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국민건강보험 재정 지속 가능성

지난해 12월 31일을 끝으로, 국민건강보험법 제108조와 국민건강증진법(법률 제6619호) 부칙 제2조에 의거한 국민건강보험(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정부 지원이 그 법적 효력을 잃었다. 2007년 이래 5년마다 법 개정으로 정부 지원을 연장해 오던 관행이 17년 만에 깨진 것이다. 건강보험 재정 수입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가운데,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에서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이 적자로 전환되리라 전망한 2029년이 6년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의 대학생이 소득이 있는 어엿한 사회인이 될 6년 후, 적절한 건강보험료를 내고 충분한 혜택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대학신문』이 건강보험 재정 위기의 원인과 대책을 톺아봤다.

 

건강보험 재정 고갈, 앞으로 6년?

건강보험은 국가가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그 책임을 분담하겠다는 의도로 수립된 사회보험 제도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국민건강보험법 제5조에 의거해 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며 건보공단은 가입자가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항목으로 의료비를 지출할 시 급여(보험금)를 제공한다. 모든 국민에게 강제 가입 의무를 지우는 이유는 사회보험이라는 건강보험의 본질에 있다. 건강보험은 사회보장기본법 제3조에 의거해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실업, 장애, 노령, 질병 등을 ‘사회적 위험’으로 간주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명예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건강보험은 민간 보험과 달리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갖고 형평성을 제고한다”라고 해설했다. 높은 의료비를 충당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렇듯 건강보험은 사회적 연대를 근간으로 움직이고, 모든 국민은 건강보험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안전망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연대에 기반한 건강보험이 지속 가능하려면 탄탄한 재정 기반은 필수다. 건보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은 건강보험 재정 운영 체계를 다룬 연구 보고서에서 “건강보험 제도의 지속 가능성이 재정 안정화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건강보험 재정은 건보공단이 징수하는 국민 보험료 약 86%에 더해, 국민건강증진기금과 국고로 이뤄진 정부 지원금 약 14%로 구성돼 왔다. 이렇게 모인 건강보험 재정의 주요 지출 영역은 진료 및 약 제조 등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 의료 공급자에게 지급되는 보험 급여비다.

그렇다면 현재 건강보험 재정 상황은 어떨까. 2021년 기준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은 약 20조 원으로 최근 상승세를 보여왔다. 얼핏 보면 재정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이나 전문가가 추계한 건강보험 재정 전망을 보면 실상은 다르다. 건보공단이 감사원에 제출한 공식 자료에 의하면 2029년 누적 적립금이 모두 소진되고 2040년에는 누적 적자가 678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적자 전환 시기를 더 이른 시점으로 예측한 견해도 있다. 홍석철 교수(경제학부)는 “2019년 연구 결과, 정부 지원금을 현재보다 더 확보한 20%로 설정했음에도 2026년에 누적 적립금이 9조 9,000억 원의 적자로 전환되리라 예측됐다”라고 밝혔다. 이어 “코로나19 기간 개인 위생 관리가 철저해져 국민의 병원 이용률이 줄고, 일시적으로 적자 폭이 대폭 감소했던 것”이라며 “그 기간만큼 고갈 시점이 밀렸을 뿐, 실질적으로는 훨씬 앞당겨질 수 있다”라고 부연했다. 

생산가능인구는 감소하고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인구학적 변화를 헤아려 보면 적자 가속화가 더욱 우려된다. 실제로 2021년 노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16.2%였으나 전체 진료비의 약 44%를 차지했고, 2070년 노인 인구는 46.4%가 될 것으로 전망돼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지출 증가는 불가피해 보인다. 국회예산정책처 임슬기 추계세제분석관은 “약 20조 원의 적립금을 봤을 때 당장 재정 위기에 직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라면서도 “향후 고령화 등으로 건강보험 급여비가 급증할 것을 고려하면 재정 안정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건강보험 재정 알뜰하게 쓰기 위해

권순만 교수(보건학과)는 “재정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의료비 지출 요인 측면에서 시작돼야 한다”라고 전했다. 매년 보험료율 조정 시 당해 지출이 주요한 고려 대상이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출의 효율화가 가장 시급하다는 의미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면서도 지출 구조의 효율성을 제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홍석철 교수는 “가격 정책이 해결 방안이다”라며 진료비 자체가 낮은 경증 질환에 대한 혜택은 줄이고, 중증 질환에 대한 혜택을 강화할 것을 제언했다. 그는 “감기 같은 경증 질환은 병원에 가지 않아도 일반의약품 등을 통해 금방 나을 수 있다”라며 경증 질환에 대한 혜택이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과 관련 있음을 시사했다. 가벼운 감기나 통증은 건강보험의 혜택 덕분에 낮은 본인부담금으로 병원에 방문해 진료받을 수 있다. 그러나 2021년 기준 4대 중증 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질환)의 보장률은 84%다. 나머지 16%에 해당하는 비보장 진료 대상인 4대 중증 질환의 경우, 환자는 고액 진료비를 혼자 부담해야 한다. 불필요한 의료 이용은 관리하고, 진료비가 높은 중증 질환의 보장은 강화해 건강보험의 실질적인 효용을 늘릴 필요성이 제기된다.

나아가 진료비 지불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김윤 교수(의학과)는 “재정 위기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현재 행위별 수가제를 시행해 의료 서비스에 따라 책정된 수가가 의료 공급자에게 의료 행위별로 지급된다. 신영석 명예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의사 입장에서는 소득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할 것”이라며 의료 공급자가 재량껏 수익을 늘리기 쉬운 행위별 수가제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권순만 교수 또한 “의료 공급자는 저렴한 비용으로 효과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 경우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7월 감사원이 발표한 「건강보험 재정관리 실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감사원이 재정·보건 정책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92.4%가 “행위별 수가제는 과잉 진료 등 단점이 있다”라고 답했다. 

포괄수가제와 총액계약제 등이 이에 대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신영석 명예연구위원은 “질환별로 의료 공급자가 받을 수 있는 진료비를 고정하는 포괄수가제를 고민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홍석철 교수는 “특정 기간만큼의 의료비나 약제비 총액을 의료 공급자에게 미리 제공하는 총액계약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라고 전했다. 한편 행위별 수가제는 금액에 구애받지 않고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에 주요 OECD 국가는 각종 진료비 지불 제도를 혼합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여러 진료비 지불 제도의 장단점을 고려해 효율적인 지출이 가능한 제도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우리 손으로 결정하는 건강보험

그러나 재정 지출의 효율화만으로는 건강보험이 인구 변화에 따른 수입 감소를 감당하지 못하리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 지원의 법적 효력이 상실돼 건강보험 수입이 불안정한 상황을 맞이한 상태다.

물론 올해 예산에 정부 지원분이 편성됐다는 점에서 건강보험 재정 운용상 당장의 큰 변동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정부 지원이 한시적인 일몰 조항에 근거해 왔다는 고질적인 한계가 해결돼야 한다. 건강보험연구원은 건강보험 재정 운영 체계를 다룬 보고서에서 “정부 지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이를 영구적 조항으로 만들어 국가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국민건강보험법과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르면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100분의 14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고에서, 100분의 6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받아 총 100분의 20에 상당하는 금액을 정부는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예상 수입액이라는 기준이 임의적일 뿐만 아니라, 최근 5년간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 지원율을 살펴봐도 △2018년 13.2% △2019년 13.3% △2020년 14.8% △2021년 13.9% △2022년 14.4%로 법정 비율인 20%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왔다고 보기 어렵다. 이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올해 예산안을 검토한 예비심사검토보고서에서 “재정 당국의 임의적인 과소 지원이 이뤄진다”라고 지적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 김재헌 사무국장은 “정부가 법률에 규정된 20%만큼만 지원해도 재정 지속가능성은 확보될 것”이라며 법적 규정을 명확히 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와 함께, 건강보험 재정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민이 납부하는 보험료 인상도 불가피해 보인다. 임슬기 추계세제분석관은 “보험료율의 불가피한 상한을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필수적이다”라고 전했다. 

이에 보험료, 수가 등 건강보험과 관련된 주요 사안을 심의·의결하는 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이 국민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기구로 존재한다. 건정심은 보건복지부 차관인 위원장 1명, 의료계·약업계 공급자 대표 8명, 근로자·사용자·시민단체를 비롯한 가입자 대표 8명, 공익 대표 8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사실상 건정심이 국민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의 오건호 정책위원장은 “가입자 대표가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감사원은 지난해 7월 감사에서 “국민 대부분이 건강보험 가입자인데도 재정 의사 결정은 보건복지부 위주로 이뤄진다”라며 “건강보험 가입자와 국민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외부 통제 장치가 없다는 문제점이 존재한다”라고 건정심의 한계를 설명했다. 건정심 위원이었던 권순만 교수 또한 “일반 시민보다 의료계, 학계 등 전문가 의견이 강한 전문가주의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마찬가지로 홍석철 교수는 “가입자 단체와 공급자 단체가 갈등을 빚어 정작 건보공단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라며 “건강보험이 이해관계의 장이 돼서는 안 된다”라고 전했다. 건강보험은 국민의 삶과 직결된 만큼, 국민의 목소리가 더 활발히 반영될 수 있도록 건정심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우리는 모두 건강보험이라는 울타리 안에 함께 서 있다. 그간 건강보험의 혜택만을 입어오던 학생에서, 보험료를 납부하는 어엿한 사회인이 됐을 때 이 사실을 필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건강보험은 모두의 보험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강을 위해 모두가 적극적으로 목소리 낼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삽화·인포그래픽: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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