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한국 수어 교육의 한가운데,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대안학교’

지난달 6일, ‘제2차 한국수어발전기본계획’이 발표됐다. 제1차 한국수어발전기본계획은 한국수어 능력 향상 및 보급, 관련 제도의 안정적 운영 기반 마련 등에 집중했다면, 이번 계획은 1차 계획을 기반으로 제도를 더욱 확대하고 교육 기반을 향상시키는 데 주안점을 뒀다. 이에 △한국수어 교육기관 지정 및 지원 △한국수어 문법서와 교과목 개발 △맞춤형 수어 교육 등 수어 교육 진흥 관련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진전된 계획만큼 현장에서 수어교육도 어려움 없이 이뤄지고 있을까. 『대학신문』이 지난달 28일 전국에서 유일하게 수어로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대안 학교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대안학교’(소보사)를 찾아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 봤다.

 

소보사, 한국 사회의 수어 교육을 선도하다

▲인터뷰 중인 소보사 김주희 대표교사의 모습.
▲인터뷰 중인 소보사 김주희 대표교사의 모습.

소보사는 청각장애 학생들을 위한 대안 학교로, 수어교육을 통한 건강한 농인 양성을 목표로 하는 교육기관이다. 2006년부터 방과후 공부방 형태로 운영되던 소보사는 2017년에 초·중·고 통합 대안 학교로 재탄생했다. 소보사의 학생 정원은 열두 명, 교사는 여섯 명으로 김주희 대표교사를 제외한 모두가 농인이다. 농공동체에서 농인 학생들이 올바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김주희 대표교사는 소보사를 설립하고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한 명이라도 수어로만 자라야 하는 아이들, 청소년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한 교육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라고 이야기했다. 

기자가 직접 방문한 소보사는 배움을 향한 열망이 널뛰는 공간이었다. 네 명의 고등부 학생들은 수어로 회의 안건을 논의하며 공동체 회의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김주희 대표교사는 “수어를 습득한 아이들은 자기의 언어가 분명하고, 비장애인 아이들과 똑같이 자기만의 꿈을 품고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고등부의 정가은 씨(18)는 농인을 위해 활동하는 변호사가, 송요셉 씨(17)는 유도 선수와 헬스 트레이너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초등부 학생들은 교사들과 수어로 대화하며 함께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김주희 대표교사의 설명에 따르면 모두 수어를 배운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이었다. 기자가 김주희 대표교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학생들이 김주희 대표교사에게 와 수어로 말을 건넸다. 김주희 대표교사는 “청소 시간이라 청소를 해도 괜찮은지 물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요해서 오히려 더 떠들썩한 언어가 따스한 온기를 퍼뜨렸다.

 

수어: 농인의 삶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언어

수어는 단순한 손동작이 아니다. 복잡한 문법 구조를 가지고 있는 어엿한 언어다.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손을 봤는지, 얼굴을 봤는지, 허공을 봤는지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김주희 대표교사는 “한국어와 한국수어는 완전히 다른 언어”라며 “농인은 한국어를 읽고 쓸 수 있어도, 모국어인 한국수어로 책을 읽고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싶다는 열망을 당연히 품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주희 대표교사의 말에 따르면, 농인의 언어인 수어는 농인이 장애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오롯한 정체성을 지닌 사회문화적 존재로 인식되기 위한 필수적 기반이다. 소보사 이소연 교사는 “농인에게 수어는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일상 속에서 생활 습관을 배우고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수어는 반드시 필요하므로 이를 배울 기회도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라며 수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아직 수어를 향한 관심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됨에 따라 국립국어원에 수어와 점자 정책을 담당하는 특수언어진흥과가 신설된 지 아직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농인들의 농문화와 농정체성 확립에 수어가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김주희 대표교사는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 구조에서는 수어 중심 농문화를 전승하고 농정체성을 확립시키는 교육이 불가능하다”라고 밝혔다.

▲소보사 교사가 학생에게 수어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소보사 교사가 학생에게 수어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더 많은 소보사를 위해서는

김주희 대표교사는 “청각장애는 극복해야 한다는 인식이 수어 활성화를 어렵게 한다”라고 지적한다. 이준우 교수(강남대 사회복지학부)에 따르면,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난 10명 중 9명은 수술을 통해 청인*처럼 기능할 수 있다는 병리적 접근이 청각장애인들에게 ‘정상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모종의 압박을 가한다. 이들이 구화를 완전히 습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님에도 수어가 보조적인 수단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제2차 한국수어발전기본계획에는 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김주희 대표교사는 “장애인차별법이 있다고 장애인 차별이 없어지지 않듯이, 법이 현실까지 내려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인식 부족으로 법 자체가 미비하다”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수화언어법을 통해 법적으로는 한국수어가 한국어와 동등한 언어 지위를 갖는다고 인정됐지만, 그가 행정 기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속기사가 수어 통역사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 현장이 실질적으로 변화하리라고 단정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김주희 대표교사는 “1차 계획에서도 실질적으로 실현된 것이 없었고, 형식적인 연구뿐이었다”라고 평했다.

2차 계획의 내용에 담긴 교재 개발 역시 난제다. 김주희 대표교사는 “수어 교재를 개발하려면 수어를 모국어처럼 쓰고, 수어의 언어 구조와 학습 구조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은 수어에 대한 언어학적인 연구 자체가 적은 와중에 나라의 사업마저 1차, 2차 계획으로 일회성에 그치는 실정이다.

김주희 대표교사는 앞으로의 수어교육이 농인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특수교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의 교육 과정 자체에 수어 교육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라며 “농인이 농인을 가르치는 환경이 조성돼야 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수학교에서 구화와 수어를 쓰는 아이들을 동시에 교육하면 농인 아이들에게는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교사는 “호주는 교사와 별개로 농인 학생이 수업에 들어가 도와주는 경우가 많다”라며 “청인 교사로부터 농문화나 농정체성을 습득하기 어려운 점을 보완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모든 교과목이 수어로 돼 있어야 농인들의 교육권을 보장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농인 인구 수가 40만 명을 넘어섰음에도, 우린 사회에서 수어를 쓰는 것은 여전히 험난한 싸움이다. 소보사와 같은 교육 현장이 늘어남과 동시에, 한국수어가 우리 사회의 어엿한 언어 중 하나로 인정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청인: 농인과 대비되는 개념.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사진: 구민지 사진부장 

grrr0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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