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펙 정상회의 개최지의 그늘

“돈을 이렇게 들였는데 과연 얼마나 회수될 지 의문이에요. 그래도 어쨌든 한두 나라도 아니고 21개국 정상들이 왔다는데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겠지요?”

부산에서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는 조석재씨(45)의 말이다.

지난 7월말 부산시가 시민 약 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88%가 ‘아펙의 성공적 개최가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같은 결과에는 부산시의 적극적인 홍보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부산시는 “아펙의 생산유발효과가 4021억원에 이르고, 아펙 개최로 도시 브랜드가치가 크게 향상될 것”이라며 “친절하고 깔끔한 이미지로 손님맞이를 잘 하자”고 홍보해왔다.

하지만 아펙 개최를 자신과는 상관없는 ‘높은 사람들만의 잔치'로 생각하며 한숨짓는 이들도 많다. 2차 정상회의가 열렸던 누리마루 근처의 재개발 지역에서 텃밭을 일구고 있는 한 주민은 “정상들 며칠 다녀간다고 큰 길은 번들번들하게 닦아놓으면서 우리 같은 사람들 평생 다니는 길은 밤에 아무리 컴컴해도 가로등 하나 설치해주지 않는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 삼엄한 경비 속에 몇몇 정상들이 묵고 간 것으로 알려진 해운대 메리어트 호텔. 사진 앞쪽으로 보이는 슬래브 주택들은 오랫동안 방치돼오다 아펙 회의 개최 두 달 전 미관상 흉하다는 이유로 일괄적으로 파랗게 페인트칠 됐다 <사진: 강민규 기자>
부산시 동래구에서 일용직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신모씨(31)는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사는 사람들은 요즘 술만 마시면 부산시를 욕한다. 회의기간 동안 ‘공사판 작업 중지다’, ‘노점상 영업금지다’ 하는데 솔직히 가난한 사람들한테 혜택이 돌아온다는 보장이 있는가?”라고 말했다.

‘APEC반대 부시반대 국민행동(아펙반대국민행동)’은 “생산유발효과가 4021억원이라지만 들어간 경비만 2598억원에 달하며, 그동안 아펙 개최도시들을 볼 때 과연 부산시가 주장하는 만큼 도시 브랜드가치가 상승할지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부산시는 아펙 준비과정에서 미관상 흉하다는 이유로 노점상 영업을 일괄적으로 중지시키고 노숙자들을 수용시설에 반강제로 수용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시는 지난 3월부터 도시정비계획에 따라 6천여개소의 노점상을 철거하거나 영업을 금지시켰다. 또 9월부터 공무원들을 동원해 많은 노숙자들을 반강제적으로 쉼터 등의 시설에 수용했지만 대부분의 노숙자들이 수용을 완강히 거부해왔다. 부산 실직노숙자자활추진위원회 최용호씨는 “수용자 수에 따라 정부 지원금이 늘어나므로 수용시설 측은 일단 많이 수용하고 보자는 식의 태도를 가지고 있어 생활환경이 열악하며, 실제로 규율이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종교단체의 경우 종교행사를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상회의 장소와 정상들의 숙소가 위치한 해운대 일대에서는 빈민가를 가리기 위한 가림막이 설치되거나 페인트가 칠해져 시민단체들로부터 빈축을 사기도 했다.

▲ 지난 16일(수) 부산 광안대교에서 열린 불꽃축제. 광안리 해수욕장 일대에만 약 50만 명의 구경 인파가 몰려든 이 축제에 사용된 비용은 총 15억여원에 달한다 <제공: 지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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