견뎌내야 했다. 8개월의 고통스러운 재활 끝에 처음 마운드에 오른 것은 2021년 8월 11일, LG 트윈스 2군과의 야간 경기였다. 그는 “만루에서 연속 세 타자를 삼진으로 잡은 그 경기를 잊을 수 없다”라며 활짝 웃었다. 

장 선수는 “재활의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라고 회상했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재활의 시간을 묵묵히 감내해온 그는 1군 무대를 바라보며 여전히 기다림의 시간 속에 서 있다. 그는 기다림 끝에 마주할 은퇴를 걱정해본 적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은퇴를 걱정하면 운동은 못한다”라고 답했다. 당차 보이는 대답에서 누구에게나 상존하는 이른 은퇴에 대한 불안감이 도리어 무겁게 다가왔다.

 

무한한 기다림의 끝에는

무한한 기다림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 비단 장빈 선수뿐일까. 선수들에게 가장 잔인한 사실은 노력의 시간과 프로 무대에서의 성공 가능성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처 빛을 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 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특히 무명 선수들은 대체로 갑작스러운 은퇴를 맞이하게 된다. 수원 TNP베이스볼아카데미의 코치이자 야구 유튜버로 활동 중인 정규식 씨(34). 그는 야구가 하고 싶어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일본에서 졸업했고 귀국 후에는 독립야구단에서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간절한 노력 끝에 독립야구단 최초로 신인 드래프트에 지명돼 LG 트윈스의 프로 선수가 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스프링캠프 도중 군에 입대했고 전역 일주일 전 방출 통보를 받았다. 그는 “방출 통보 며칠 전만 해도 구단 매니저가 유니폼을 맞추라고 말했을 정도로 전혀 예상치 못했다”라며 “실력이 이유라기에는 입단 직후 입대해 보여준 것이 없고, 사고를 친 것도 아닌데 아직도 왜 방출됐는지 의문이다”라고 털어놨다.

갑작스러운 은퇴를 마주한 젊은 선수들은 무방비 상태로 사회에 던져진다. 이들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것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이다. 은퇴를 맞이한 선수들은 운동 외에 다른 일을 경험해본 바가 거의 없다. K3리그와 인도네시아 프로 축구 리그를 거친 민경빈 씨(자영업자·34)는 에이전트와의 문제로 25세에 은퇴를 맞이했다. 그는 “은퇴 직후 큰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경리 업무를 맡게 됐으나, 사무 능력이 아예 없는 상태였기에 너무 답답했다”라며 “결국 3개월 만에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라고 회상했다.

은퇴로 인해 심리적 위축을 겪은 젊은 선수들은 새로운 진로에 쉽사리 뛰어들지 못한다. 정규식 씨는 “십수 년의 야구가 한순간에 무너지자, 나 스스로 정말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고 야구공을 쳐다보기도 싫었다”라고 회상하며 “그래서 다른 구단에서 운영을 전담하는 프런트 제의가 왔음에도 모두 거절했다”라고 고백했다. 이처럼 은퇴 후 겪는 자아 정체감의 저하와 운동에 대한 회의감은 자신의 특기를 살린 제2의 삶을 시작하기 어렵게 만든다. 또한 운동선수들은 대체로 십수 년간 정해진 훈련 계획에 따라 생활하기에 한순간에 맞닥뜨린 완전한 자율 속에서 방황하기 쉽다. 정 씨는 “야구를 그만뒀을 때 목표가 사라진 것이 가장 힘들었다”라고 회상했다. 이들이 겪게 되는 사회적 고립감 또한 큰 문제다. 사회적 협동조합 플랜비 스포츠 장보미 이사장은 “운동선수들만의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다가 은퇴 후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자연스럽게 고립감을 느낀다”라며 “일부 선수들은 탈북민이 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라고 전했다.

마음부터 불안정한 제2의 삶, 생계 문제도 만만치 않다. 4대 프로스포츠인 축구, 야구, 배구, 농구의 규정 최저 연봉은 2023년 기준 △축구 2,400만 원 △야구 3,000만 원 △남자 배구 4,000만 원 △여자 배구 3,000만 원△남자 농구 3,500만 원 △여자 농구 3,000만 원이다. 특히 학생 선수와 프로 선수의 수가 가장 많은 프로 축구는 최저시급이 6,030원이던 2016년부터 8년째 최저 연봉을 2,400만 원으로 동결 중이다. 프로 선수는 성과에 따라 연봉을 책정받기 때문에, 관심을 받지 못해 젊은 나이에 은퇴할 경우 대부분 최저 연봉을 받다 은퇴하게 된다. 최저 연봉만으로는 은퇴 이후의 삶을 대비할 목돈을 마련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는 것조차 녹록지 않다. 장보미 이사장은 “많은 은퇴 선수들이 장기적인 역량을 쌓기 어려운 단기 체육 교사, 배달 근로자, 일용직 노동자의 길을 간다”라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의원이 대한체육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은퇴 선수 중 41.9%에 달하는 이들이 무직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취업자 중에서도 64.6%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월수입이 20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51.6%에 달했다.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으려면

젊은 은퇴 선수들이 새 삶을 안정적으로 꾸려갈 수 있도록 하려면, 적절한 사회적 안전망이 마련돼야 한다. 장보미 이사장은 “운동선수들은 한 분야에만 10년 이상 매진해온 사람들”이라며 “그런 사람들이 1등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능력을 발휘해볼 두 번째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것은 모든 사회 구성원으로 하여금 이 사회의 미래에 의문을 들게 한다”라고 역설했다. 민경빈 씨 또한 “이른 은퇴 후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경우가 주변에 많다”라며 “은퇴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제도권의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시급한 생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프로스포츠 선수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인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현재 프로스포츠 선수들은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부상을 당하거나 은퇴를 했을 때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법무법인 세종 김종수 변호사는 “프로 선수 계약은 △계약 체결 시 수행업무가 특정되지 않는 점 △경기당 급여를 받는 것이 아니라 고정 금액을 받는 점 △감독이나 구단의 지휘를 받는 점 등을 고려하면 고용 계약에 준한다”라며 “운동선수는 부상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고, 몇몇의 예외를 제하고는 대부분 보수가 열악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용보험, 산재보험을 적용할 수 있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이들이 제2의 삶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도록 하려면 실효성 있는 진로 지원 프로그램이 갖춰져야 한다. 비록 대한체육회 진로지원센터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은퇴 선수들의 진로 설정을 지원하고 있지만, 은퇴 선수 중 20.6%의 선수만이 진로지원센터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장보미 이사장은 이에 더불어 “진로 지원 사업을 모르는 것도 문제지만 프로그램이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라고 지적했다. 제도적 정비와 더불어 현장의 관심이 수반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 대학 야구를 경험한 정규식 씨는 “일본에서는 감독과 매니저가 선수와 소통하며 스포츠 이외의 진로를 설정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라며 “방향성을 함께 고민하는 것을 넘어 입사 지원 시 추천서를 써주는 등 그 방법이 매우 구체적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동 이외의 진로로 나아가는 사람에게 전문 체육인으로서의 경험은 단체 생활 경험, 목표 달성 의식의 측면에서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라고 덧붙였다. 운동 경험이 새로운 시작에 있어 흠결이 아닌 가치 있는 경력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사례를 적극적으로 참고해야 한다고 취재원들은 입을 모았다. 

근본적으로는 학생 선수 때부터 실질적인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취재원들의 공통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학생 선수의 학습권 보장에 관한 논의와 정책은 계속해서 표류해 왔다. 일례로 지난 정부는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안에 따라 학생 선수의 출석 인정 일수를 여러 차례에 걸쳐 축소했으나 대한체육회 등으로부터 탁상행정이라며 거센 비판을 받았다. 결국 지난달 19일 학생 선수의 출석 인정 결석 허용 일수는 초등학교는 5일이던 것이 20일로, 중학교는 12일이던 것이 35일로, 고등학교는 25일이던 것이 50일로 다시 확대됐다. 윤석열 정부는 2025년까지 출석 인정 일수를 전체 수업 일수의 1/3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에 대해 학생 선수들이 학습과 운동 중 택일해야 하는 상황에 몰려 학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학업과 운동의 균형이 무너져 실질적으로 학습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렇듯 계속되는 제도적 혼란과 이에 따른 현장의 혼선을 정리하고 일관된 방향으로 학생 선수의 실질적인 학습권을 보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래도록 몰두해 온 무언가가 무너지는 경험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제는 은퇴 선수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안전하게 두 번째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다 함께 머리를 맞댈 때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지만 고용 계약에 준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직종의 종사자. 보험 설계사, 방과후 강사, 대리운전 기사, 일부 예술인 등이 이에 속한다.

 

삽화: 신윤서 기자 oo00ol@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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