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 논의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저장 시설은 2030년부터 차례로 포화 상태에 이를 예정이다.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임에도 한국은 아직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고준위 방폐장)의 부지조차 선정하지 못했다. 『대학신문』은 사용후핵연료 포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거론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고준위 특별법)에 대해 알아봤다.

 

사용후핵연료, 어디까지 저장할 수 있나

지난 10일(금)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사용후핵연료 저장 시설의 포화 시점이 기존 예상보다 1~2년가량 단축될 전망이라고 발표했다. 대부분의 원전은 부지 내의 습식 저장 시설에 사용후핵연료를 임시 저장하고 있는데, 7년 후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2031년 한울 원전, 2032년 고리 원전의 습식 저장 시설의 용량이 가득 차게 될 것임이 밝혀졌다. 이는 산업부가 지난달 12일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운영허가 만료설비 계속운전 △신한울 3,4호기 준공 △원전 총 32기 가동을 명시한 것이 반영된 결과다. 이런 상황의 원인에 대해, 최성열 교수(원자핵공학과)는 “이번 정부 들어 원자력 발전소 이용률이 증가해 사용후핵연료가 예상보다 많이 발생했을 수 있다”라고 해설했다.

이처럼 사용후핵연료 저장 시설의 추가 확보가 시급한 상황에서, 근본적으로는 고준위 방폐장이 확보돼야 할 것이다. 산업부는 고준위 방폐장을 확보하는 데 2021년 기준 대략 37년이 소요되며, 부지 내 임시 저장 시설을 건설하는 데만 해도 약 7년이 걸린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정재학 교수(경희대 원자력공학과)는 “올해 안에 추가적인 임시 저장 시설 확보를 위한 절차라도 시작하지 못할 경우 최악의 상황에서는 원전 운영이 중단될 수 있다”라고 말했지만, 이 임시 저장 시설 마련조차 현 상황의 근본적 대책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여야 갈등에 지체되는 고준위 특별법 제정

사용후핵연료의 영구 처분 시설을 마련하기 위한 초석으로 고준위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고준위 특별법은 고준위 방폐장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 정비를 주된 내용으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고준위 방폐장 설립을 위한 부지 선정 절차와 주민 지원 방안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최성열 교수는 “긴 시간에 걸쳐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그간 고준위 방폐장을 건설하고자 하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최성열 교수는 “한국은 지난 45년간 아홉 차례에 걸쳐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시도해왔다”라며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원전 대응 정책이 요동쳤고, 사회적 갈등이 확산되며 논의를 진전하기 어려웠다”라고 설명했다.

원전 계속 운영에 대한 여야 간 의견 대립이 있는 상태에서, 고준위 특별법을 둘러싼 실효적인 논의 또한 정체되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고준위 특별법 발의안은 총 세 개로,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과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 국민의힘 이인선 의원이 각각 대표로 발의했다. 김성환 의원의 법안은 부지 내 저장시설의 용량을 원전의 최초 설계수명이 만료되기 전까지 발생한 양으로 제한한 반면, 나머지 법안은 원전을 가동하는 동안 발행하는 양으로 규정하고 필요에 따라 늘리는 것 또한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김성환 의원은 “이견이 가장 큰 지점은 부지 내 저장시설의 규모”라고 설명하며 “주민들의 우려를 고려했을 때 여당의 안은 동의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여야의 원전 계속 운영에 대한 입장 자체가 다르다보니, 부지 내 저장 시설의 규모에 대한 이견 또한 좁히지 못하고 있다.

 

지역 주민과의 투명한 소통이 이뤄져야

정치적 난전이 이어질수록 원전이 위치한 지역 주민의 혼란은 계속해서 가중된다.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지역 내 고준위 폐기물을 임시 저장하는 시설이 중간 처리 시설이나 영구 처분 시설로 기능하게 될 경우다. 월성 원전이 위치한 경주시의 원전범시민대책위원회 이채근 사무국장은 “고준위 특별법은 당연하게 제정돼야 하지만 월성 원전 부지 내 저장을 가능케 하는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라고 피력했다. 이어 “정부가 2016년까지 중간 저장 시설 등을 확충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경주 밖으로 반출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2005년인데 아직도 지켜지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주민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련 문제를 타개할 방법은 결국 지역 주민과의 공감대 형성을 바탕으로 신속하게 법안을 제정하는 것이다. 최성열 교수는 “사용후핵연료는 운영을 정지한 원전에 내버려 두는 것보다 건식 저장 시설이나 영구 처분장에 두는 것이 주민들에게도 훨씬 안전하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법안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주민들과 활발한 소통을 담보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최성열 교수는 “특별법의 당초 취지대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거버넌스를 어떻게 감시하고 평가할지에 대한 내용이 꼭 포함돼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이채근 사무국장 역시 “운영 주체를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기능을 민간에도 담당하게 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김성환 의원은 “주민 의견이 충분히 수렴될 수 있는 절차를 보장하고, 이들의 불편에 상응하는 보상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정재학 교수는 “신속한 협의를 이뤄 고준위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밝히며, “후세에게 더 이상 부담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이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고준위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논쟁이 신속히 해결되길 바란다. 

*사용후핵연료: 원자력 발전의 연료로 사용된 후에 남은 핵연료 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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