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우 기자(취재부)
김재우 기자(취재부)

“펜은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이다.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活人劍)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을 죽이는 살인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아무나 그 칼을 쥘 수는 없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심장을 가진 자가 그 칼의 주인이다. 우리는 기자다.”

『대학신문』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매체 소개에 들어온 사람들을 맞이하는 이 구절은 『대학신문』 간사를 지낸 신형철 교수(영어영문학과)가 남긴 글의 첫 구절이다. 그의 말대로 기자는 펜이라는 칼을 들고 있다. 문득 이런 궁금증이 떠오른다. 우리는 왜 이 무거운 칼을 들고 있으며, 이 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흔히 기자의 역할을 비판이라고 한다. 비판의 사전적 정의는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함’이다. 정의와 더불어 용례를 생각해보면, 비판은 다소 무서운 느낌을 준다. 마치 높은 자리에서 잘잘못을 따지고 이를 지적하는 엄혹한 재판관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비판에 대해 내가 느끼는 인상이야 어찌 됐든, 기자의 역할은 현실의 문제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내리고 날카롭게 지적하며 이를 근사한 기사로 작성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펜이라는 칼을 들고 서 있는 이유는 차갑고 번쩍이는 칼을 멋지게 휘두르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일까?

사설을 쓰기 위해 주제를 찾다가 제77회 전기 학위수여식의 1인 시위를 다룬 기사들을 본 적이 있다. 시위의 주제인 서울대 내 권력형 성폭력 사건도 심각한 문제였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시위를 저지하려는 교직원들의 모습이었다. 꽤 심한 분노를 느끼고 스스로 ‘비판’이라고 생각하던 행위를 가하며 글을 작성했다. 언뜻 보기에는 날카로워 보이는 글이었다. 그러나 내 사설은 실리지 못했다. 단지 문제 상황에 대한 공격과 비난에 그치는, ‘쉽게 쓰여진 글’이기 때문이었다. 단편적인 비난보다는 서울대라는 공동체가 지닌 문제를 해결하고, 궁극적으로 피해자들이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도록 돕는 것이 필요했다. 곧 쉬운 비난이 아닌 어려운 비판이 필요했던 것이다.

기자가 비판하는 이유, 즉 옳고 그름을 판단해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이유는 문제 상황을 정확히 짚고 드러냄으로써 이전보다 나아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비판은 문제 상황을 매섭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판단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비판은 단순한 부정이 아닌 고도의 긍정 행위다. 공동체가 처한 문제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접근한다는 점에서 비판은 차갑기만 한 것이 아닌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행위다.

따라서 우리 『대학신문』 기자들이 펜이라는 칼을 들고 서 있는 이유는 학내외 사안을 비판함으로써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문제까지 찾아 드러내고, 냉철한 지적과 따뜻한 충고를 통해 문제 해결과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기자의 역할을 비판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까닭이다.

여담이지만 이 글은 ‘김재우 수습기자’가 아닌 ‘김재우 기자’라는 작성자로 올라갈 것이다. 역량으로는 신문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로 부족하지만, 어쨌든 기자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됐다.

이에 기자로서 내 글과 비판을 읽어주시는 여러분 앞에 선언한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심장을 가진 자가 그 칼의 주인이다. 나는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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